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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공부
 문법공부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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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 자리에 앉는 분이 누구인지 궁금해지네요. 아세요?"

같이 마포를 가지고 바닥을 청소하시는 젊은 선생님은 모른다고 하셨다. 오히려 별것도 다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매일 여기 글씨를 연필로 지운 지우개때가 많이 나오니깐요. 나이 많으신 할머니가 낑낑대는 열공하는 모습이 눈에 선해요. 그런데 어떻게 목욕탕에서 피부를 밀면 나오는 때랑 이렇게 비슷할까요?"

한번씩 주기적으로 바뀌는 청소역할이 2층의 사무실 청소에서 3층의 교육실 청소로 바뀌었다. 남자 선생님들은 마포 걸레질을 하고 여자 선생님들은 빗자루질이나 물걸레로 책상과 칠판 등을 닦는다. 기관에서 고용한 청소 선생님은 화장실과 복도와 로비 등만 한다.

매일 물걸레로 책상을 닦다보면 비문해 한글반이나 영어 일어 등의 평생교육을 수강받는 어르신들의 책상에서 글씨를 지우개로 지운 그 지우개때 흔적이 종종 나온다. 그런데 유독 한 군데 책상에서 많이 나와서 새삼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음 날 일하다가 그 수업이 있는 날 가만히 올라가서 창문을 통해 보았다.

"아… 저 할머니였구나!"

키가 조그많고 눈이 별처럼 빛나는데 항상 눈물 젖은 눈처럼 습기가 차서 반짝거렸다. 같은 나이 또래보다 얼굴엔 주름이 두 배나 많고 손은 남자 손보다 더 손마디의 알이 굵게 튀어나오신 분이다. 내가 이분을 기억하는 것은 기관에 처음 입사해서 처음으로 내가 만든 문화행사인 '사랑과 용서'를 주제로 한 '아름다운 편지 쓰기'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 기관의 시스템을 잘 몰라 있는 것들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시상품을 할 후원상품과 작은 책자들을 만들 경비를 일단 확보해서 편지 쓰기 대회를 기획했다. 어버이날이라고 해서 뭔가 그날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이날을 계기로 해서 마음안의 앙금들을 해소할 수 있으면 그 또한 의미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60세가 넘었지만 아직도 정정하신 많은 어르신들이 백일장에 나오셨는데 시집을 몇 권씩이나 내신 시인분과 국어교사였다가 정년퇴직한 교사들과 지역의 여러 곳에 출강하시는 강사님들도 나오셨다. 정해진 두 시간에 유려한 문장과 달필로 원고를 작성하고 나가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지우고 또 지우고 연필 글씨가 잘 안 보여 연필 심지에 침을 묻혀 다시 조금이라도 예쁘고 반듯하게 쓰려고 끙끙대고 있었다.

비문해어머니들의 문집 전시
 비문해어머니들의 문집 전시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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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작을 위촉한 분들에게 선정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대회의 취지와 주제가 분명히 들어간 편지를 선정해달라고 했다. 문학적인 어떤 문장법이나 기승전결의 원칙이 아닌 진솔함과 감동을 선사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마침내 장려상, 차하, 차상과 함께 장원이 나왔다. 대학원을 졸업한 국어선생도, 책을 몇 권씩이나 낸 지역의 작가도 아닌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글씨 모양으로 쓴 눈물이 방울 방울 떨어져 있던 그 할머니의 편지였다. 장원을 한 할머니는 시상식 때 한복을 곱게 입고 눈물을 흘리셨다. 장려상을 수상한, 책을 몇 권이나 발간한 분은 시상식에 나오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예 상장과 상품을 수령해가지도 않으셨다.

할머니의 편지는 딸들에게 대한 미안함을 용서로 비는 글이었다. 가난해서 딸들을 공부를 잘 못 시킨 그 시대의 모든 어머니의 마음을 담은 듯하였다. 딸들의 공부를 잘못시켰던 것이 자기가 공부를 몰라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에 담고 두고 두고 아프셨다고 한다.

그래서 70세가 다 되어가는 나이인데도 지금이라도 비문해반에서 글을 배워 딸들의 아이들인 손주들에게 동화라도 제대로 읽어주고 싶은 애틋한 사랑의 마음도 들어갔다. 그 할머니가 편지를 낭독하셨을 때 많은 할머니들이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청각장애 때문에 듣지 못하는 나는 눈시울을 적시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내 가슴도 그렇게 함께 감동과 뿌듯한 보람으로 젖어들었다. 목욕탕에서 아이들의 몸을 씻으면서 나오는 때와 마음을 하나로 모아 연필 끝에 나오는 지우개 때가 참 비슷하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심신을 치유하는 바람이 어디서나 공평하게 부는 것처럼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것도 가끔 닮은 꼴이 나온다는 것이 재미있다.

'아 그 할머니가 5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우면서 열심히 공부하시구나. 비문해반을 졸업하고 다시 일본어도 하고 영어도 하고.'

할머니를 복도에서 만나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가 소망하시는 공부도 즐겁게 오래 오래 건강하게 하세요."


태그:#보람있는 문화예술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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