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장군봉...
▲ 금정산 장군봉...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프롤로그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정현종 시, <방문객>)

만나러 가는 날이다. 간밤엔 밤이 늦도록 비가 내려서 야속하다 야속하다 마음속으로 발을 동동 굴렸다.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를 살살 풀어내는 봄비도 좋지만, 왜 하필 이런 날이냐고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비를 탓했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밤늦게까지 멈추지 않는 비가 자고 일어나면 뚝! 그쳐있기를 바라며 잠을 청했던 지난밤이었다. 고마워라. 하늘은 맑게 개일 조짐이 보이고 비는 그쳤다.

금정산 장군봉, 만나러 가다

오늘 산행엔 또 어떤 얼굴들을 만날까. 나는 원래 그렇게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산에서 만나는 얼굴들은 분명 산을 닮았을 터이다. 산에선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을 것이다. 말없이 시나브로 꽃피고 잎 피고 열매맺고 잎 지고 또 잎이 피고 하듯이, 요령과 처세 같은 걸 생각하느라 마음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모두가 어린아이처럼 산에 기대고 산을 느끼느라 함께 있으면서 홀로 산과 대면하는 것이기에.

장군봉 가는 길...
▲ 금정... 장군봉 가는 길...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바람이 좀 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하늘은 점점 더 맑아진다. 밤이 맞도록 비가 내렸으니 산은 또 얼마나 젖어 질퍽거릴까 내심 걱정하면서, 그러나 비가 안 온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등산채비를 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꼭 가고야 만다는 열성파도 있었으니, 비가 뚝 그쳤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교회로 향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오늘 산행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모두 30명이다. 산행에 참가한다고 했다가 포기한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다. 웬만한 사람들이면 밤늦도록 비가 온 까닭에 산행을 포기했을 법도 하건만 역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제 발로 산의 정수에 가닿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들은 아랑곳없다. 따지지 않고 재지 않고 궂은 날씨나 좋은 날씨나 산을 만나러 간다는 기쁨으로 모였다. 최정예 인원 30명, 많지도 적지도 않지만 모두가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장군처럼 장군봉처럼 우뚝해 보인다.

오늘 목적지는 2주 전에 사전답사 했던 금정산 장군봉이다. 부산의 모산 금정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완만하게 뻗어내려 요란스럽지 않다. 고당봉을 비롯해 의상봉, 파리봉 상계봉, 대륙봉, 장군봉 등 봉우리들이 많고 부채바위, 나비바위 등 다양한 모양의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인 금정산성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금정산의 자랑거리이다. 장군봉은 금정산 북쪽에 위치해 있는 봉우리. 우리가 장군봉 출발지로 삼은 곳은 호포역 앞이지만, 양산 다방동에서 올라오는 길도 제법 가깝다. 보통은 금정산 범어사까지 차로 이동해서 범어사로 들머리 삼곤 했었다. 오늘 산행은 그야말로 해발 0에서 시작한다. 그만큼 걷는 양도 많고 거리도 길다.

장군봉...자기소개 시간...새로운 얼굴들이 보이네요^^
▲ 금정산 장군봉...자기소개 시간...새로운 얼굴들이 보이네요^^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장군봉...
자기소개 시간...
▲ 금정산 장군봉... 자기소개 시간...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인원파악하고 이름표를 달고 기도한 후에 화명지하철역으로 출발한다. 교회에서 화명역까지는 지척이다. 화명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호포역까지 이동해서 다시 인원파악을 하고 기도하고 목적지로 향한다. 걸음걸음마다 경쾌하고 얼굴엔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그 얼굴빛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

참 이상하다. 사전답사 산행 때는 초행길인데다 꽤 많이 걸어야하는 힘든 코스여서 제법 많이 힘이 들었는데 몸도 마음도 여유롭다. 힘들지 않고 오름길을 사슴처럼 걷는다. 여기서 얼마쯤 가면 어디로 이어지고 바위가 나오고 경사도가 높아지고 앞을 빤히 내다보고 예상하며 간다. 한 번 와 본 길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모르고 가는 초행길과 알고 가는 길이 이렇게 다른가보다.

하늘은 가끔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맑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시침 뚝 떼고 청명하다. 호포역에서 내린 우리는 굴다리를 지나고 호포농원을 거쳐 희망농원을 지나 숲으로 접어든다. 밤새 내린 비로 불어난 계곡엔 물소리가 환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는 우리들 걸음도 경쾌하다. 아직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 멀찌감치 산수유 꽃이 노랗게 피었다. 숨이 죽은 낙엽 길을 활기찬 계곡 물소리 들으며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새 임도다. 물소리도 끊겼다. 임도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몸을 추슬러 계속 간다.

