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퀸>은 아직도 흥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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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댄싱퀸>이 관객 400만 명을 넘어 계속 순항 중이라고 한다. 1월에 개봉돼 잠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곧이어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에 '불의의 일격'을 맞고 잠시 언론의 시야에서 비켜 서 있던 <댄싱퀸>. 이 영화가 400만 관객을 넘기면서 다시 조명되고 있다.

사실 영화 <댄싱퀸>의 흥행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촌스러운 느낌의 포스터가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영화는 웃음과 감동의 흥행 코드를 두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영화는 황정민, 엄정화 두 배우를 투톱으로 내세움으로써 관객들에게 영화가 최소한 본전을 한다는 믿음을 심어줬는데, 다행히 그 기대를 크게 배신하지 않았다.

엄정화는 극 중에서 그녀가 가장 잘하는 노래와 댄스를 선보임으로써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황정민은 자타가 공인하듯 여전히 능청스러운 연기로 관객들의 몰입을 도왔다. 영화가 두 배우의 장점을 최고로 끌어냄으로써 장기적인 흥행을 보증한 것이다.

또한 영화는 정치를 정면으로 내세움으로써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황정민 역의 황정민은 영화 속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열연했다. 이는 10.26 서울시장 선거를 치른 관객들에게, 그리고 4.11 총선을 눈앞에 둔 관객들에게 결코 심상치 않게 보였을 것이다. 영화가 필연적으로 현재의 정치판을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어쨌든 영화 속 황정민은 노무현과 박원순, 그리고 오세훈까지 적절히 섞여 있는 인물 아니던가.

그래서 결국 400만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댄싱퀸>.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 흥행이 영 탐탁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는 재미있고, 눈을 조금 찔끔할 정도로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불편하다. 왜일까?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 단순히 황정민이 조선TV의 <한반도>에 등장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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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아보게 하는 엄정화의 꿈

기본적으로 영화 <댄싱퀸>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동화를 단순히 사전적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라고 규정하지 않고, '읽는 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이야기'라고 해석한다면 영화 <댄싱퀸>은 그야말로 그 정의에 정확하게 들어 맞는다. '먹고사니즘'에 찌들어 있는 중년들에게 당신이 잊고 있던, 지난 시절 꾸었던 꿈은 무어냐고 도발적으로 묻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자신의 꿈을 묻어둔 채 엄마와 아내로, 아빠와 남편으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 영화는 그들에게 아직 늦지 않았음을, 아직 꿈을 실현시킬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음을 이야기한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라고 영화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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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던 꿈의 상기와 자아 실현. 이와 관련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 볼 인물은 역시 엄정화이다. 꿈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황정민과 달리 엄정화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가수를 꿈꿔왔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딸의 말을 계기로 그 꿈을 위해 정진하는 모습이 황정민과 비교해 더 주체적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온갖 편견을 뛰어넘어야 하는 그녀의 고통.

혹자들은 이와 관련해 영화가 '주부 엄정화'가 겪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인 갈등을 본격적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판타지적'이라고 불평하지만 그 정도는 너그러이 봐주자. 비록 영화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엄정화의 자아실현을 보면서 찔끔할 수 있는 건 그만큼 행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지난한 과정을 구구절절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39살 주부 엄정화가 꿈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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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내가 이 영화에 이만큼 너그러운 건 30대 중반을 지나는 내 처지 때문일 것이다. 자식 둘을 거느린 30대 중반의 가장. 마냥 내키는대로 살 만큼 젊지도, 그렇다고 그냥 현실에 만족하며 이럭저럭 살기에는 많지 않은 나이. 어쩌면 지금이 나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이 마흔이 넘으면 그만큼 용기가 없어질 것이고, 끊임없이 적지 않은 돈을 요구하는 현실 앞에서 쉽게 '땡깡'을 부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꿈'을 이야기하는 영화 <댄싱퀸>이 남다르게 보일 수밖에. 

불편한 황정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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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화 <댄싱퀸>이 재미있었냐고? 아니다. 나름 감정이입을 하면서 나를 돌이켜 볼 수 있었던 엄정화의 꿈과는 달리 영화 속 황정민이 꾸는 꿈은 관람 내내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비록 영화는 엄정화의 가수에 대한 꿈과 황정민의 서울시장에 대한 꿈을 비슷한 무게로 다룸으로써 극의 재미를 더하고 있었지만,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며 눈을 반짝거리는 황정민의 모습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무기력한 인권변호사로서 처가의 눈칫밥을 먹으며 살다가 국회의원 친구의 권유를 계기로 서민들을 위해 서울시장을 하겠노라고 결심하게 된 황정민. 영화에서는 그를 용렬한 정치꾼과 비교해 수더분하고 투박한 서민의 인물로 묘사함으로써 그의 출마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와 같은 영화의 설명이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지 순수하고 착하기만 하다면 당선될 정도로 서울시장이 만만한 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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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황정민은 무능하고 무력하다. 비록 타 후보에 비해 훌륭한 인품을 지니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가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추구하고 어떤 꿈을 꾸는지는 불분명하다. 정책의 방향성을 물어보면 고작 한다는 답변이 '시민들과 같이 토론한다'는 것이다. 결국,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서울시장이 되겠다는 목적의식만 뚜렷할 뿐이다.

결국 황정민의 꿈이 불편한 것은 꿈의 종착역이 마냥 '서울시장'이라는 직함이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직함이 최종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물론 어린이에게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직업이 꿈이 될 수 있지만, 나이 스물이 넘어 하나의 세계관을 가진 성인이 오로지 그 직함을 꿈꾼다면 그것은 권력욕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인 재앙일 뿐이다.

비극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이와 같은 재앙을 이미 한 번 겪어봤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책상 위에다가 대통령을 적어 놨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 아니던가. 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반평생 걸어왔던 자신의 궤적을 저버렸고, 함께했던 동지들을 배신했다. 그러고는 결국 대통령이 됐다. 문제는 대통령이 최종 꿈이었던지라 그가 대통령이 된 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는 사실. 결국 그 덕에 사회는 IMF를 맞아야 했다. 대통령 꿈만 꾸던 이에게 나라를 맡긴 탓에 모든 국민이 고생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황정민을 지지하자고?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그건 아니다. 아무리 후보의 성품이 훌륭하다고 해도 출마 자체가 우연으로 점철된 이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명한 철학과 비전이 필요하다. 정치는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시대의 부름이란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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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많은 후보자들이 백가쟁명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여기서 유권자가 할 일은 영화 <댄싱퀸>에 등장한 황정민과 같은 이를 구별해 내는 일이다. 철학과 비전을 운운하며 구국적 결단을 내렸다지만, 결국 '금배지'를 따기 위해 움직이는 철새들, 정치인의 꿈을 직함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 부디 많은 이들이 <댄싱퀸>을 보며 감동보단 비판의식을 갖기를 바란다.

댄싱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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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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