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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1일 오전 9시 50분]

"편집부장 해임통보 받았을 때 여기저기서 다들 울었죠. 모두들 이건 아니다. 학교가 정말 치졸하다. 온갖 욕이 다 나왔죠."

지난 2월 말 신촌에서 만난 <건대신문> 전 사회부장 김정현씨는 "많은 분들의 지지가 있었고 결국 해임을 막아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지난해 <건대신문> 편집국장이 대학신문의 데스크격인 주간교수와의 마찰로 인해 일방적 해임통보를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에 앞서 2009년에는 중앙대 본부가 중앙대 교지 <중앙 문화>를 전량 수거했다. <중앙 문화>가 당시 총장을 비판하는 시사만화를 게재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후 중앙대 본부는 <중앙 문화>에 대한 예산지원마저 중단하며 <중앙문화>를 압박했다.

이처럼 대학 언론사들이 온갖 수난을 겪고 있다. 학교 예산 감축에 따라 ▲ 주간 발간→ 격주간 발간 ▲ 부수 감소 ▲ 주간교수에 의한 편집권 침해 등을 받고 있다. 1980년대 후반 군사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영향력을 떨치던 대학언론은 어느새 옛말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 언론을 지키는 이들이 수백명 이다. "신문 만들기 동아리죠?"라는 신입생들 질문에 씁쓸한 가슴 한 켠을 내주며 오늘도 마감시간에 허덕이는 대학기자들은 "그래도 '대학언론'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며 분투를 멈추지 않고 있다.

대학언론의 자치권 탄압을 겪은 이들의 고민과 바람을 살펴보기 위해 건국대 학보사 <건대신문> 전 사회부장 김정현씨, 중앙대 교지<중앙문화>의 편집장 이창훈씨 그리고 대학생 대안언론 <고함20>의 편집장 박정훈씨를 만났다.

대학 언론 수난시대...'예산 감축·주간교수' 진퇴양난

지난 2월 28일 신촌에서 만난 중앙대 교지<중앙문화>의 편집장 이창훈씨.
 지난 2월 28일 신촌에서 만난 중앙대 교지<중앙문화>의 편집장 이창훈씨.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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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당국의 교지 수거사건으로 화제가 된 중앙대 교지<중앙 문화>의 이창훈씨는 "2009년 58호 교지가 강제 수거 당할 때부터 갈등은 시작 됐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2009년 강제수거 이후 2010년 1월 학교본부에서 재단과 학교당국에 대한 비판적 논조를 문제 삼아 교지의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당시 중앙대 여성 교지 <녹지>와 함께 총 3500만 원 정도의 예산이 삭감돼 결국 한 교지당 약 1700만 원 정도의 예산이 삭감됐다. 이후 교지예산을 담당하던 언론매체부장이 교지대 자율납부안을 본부에 제안했다."

자율납부안은 등록금 고지서에 의무적으로 교지대를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자발적 선택으로 납부하는 제도를 말한다. 결국 <중앙 문화>는 2010년 6월 중앙대 본부가 교지편집위원회를 자치기구로 인정하는 조건에 교지대 자율납부안에 합의했고 사태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그마저도 학교당국과 총학생회와의 논의가 늦어지면서 결국 교지대가 빠진 채 등록금 고지서가 발송되었고 그해 교지대는 전액삭감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창훈 편집장은 "예산삭감으로 인해 결국 교지를 발간하지 못한 <중앙 문화>는 이후 자체 제작한 교지를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배포하며 학교를 상대로 투쟁과 대화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그 후 <중앙 문화>는 끈질긴 투쟁 끝에 결국 중앙대 총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지난 2월 28일 신촌에서 만난 건국대 학보사<건대신문> 전 사회부장 김정현씨.
 지난 2월 28일 신촌에서 만난 건국대 학보사<건대신문> 전 사회부장 김정현씨.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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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신문> 편집국장 해임통보와 복직사건의 경우 주간교수에 의한 편집권 침해의 대표적 사례다. <건대신문> 전 사회부장 김정현씨는 "<건대신문>은 총장님이나 학교본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한 사건은 아니다, 편집권에 대한 주간교수의 과도한 개입이 문제였다"며 "학생총회관련 기사를 두고 주간교수와 의견차이가 있었다, 학생기자들의 의견이 담긴 기사를 주간교수가 반영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가 계기가 되어 주간교수가 갑자기 전화로 신문사 사칙을 언급하며 학생기자들이 진행하는 기획회의에 대학본부직원을 파견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건대신문>은 주간교수의 일방적 조처에 대해 편집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신문파업을 시작했다. 대학언론의 기능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페이스북을 통해 학내사건은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교내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을 사실관계가 다르게 보도했고 이에 대해 해명과 사과를 했음에도 이를 구실로 주간교수는 <건대신문> 편집국장을 해임했다.

