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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 환갑여행으로 제주도 행을 결정한 뒤 아내는 바빴다. 회사 일로 실속 없이 바쁜 나를 대신해, 그리고 컴퓨터와 친하지 않은 부모님을 대신해 여행계획을 짜고 숙박 등을 예약해야 했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빽빽거리는 두 아이들과 씨름하며 컴퓨터를 켜는 것 자체가 무리인 아내로선 충분히 한숨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런 아내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하필 우리가 가는 날이 징검다리 연휴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나도 그날이 징검다리 연휴이기에 연차를 냈던 거였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제주도 관광은 만원이었다. 항공기 예매는 물론이요, 웬만한 숙박 예약까지 이미 끝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여행 결정도 늦었으니 예약이 더 어려울 수밖에.

그러나 그렇다고 제주도까지 배를 탈 수도 없는 노릇이요, 명색이 환갑여행인데 장인, 장모를 모시고 현지에서 모텔 잡겠다고 돌아다닐 수도 없는 법. 아내는 계속해서 인터넷을 뒤졌고, 결국에는 비행기표와 숙소들을 예약했다. 비록 어설픈 29일(2월) 저녁 비행기였지만 다행히 저가항공이었고, 비록 숙소는 매일 달랐지만 어른들을 모시고 하룻밤 쉬기에는 적당했다. 장하다 우리 마누라!

까꿍이의 첫 비행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 아빠가 제주도 어쩌고 저쩌고 한다
▲ 아빠가 뭐라는 거야?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 아빠가 제주도 어쩌고 저쩌고 한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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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회사에서 서둘러 나와 집에 들러, 가방을 미리 싸놓고 대기하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타는 김포공항 행 택시. 아침만 해도 무덤덤했건만 곧 비행기 탈 생각을 하니 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쨌든 여행의 로망, 비행기 아니던가. 지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낯선 어딘가로 향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혹여 비행기를 많이 타는 직업을 갖게 되면 이와 같은 설렘이 사라지게 될까?

이번 비행기 탑승은 특별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첫째와 둘째 때문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될 녀석들. 과연 녀석들은 이 날을 기억할까? 물론 아니겠지. 난 아직도 13살에 처음 탔던 비행기를 기억한다.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 그리고 한 눈에 보이는 서울의 야경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이윽고 김포공항. 수속과 함께 짐을 부친 뒤, 저녁을 먹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공항 창 밖으로 커다란 비행기가 보이자 까꿍이가 흥분해서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빠, 비행기, 뽀로로!"

비행기는 항상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 여행의 시작 비행기는 항상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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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녀석에게 비행기란 뽀로로가 탔던 것이었다.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뽀로로 만화만으로 비행기를 알아본 첫째가 대견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인지하는 모든 것을 뽀로로와 연결시키는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어쨌든 까꿍이의 하얀 도화지가 하필 뽀로로를 시작으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 아닌가. 이래서 사고의 틀이 무섭다고 하는 것이겠지.

비행기까지 가기 위해 셔틀 버스를 타니 까꿍이가 조잘대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야지 왜 버스를 타냐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아빠 붕붕'보다 '버스'를 더 좋아하던 녀석이었건만 비행기 앞에서는 그 버스마저 버리는 게냐.

제법 컸다
▲ 이젠 한 사람 몫이다 제법 컸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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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비행기에 올랐지만, 어느 승객의 양보로 우리 가족은 함께 앉을 수 있었고(비행기의 좌석이 선착순이다), 까꿍이는 그래도 사람이라고 창가 옆에 턱 하니 한자리를 차지했다. 비록 비행기 날개가 시야를 일부 가렸지만 그래도 어쨌든 창 밖으로 저 밑의 세상을 내려다보기에는 충분했다.

드디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 비행기. 까꿍이는 연신 창 밖을 바라보며 모든 게 신기한 듯 "이게 뭐야?"를 외쳤고, 비행기가 이륙하자 낯선 창 밖 풍경에 넋을 잃은 듯 아주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나 침묵은 잠시, 비행기가 제 고도에 오르자 까꿍이가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안 좋은 기상에 날이 어두워지니 창 밖으로 볼 것도 없고, 좁은 공간에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좀이 쑤시기 시작한 것이다.

