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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이싸이에서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뱃길
▲ '슬로우 보트' 타고 1박2일 훼이싸이에서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뱃길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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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라오사람들에게 강은 '어머니'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도 '메콩'이란 '메남콩', 즉 '어머니 강'이라는 단어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식수를 얻고, 그 물로 벼를 기르고, 그 물에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수고한 몸을 담그고 휴식한다. 강이 만들어준 물길을 따라 상인이나 학생의 이름으로 혹은 여행자가 되어 한 생애를 오르고 내린다. 또한 강을 따라 마을을 이루고, 강폭이 호수처럼 넓어지는 곳에서는 비엔티안이나 루앙프라방 같은 대도시를 만들었다.

이렇듯 강은 그이들에게 식수이고 물고기고 목욕탕이고 길이며, 도시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지도를 펼쳐두고 확인할 수 있는 라오스의 땅은 스스로가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을 그대로 닮아있다.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그 강을 타는 날이다. 그것도 1박2일 동안. 다음 목적지인 루앙프라방까지는 뱃길로 꼬박 이틀이 걸릴 테고 우리들은 '팍뱅'이라는 작은 강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어갈 예정이었다. 2일이라는 시간동안 강 따라 배를 타고 여행한다는 것이 흔치 않은 경험이고 보니, 세계의 여러 배낭여행자들로부터 꽤나 인기가 있는 코스가 이 뱃길이다. 

훼이싸이에서 루앙브라방 가는 뱃길
▲ 강가의 아이들 훼이싸이에서 루앙브라방 가는 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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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치않은 경험, 이틀동안의 뱃길 여행

아침부터 비가 살금살금 내렸고, 우리들은 그 비를 맞으며 게스트하우스에서 선착장까지 2킬로미터 정도의 길을 걸어 일명 '슬로우 보트'를 탔다. 이때 '슬로우'란 메콩 강을 여러 날 동안 느리게 오르내린다고 해서 여행자들 사이에서 붙여진 애칭이다.

배는 좁고 길게 생겼는데 의자가 한 열에 네 개씩 전부 스무 줄 정도 놓여있다. 앞쪽에는 우리나라 시골 기차역 대합실에서 볼 수 있었던 좁고 긴 나무널판을 서너 개씩 붙여 만든 의자들이 놓여있고, 뒤쪽으로는 폐차하는 버스좌석을 뜯어다가 다리에 나무각목을 대고 못질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놓였다. 그 뒤편으로 과자나 음료수나 맥주 등을 파는 간이 판매대가 있고, 그 너머는 엔진소음이 요란한 기관실이다.

아이들은 1박2일 동안 함께할 배가 마음에 드는지 어떤지 좌석에 가방만 던져두고는 곧바로 게임이나 놀이를 시작할 태세였다. 혹여나 좌석이 없을까 해서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왔으니, 배가 출발하려면 아직 시간이 충분했다.

그때였다. 내 앞 자리에 앉아있던 하영이가 경악하며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의자에서 도마뱀이라도 기어 나왔나 했더니, 도마뱀이 방안 벽면을 마구 기어 다니던 '사바이디 게스트하우스'에 아끼는 MP3를 두고 온 것이다.

훼이싸이 선착장에서
▲ 메콩강을 오르내리는 '슬로우 보트' 훼이싸이 선착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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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의 풍경
▲ 메콩강을 오르내리는 슬로우 보트 2 배 안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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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에피소드가 많았던 1박2일 슬로우 보트 여행의 첫 해프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하영이 아니라 그의 남자친구인 상훈이다. 그의 일기를 통해 직접 사연을 들어 보기로 하자.  

"'미드'를 보려고 하영's MP3를 찾는데 없었다. 그렇다. 숙소에 두고 온 것이다. 그렇게 비극이 시작되었다. 배려와 희생이 취미인 하영이는 같이 가겠다는 나를 말리고 혼자 길을 떠났다. 그러나 하영이는 우비를 챙기지 않았다. 전개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하영이는 전날 몸살로 고생하고 있어서 더 이상 비를 맞으면 안됐고, 난 그 길로 우비를 들고 하영이의 길을 따라 갔다. 배 출발시간은 10시. 09시 50분이 되도록 그 길을 걷고, 게스트하우스 직전까지 갔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 다 꼬인 거야. 그 알바생의 한마디. "The lady already gone." ……… 난 그 길로 뛰었다. 나 오래 달리기도 잘 못한다. 게다가 난 조리를… 신고 있었다. 하지만 뛰었다. 낙오되기 싫었다. 아니, 안됐다. 나에겐 돈이 없었다. 국제 미아가 되기 10분 전인 것이다. 다행히 10시 되기 2분 전 도착, 국제 미아가 되는 셰익스피어 비극보다 더 슬픈 비극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가 끝이면 5단계가 무슨 소용인가. 결말은 날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배가 12시 20분에 출발했다는 것."