"편집국장 해임은 오히려 8주나 투쟁을 이어가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2011년 2학기가 끝나갈 무렵 편집주간 교수가 먼저 찾아왔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후배들 장학금도 불투명하다며 회유를 하더라. 솔직히 타협할 마음은 없었는데 형편이 어려운 친구도 많았다. 고민 끝에 타협의 조건으로 요구사항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KU미디어 규정'의 개정, 둘째는 대학본부 직원의 회의 참관 거부, 셋째는 편집국장 복직이다. 이후 주간교수로 부터 'KU미디어 규정'을 개정하겠다는 구두약속을 받았고, 대학본부 직원의 회의 참관은 철회됐으며, 편집국장이 복직되었다. 이렇게 투쟁이 8주 만에 마무리되었다."

김정현씨는 "편집장의 해임반대 투쟁 그리고 복직의 과정을 통해 깨달을 바가 있다"며 "학보사는 학교기관이기 때문에 교내 규정의 영향을 받았게 되고 사실상 주간교수가 독단으로 해임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라서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재미없어 안 보는 학내언론 "학교도 문제지만 우리도 문제죠"

지난 2월 28일 신촌에서 만난 대학생 대안언론 <고함20>의 편집장 박정훈씨.
 지난 2월 28일 신촌에서 만난 대학생 대안언론 <고함20>의 편집장 박정훈씨.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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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함20>은 '이십대가 만드는 이십대 대표언론'을 모토로 기자회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자체예산에 의해 운영되는 인터넷 언론사다. <고함 20>의 편집국장 박정훈씨를 중심으로 참가자들은 대학언론의 향후 발전 방향에 대한 다양한 고민을 털어놨다.

<고함20>의 편집국장 박정훈씨는 "특정 기관에서 예산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글쓰기가 자유롭다"며 "대기업 광고를 받는다고 기업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포기해서 안되듯 학내언론이 학교당국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정현씨도 "사건의 근원은 저널리즘에 대한 학교관계자들의 몰이해가 원인이다"라면서도 "대학당국만 욕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학내언론의 자성도 촉구했다.

박정훈씨는 "독자입장에서 교내 뉴스는 딱딱하고 식상해서 솔직히 재미가 없다"며 "대학언론이 평범한 학교 뉴스를 정리하는 수준의 보도에 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씨의 날카로운 지적에 김정현씨 역시 "솔직히 주변의 친구들 역시 대학신문은 재미없다고 한다"며 "우리 보고 '신문부' 혹은 '동아리'냐고 묻기도 하는데 그만큼 대학신문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며 우려했다.

"대학언론이 80~90년대에는 군사정권의 기성언론 탄압에 대안언론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지금은 학보사가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2월 28일 신촌에서 만난 건국대 학보사<건대신문> 전 사회부장 김정연씨, 중앙대 교지<중앙문화>의 편집장 이창훈씨 그리고 대학생 대안언론 <고함20>의 편집장 박정훈씨.
 지난 2월 28일 신촌에서 만난 건국대 학보사<건대신문> 전 사회부장 김정연씨, 중앙대 교지<중앙문화>의 편집장 이창훈씨 그리고 대학생 대안언론 <고함20>의 편집장 박정훈씨.
ⓒ 김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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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씨는 "요즘 각 학교의 언론사들도 위기의식을 많이 느끼고 있다"며 "대학 언론이 외부압력에 맞서 싸우면서도 콘텐츠 혁신 등 대학언론 자체의 자구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언론 사이에 위기의식이 퍼지면서 콘텐츠 부분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다. 경희대 교지 편집위원회 <고황>에서 '나는 거지다'를 기획해 20대의 빈곤함에 관한 외부기고를 통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독자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유머나 농담 따먹기 식으로 글을 꾸민다면 신문이 가벼워질 수 있다."

박정훈씨는 "무엇보다 기획기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며 "학교 식당 리뷰 등 학내의 간단하고 재미있는 사건에 대한 기획이나 총장이과 교수 등 학생들이 관심 가질 만한 인물에 대한 학생들의 직접 인터뷰 등도 좋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정현씨는 "요즘은 SNS를 통해 최대한 신문의 속보성을 살리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며 "지난해 <건대신문>이 페이스북을 통해 생중계한 총학생회 선거가 학생들로부터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고 실례를 들었다.

학내 언론의 미래 등 고민을 나누며 깊이 공감하던 이들은 "<건대신문> 잘 보고 있습니다" "<중앙 문화> 교지에 이 기획은 어때요?"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 몇 년간 대학언론의 자치권 '탄압'과 '투쟁'을 겪으며 언론의 어두운 이면을 일찍 경험한 이들. 그러나 그들의 기사작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정현씨는 "사실 내 꿈은 기자가 아닌 칼럼니스트"라며 "그래도 현장의 생생함을 가장 먼저 전하는 매력 때문에 조중동만 아니면 직업인 기자가 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창훈씨는 "개인적으로 <중앙문화> 예산삭감 문제가 터진 직후 굉장히 충격이었다"며 "교지예산이 삭감되고 여러 문제를 겪다보니 어느새 글에 힘이 빠져 있었고 자기검열을 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담담히 말을 이어가던 그는 "그러나 펜을 꺾거나 놓고 싶지 않다"며 "탄압 이후 글을 쓸 때의 거부감과 두려움이 생겼는데, 그것을 넘어서 계속 기사를 써내려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김혜승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대학내 언론, #건대신문 , #중앙문화, #고함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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