뽀로로를 보면 뽀로로가 비행기를 타고 바람을 맞아가며 직접 조종을 하는데, 현실은 그와 너무 다르니 불만일 수밖에. 결국 난 비행 내내 좌석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며 까꿍이를 어르고 협박하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지쳐갈 무렵 제주도에 다 왔다는 기장의 방송을 들었다.

처음에는 신났다
▲ 여기가 비행기래 처음에는 신났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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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강하기 시작한 비행기. 이륙할 때도 이상한 표정을 지었던 까꿍이가 귀가 아프다고 말했다. 아, 그래. 어른인 나도 귀가 멍멍한데 아이인 너는 더하겠구나. 나야 입을 벌려 기압차를 조절하면 되지만 까꿍이에게 그 치유책을 설명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차선책으로 입을 벌려 하품을 하라고 했지만 눈치 상 별 효과가 없는 듯 했다(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사탕을 빨게 하면 된다고 한다).

바로 그 때였다. 비행 내내 엄마 젖을 먹으며 잠자코 있던 둘째가 울어 젖히기 시작했다. 아내는 젖을 먹여 녀석의 입을 막고자 했지만 소용없었다. 귀가 아픈 것도 아픈 것이었지만, 안 그래도 공기에 민감한 둘째로서는 그 답답한 기내의 공기를 참지 못하는 듯 했다. 세상이 떠나갈 듯 울어대는 아이.

민폐였다. 자리도 비행기 중간에 위치했던 터라 일찍 내릴 수도 없었고, 기내를 벗어날 때까지 악을 쓰며 우는 둘째를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 이 난감한 상황이라니. 그래도 제주도여서 망정이지, 만약 욕심대로 동남아를 갔더라면 둘째의 울음소리를 몇 시간 동안 들어야 했겠구나. 어쨌든 비행기에서 나와 찬바람을 쐬자마자 거짓말처럼 울음을 멈추고 웃어대는 둘째. 이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 타는 것은 힘들다고 하는 것이구나. 벌써부터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행이 걱정이었다.

까꿍아, 여기가 제주도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짭조름한 바닷가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혔고 따뜻한 기온은 이곳이 남쪽나라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제주도. 이 얼마 만에 오는 제주도인가. 아내가 첫째를 뱃속에 가지고 있었던 여름에 왔었으니 벌써 2년이 훌쩍 넘었구나. 그때는 아내와 나 뿐이었는데 그새 식구가 배로 는 우리 가족. 설마 다음에 왔을 때 또 식구 수가 늘어있는 건 아니겠지.

아는 만큼 보인다
▲ 제주도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아는 만큼 보인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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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이는 처음 본 풍경에 눈이 휘둥그래져 연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공항에서부터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간다고 교육시킨 덕에, 이제는 비행기를 봐도 뽀로로 대신 제주도를 외치는 녀석이지만 실제로 그 아이가 받아들인 제주도가 궁금했다. 내게 제주도는 대표적인 관광지였다가 역사를 배운 뒤 아픔을 간직한 공간으로 변했는데, 앞으로 녀석에게 제주도는 어떤 존재로 각인될까? 부디 그때까지 구렁비 바위며 골프장 난개발 등이 모두 정리되고 제주도가 우리 삶의 대안으로, 평화의 섬으로, 환경의 섬으로 기억되어야 할텐데.

공항을 나와 주차장에서 렌터카를 찾은 뒤 먼저 와 쉬고 계신 장인어른, 장모님과 조우하기 위해 차를 몰았다. 가로수로 야자수가 서 있는 제주의 창 밖 풍경은 역시나 낯설었지만 그만큼 사람을 들뜨게 만들었다. 그곳은 일상에서 벗어난 도시 노동자의 환상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4박5일, 우리는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고 느끼게 될까? 그리고 그 경험은 까꿍이와 산들이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녀석들이 조금 더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느끼기를 바랄 뿐이었다. 자, 제주도 여행 출발!


태그:#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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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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