장군봉 가는 길...
새로운 얼굴^^
▲ 금정산 장군봉 가는 길... 새로운 얼굴^^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여기서부터는 제법 경사가 더 높다.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 오름길을 한동안 걷는다. 우뚝 솟은 바위구간을 몇 개 지난다. 높은 조망바위에 올라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낙동강과 주변 산들을 바라보며 잠시 망중한, 다시 걷는 길은 산죽길이 이어지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은 더 가까이에서 펄럭인다. 바람은 마치 성난 짐승의 포효처럼 무엇이든지 부셔놓을 듯, 찢어놓을 듯 으르렁거린다. 지척에서 앙상한 나무들과 산죽을 흔드는 바람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도타와진 봄볕은 산죽 잎에 또르르 굴러 내린다.

산죽 길 끝나고 장군봉과 금정산 고당봉 사이인 삼거리에 도착한다. 아차, 여기서 잠깐 길을 잃고 헤맨다. 한 번 왔던 길이건만, 정확히 어디서 장군봉 쪽으로 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모두들 길 위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고 길을 잃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 겨우 길을 찾았다. 모두들 어이없어 하다가 한바탕 웃음이 숲 속 가득 번져간다. 아는 길이라고 장담 못할 일이다.

장군봉 정상에서...
▲ 금정산 장군봉 정상에서...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자연은 하나님의 속삭임"(헨리워드 비쳐)이라고 했던가. 푸른 하늘을 이고 장군봉으로 향한다. 맑고 좋은 날, 힘든 줄도 모르고 배고픈 줄도 모르고 그저 하나님이 베풀어놓은 자연에 마음껏 기대어 우리는 하나님의 속삭임을 들으며 걷는다. 답사 산행 땐 계속되는 오르막길에서 미리 지쳐서 삼거리에 도착하자마자 밥 먹을 장소부터 찾았었다. 그런데 이번엔 배고픈 줄도 모른다. 할 수 있으면 장군봉 억새평원까지 가서 쏟아지는 햇볕 세례를 받으면서 점심을 먹고 싶지만 오늘 초행길인 사람도 많고 그들에게까지 강요할 수도 없어 옹달샘약수터 옆에 자리를 펴고 앉아 도시락을 폈다.

역시 산행의 즐거움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먹는 즐거움. 여러 사람들이 모였으니 먹거리도 풍성하고 다양하다. 와~ 오곡밥, 컵라면, 갖가지 야채무침, 김장김치를 통째로 가져오기도 해서 손으로 북북 찢어서 먹기도 하고 과일도 풍부하다. 산에서 먹는 도시락은 무엇이든 꿀처럼 달다. 맛나게 점심 먹고 알뜰히 커피까지 마신 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잠깐 둥글게 모여 서서 자기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기산행 때마다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 이유는 새로 참석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크다보니 자기가 소속된 봉사부서 외에는 모르는 얼굴들이 허다하고 서로 모른 채 교회를 오간다. 하지만 산에 오면 함께 산행하면서 얼굴도 익히고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통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다. 교회에서 우연히 다시 만날 때면 그 기쁨은 배가된다.

장군봉...
▲ 금정산 장군봉...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지척에 있는 장군봉까지는 가볍게 당도한다. 한 점 먹구름도 보이지 않고 바람에 씻은 듯한 파란 하늘가에 흰 구름이 두둥실 수를 놓고 주변 산들이 멀리 멀리 펼쳐져 있다. 날이 맑아 광안대교가 또렷이 보이고 낙동강 물비늘이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힘들게 올라온 사람들 얼굴빛이 모두 환하다. 이제 하산한다. 금정산 고당봉 아래 둘레길을 돌아 북문에 도착한 우리는 산성마을로 내려가서 산성버스를 타고 내려왔다.

에필로그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 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 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정현종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돌아온 날엔 습관처럼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쏟아냈던 말과 행동들, 마음 다치게 했거나 오해를 사지는 않았는지, 또 너무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사랑으로 대했는지...마치 필름을 거꾸로 돌려보듯 되돌아본다. 너무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싶은 날엔 홀쭉해진 마대자루처럼 바람 빠진 풍선처럼 허탈하다. 무엇보다도 사랑과 배려 겸손하게 행동했는지...돌아보면 내 허물만 보인다. 좀 더 사랑하고 귀 기울이고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한 것들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물처럼 투명하고 담백하고 자연스러운 만남, 향기로운 만남이었으면 좋겠다. 좋은 만남이 귀하고도 귀한 이 세상에서...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다.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장군봉...하산길...
▲ 금정산 장군봉...하산길...
ⓒ 이명화

관련사진보기


산행수첩

1. 일시: 2012년 3월 24일(토) 맑음
2. 산행: 포도원등산선교회 30명
3.산행시간: 6시간 30분
4. 산행기점: 호포역
5. 호포역(9:55)-호포농원(10:10)-호포희망농원(10:25)-계곡시작(10:40)-계곡 끝(10:50)-임도(11:00)-장군봉고당봉 삼거리(12:10)-옹달샘약수터(12:45)-점심식사 후 출발(1:40)-장군봉(1:55)-하산(2:00)-옹달샘약수터(2:15)-고당봉 밑(2:55)-북문(3:25)-산성마을(금성동4:25)


태그:#금정산 장군봉, #등산선교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