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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민씨의 허름한 집
 영민씨의 허름한 집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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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특유의 '×바가지 헬멧'을 눌러 쓴 영민(39)씨가 가게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왔다. 그가 쓰고 다니는 헬멧은 짙은 초록색 타원형 바가지 모양이다. 누군가가 옛날 뒷간을 치우던 ×바가지와 흡사하다고 놀렸었다. 영민씨는 그저 웃기만 할 뿐 어딜 가든 즐겨 쓰고 다닌다.

"안녕하세요, 형님!"

목소리가 활기차다. 늘 웃는 모습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표정이 밝다.

"그래, 어서 와. 어젯밤 잘 잤니?"
"응, 잘 잤어. 아주 잘 잤어."

어느새 말이 '짧아져' 있다. 그는 40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초등학생 정도의 말과 행동을 한다.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사리판단은 하지만 돈을 셀 줄 모르고, 글도 읽거나 쓰지를 못한다. 누군가가 돌봐주어야 하는 장애인이지만 자폐증세가 아주 심한 친형(48)과 단둘이 살고 있다. 영민씨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장애인인 형을 돌보며 살아간다. 땔나무를 구해오고, 농사 품팔이나 막노동을 해 생활비를 벌어온다. 밥을 짓고 빨래나 집안청소 대부분을 책임져야 한다. 형은 단순노동 품팔이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침저녁으로 담배와 술을 사기 위해 면 소재지에 다녀오는 일과를 반복할 뿐이다.

도배 봉사 중인 청년회원
 도배 봉사 중인 청년회원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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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에 열중인 청년회원들
 도배에 열중인 청년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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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이 담긴 봉사
 정성이 담긴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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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민씨 형제가 사는 집안 상황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 우연히 그들의 집에 들어가 본 이들은 하나같이 사람 사는 집 같지 않다며 혀를 내두른다. 어느 한 곳 엉덩이를 붙일 곳이 없다고 한다. 하긴 정상인이었던 부친이 세상을 뜬 지 10여 년이 흘렀으니, 그동안 청소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집안이 오죽하겠는가.

집 안뿐만 아니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 여기저기 깨져 물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나무 울타리는 이미 바람막이 역할은커녕 썩어 가 폐가와도 같은 몰골이었다. 2년 전 마을 청년회(강원 횡성 안흥 상안리)에서 다 넘어간 나무 울타리를 털어내고, 함석으로 새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다. 또 지난해 면 새마을지도자협의회에서 지붕을 함석으로 교제해 주어 그나마 집 모양을 갖추고 있던 터였다.

말끔해진 주방을 정리하는 영민씨
 말끔해진 주방을 정리하는 영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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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이 되었습니다.
 새 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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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마을 내 사정이 어려운 이웃을 골라, 집수리 봉사를 해 오고 있는 상안1리 청년회(회장 임종우). 청년회는 지난 29일 영민 형제의 집안 벽지와 장판을 새것으로 교체해 주었다. 말끔하게 변한 집안 곳곳을 둘러보고 밖에 내놓았던 가재도구를 정리하며, 새집에 이사라도 온 양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영민씨.

이른 새벽에 시작하여 어둠이 내리기 직전까지 10여 명의 청년회원이 구슬땀을 흘려 마무리했다. 이 자리에서 영민씨는 스스로 먼저 고맙다는 표현을 못 했지만, 회원 하나하나의 잔에 예를 갖춰 술을 따랐다. 그의 마음이 가득 담긴 잔으로 회원들은 건배를 힘차게 외쳤다.

집 단장 축하 "건배!"
 집 단장 축하 "건배!"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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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궂은 농담도 이어졌다.

"이제, 영민이 색시만 데려오면 되겠네."
"어, 색시? 그래야지, 데려와야 하는데…. 아이 참…."

집을 나서는 청년회원들에게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고마움을 표하는 영민씨에게 마음으로 말을 건넸었다.

'영민아, 깨끗한 집에서 좋은 꿈 꾸고 편안하게 쉬어라.'

아직도 영민씨 집은 이곳저곳 손 볼 곳이 남아있다. 주방의 싱크대도 기름 때로 얼룩져 청소라도 해야겠지만, 워낙 낡아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식생활 여건이 최악이라 청년회원들의 마음이 무겁다. 김치 정도는 각종 단체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챙겨 주고 있는데, 이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밤은 영민씨가 오랜만에 깨끗하게 단장된 집에서 편안한 밤을 보낸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상안1리 청년회원들
 상안1리 청년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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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집수리, #지적장애,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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