크크. 어쩌면 남자(?)의 운명은 그런 것일까? 상훈이가 맨발에 조리를 질질 끌며 죽을힘을 다해 왕복 4킬로미터의 길을 뛰어다닐 때, 하영은 갈 때는 오토바이를 히치하이킹하고 돌아올 때는 게스트하우스 매니저의 트럭을 얻어 타고 온 것이다.

하지만 비 오는 날 발이 다 까지도록 뛰어다닌 상훈을 결정적으로 절망하게 한 것은, 그의 말처럼 10시에 떠난다던 배가 10시는 물론이고 11시를 지나고 12시가 넘도록 출발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다. 그날 그에게 해준 말이다.

"상훈아, 여행이란 게 그런 거야. 사서 고생하는 거."

루앙프라방 가는 뱃길
▲ 강과 더불어 갈아가는 사람들 루앙프라방 가는 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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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강에서
▲ 강이 주는 풍요로움 메콩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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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는 배...게임에 빠져있는 아이들

선착장을 떠난 배는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아이들은 배 밖 풍경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놀고 있다. 놀이는 언제나처럼 카드게임 '마이티'와 눈치게임인 '마피아'지만 반복되는 지루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같은 게임을 매일 반복해도 질리지도 지치지도 않는 것이 그이들의 최대 장점인 셈이다. 아이들은 마치 그동안 놀지 못한 '한'들을 다 풀어놓고 있는 것 같다.

한편 배 밖에는 평화로운 풍경들이 이어진다. 강가의 아이들이 모래밭을 뛰어다니며 공을 차고, 아낙들은 빨래를 하고, 젊은 어부는 쳐두었던 어망에 밤새 물고기가 들었는지 어떤지 살펴본다. 강물에 몸을 담그고 이른 목욕을 하는 이들도 있다.

여행자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푸른 원색의 삶이 그렇게 강에 기대어 흐르고, 또한 강은 삶의 모든 조건들을 대가없이 물살에 실어내고 있다.  

사실 그날 아내와 나는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이 풍성한 자연과 삶을 등지고, 아이들의 놀이와 게임이 밤늦도록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어진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탈 것으로 이동할 때면 아이들은 놀이에 빠져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곤한 얼굴로 잠들어 버린다.

루앙프라방 가는 뱃길에서
▲ 아이를 좋아하는 아이들 루앙프라방 가는 뱃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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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란 아무리 많은 것들을 가져다 놓아도 결국 자기가 보고 싶은 것들만 보고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들만 배운다고 하지만, 여행길에서 만나고 얻게 될 소중한 것들을 그냥 지나치게 될까봐 조바심이 드는 건 또 어쩔 수가 없다. 이곳 라오스의 자연이나 사람들의 삶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의 놀이에만 빠져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또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한 배에 탄 대여섯 명의 영국 친구들 때문이다. 배가 2시간도 더 늦게 출발한 것도 그들을 태우기 위해서였지만, 그야 여행길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배가 출발하고부터 앉은 자리에서 줄곧 담배를 피워댄다는 것이다. 맥주병을 하나씩 들고 떠들어대는 것까지는 좋다고 해도, 저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를 배에 탄 사람들이 다 마시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들 역시 마찬가지다.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배 안 타인들의 권리에도, 배 밖 사람들의 삶에도 무심하거나 무례한 것이다. 심란했다. 과연 저 젊은 영국 친구들이나, 또 우리 여행학교 아이들이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배우게 얻게 될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강은 흐르고 배는 달린다. 6시간 만에 도착한 중간 기착지인 팍뱅은 우리 부부의 기분처럼 쓸쓸해 보였다. 이미 날은 어두워있었고, 먼저 도착한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은 모둠별로 숙소 사냥에 나선다. 아직 하루 남은 뱃길이 길고 멀게만 느껴지는 시간이다.      

루앙프라방 가는 뱃길에서
▲ 메콩강에 해가 지고 루앙프라방 가는 뱃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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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연재 기사는 <제민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은 김향미 & 양학용 여행작가 부부가 지난겨울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명의 청소년과 2명의 대학생과 함께 라오스로 한 달 동안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저서로는 967일 동안의 세계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묶은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예담)와 라오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 등이 있습니다.



태그:#여행학교, #라오스, #슬로우보트, #메콩강, #루앙프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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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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