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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 중 한 학생이 "당신(1%)의 연봉이 20년 동안 갚아야 할 나의 학자금 대출보다 많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뉴욕 맨해튼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 중 한 학생이 "당신(1%)의 연봉이 20년 동안 갚아야 할 나의 학자금 대출보다 많다"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뉴욕 맨해튼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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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대학교 졸업식보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더 성대하게 치른다. 가정에서도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축하 파티를 열어주는 등 미국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고등학교 졸업을 자녀들이 부모를 떠나 독립적인 성인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시점으로 여겨왔다.

요즘 들어 이러한 미국 사회의 전통이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좀처럼 경기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젊은 층의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해서 생활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부모를 떠나 독립했던 자녀들이 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결국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미국 브루클린(Brooklyn)에 사는 23살의 매트 래만(Matt Lehman)은 대학 졸업과 함께 취직한 첫 직장에서 최근 해고된 후 부모와 함께 살면서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문제는 매트 래만과 같이 대학진학 후 부모로부터 독립했던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 졸업 후 취업하면 상환할 계획으로 은행과 정부로부터 대출받았던 대학 학자금과 생활비를 취업을 하지 못해 갚지 못하게 됨에 따라 빚쟁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어렵사리 취업을 해도 경기 침체로 인해 첫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경우가 많아 대학 졸업 후 빚쟁이가 된 자녀를 결국 부모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리게 된 것이다.

미국 정부가 10년마다 실시하는 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25세에서 34세 사이의 미국 성인들의 숫자가 59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결과는 본격적인 경기 침체가 시작되기 전에 실시한 조사에서 집계된 470만 명보다 무려 100만 명이 증가한 것으로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성인 자녀들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지난해 5월 전미금융교육재단이 미국의 18세에서 39세 사이 성인 남녀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59%가 부모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고 응답해 미국 젊은이의 절반 이상이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백수 자녀 때문에 은퇴 뒤에 다시 취업... 등골 휘는 미국 부모들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박민희 예비후보(왼쪽에서 세번째)와 예술계열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2월 27일 오후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박민희 예비후보는 "졸업생들이 종이옷처럼 화려한 미래를 선택할 수 있지만 막상 사회에 진출하면 높은 취업의 문턱에 좌절한다"며 청년실업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박민희 예비후보(왼쪽에서 세번째)와 예술계열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2월 27일 오후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박민희 예비후보는 "졸업생들이 종이옷처럼 화려한 미래를 선택할 수 있지만 막상 사회에 진출하면 높은 취업의 문턱에 좌절한다"며 청년실업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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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자녀들이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의 실업률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의 20세에서 24세 사이 젊은이들의 평균 실업률은 15.4%로, 지난해말 미국 전체 실업률 8.5%의 약 2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미국 젊은이들의 실업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졸업 후에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생활비에 쪼들리던 백수 자녀들이 학자금 대출 상환 압력까지 시달리다가 결국 부모의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백수 자녀들의 뒷바라지 때문에 미국 부모들의 등골이 휜다는 사실이다. 전미금융교육재단이 성인이된 백수 자녀를 부양하고 있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6%가 성인 자녀 부양을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등 빚을 내서 생활하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백수 자녀 부양 때문에 주택 구입을 미루고 있다고 한 응답자가 13%, 그리고 백수 자녀 부양을 위해 은퇴시기도 미뤘다는 응답자도 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부모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았던 자녀들이 경기침체의 여파로 백수가 되면서 이제는 부모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어 부모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백수 자녀들 뒷바라지에 매달리는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은퇴시기를 늦춰가면서까지 일을 계속하고 있으며, 은퇴 후 안락한 노후생활을 대비해 준비해둔 노후자금마저 자녀들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심지어 이미 은퇴를 한 부모들 중 일부는 백수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미국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지금처럼 열악한 상태가 계속 이어진다면 앞으로 더 많은 부모들이 백수 자녀들의 부양을 위해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 경기가 당분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백수 자녀들 때문에 휘어진 부모들의 허리를 펴줄 뾰족한 대안이 없는 현실이 미국 부모들을 서글프게 만든다.


태그:#미국 대학생, #실업사태, #백수 자녀, #최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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