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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금오도를 오가는 여객선
 여수에서 금오도를 오가는 여객선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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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여수반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1시간 30분을 가면 금오도라는 섬이 있다. 금오도에는 걷기 열풍 대열에 합류한 길이 있다. '비렁길'이다. 어감이 어찌 좀 그렇다. 다른 아름다운 이름도 있었을 텐데, '비렁'이라는 어감은 비렁뱅이라는 말이 있듯 남루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요즘 '비렁길'은 인기다.

비렁길은 남도의 방언 '벼랑'에서 온 말이다. 말 그대로 해안가 절벽들을 이어주는 길이다. 해안절벽을 걸어가는 기분, 짜릿한 느낌이 오지 않는가? 거기다 바다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해안 풍광까지 더한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길이 어디 있겠는가?

비렁길이 있는 금오도(金鰲島)는 옛 이름이 거마도(巨磨島)다. 조선시대 큰 소나무들이 울창하여 검은 섬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단다. <세종실록>에는 소나무를 국가가 사용하기 위해 입산과 벌채를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지정해 놓았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큰 자라를 닮아 금오도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금오도 비렁길 이정표
 금오도 비렁길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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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 들어가는 뱃길은 여러 개가 있는데,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비렁길 출발점인 함구미마을로 바로 가는 배가 하루에 세 번 있다. 첫배가 6시 10분에 있는데, 새벽부터 서둘러야 하니 부지런하지 않으면 타기 힘들다. 두 번째 출항하는 배는 9시 40분에 출발한다. 바다를 달리는 여객선이라고 멋진 배를 상상했다면 조금은 실망한다. 최근에야 비렁길이 생겨서 관광객들이 타고 다닌다지만, 여전히 섬사람들의 대중교통수단일 뿐이다.

여객선터미널을 나온 배는 산자락 끝까지 집들이 들어선 여수 시내를 보여준다. 여객선 뒤로 갈매기들이 따라오면서 춤을 춘다. 새우깡이라도 사올 걸. 갈매기들이 고개를 꺄우뚱하면서 눈을 마주치지만 줄 게 없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객선과 춤추는 갈매기들의 멋진 비행을 여유롭게 즐긴다.

배는 1시간 정도를 달리더니 말 그대로 섬들 사이를 오간다. 개도에 닿더니 섬은 바짝 끼고 돌아간다. 개도를 돌아 나가면 커다란 산처럼 막아선 섬이 보인다. 그 아래로 마을이 자리 잡았다. 오늘 여객선이 도착할 함구미마을이다.

함구미에서 장지까지 18.5㎞?

마을은 섬을 여행 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섬에 첫발을 딛는 설렘이랄까? 표정들이 밝다. 비렁길을 알리는 표지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느라 열심이다. 비렁길이 18.5㎞? 직포까지 8.5㎞로 알았는데, 어느새 길은 새로 만들어 졌다. 비렁길은 함구미에서 장지까지 총 18.5㎞, 7시간 30분을 걸을 수 있다.

비렁길에서 만난 돌담
 비렁길에서 만난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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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렁길 풍경
 비렁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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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지나 비렁길로 들어가는 길에는 대발에 돌김이 말라가는 풍경이 정겹다. 조용한 섬마을에 사람들이 갯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비렁길을 다녀갔다는 리본이 나뭇가지에 나풀거린다. 길은 두 사람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섬을 빙 돌아 나가듯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다. 촉촉한 산길이 봄 햇살에 싱그럽다.

비렁길 걷는 중간에는 폐가들도 있다. 돌담이 예술이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을 만들었는데, 문으로 바람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안쪽으로 구부려서 담을 쌓았다. 굳이 문을 달지 않고 담을 구부린 섬사람들의 멋이 느껴진다. 폐가로 들어서니 아늑하다. 사람 사는 온기는 잃은 지 오래지만 이 외딴 바닷가 벼랑에서 오랫동안 척박하게 살아갔을 체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돌담을 따라 정겨운 돌계단 길을 오르니 커다란 돌담 모퉁이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신다. 돌담을 너무나 잘 쌓았다고 감탄하니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쌓았을 거라고 한다. 바다를 바라보는 경사진 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바람과 서로 공생하는 방법을 찾은 게 돌담이 아닌가 싶다.

부드러운 해안절경 따라 걷는 해안길

비렁길은 부드러운 해안길이다. 산책하듯 걷다보면 바다를 보고 펼쳐놓은 아주 넓은 바위를 만난다. 미역널방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아래로 아주 깊은 협곡이 내려다보인다. 주민들이 바다에서 미역을 채취하여 이곳에서 말렸다고 해서 미역널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역널방 바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아름답다. 발 아래로 거친 파도가 바다의 야성미를 자랑하고, 고개를 들어 바라본 수평선은 아득한 그리움이 끝없이 흘러간다.

아찔한 낭떠러지 위에 있는 미역널방
 아찔한 낭떠러지 위에 있는 미역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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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가 아름다운 수달피비렁 전망대
 팽나무가 아름다운 수달피비렁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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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널방 바위부터는 말 그대로 비렁길이다. 벼랑 위로 길을 냈다. 분홍색 나무데크 길을 걷는 기분이 좋다. 옆으로 보이는 미역널방 바위가 장관이다. 천길 낭떠러지라는 말이 실감난다. 바다에서부터 90m 높이란다. 영화 속에 나오는 풍경 같은 감동이다.

나무데크 길 끝은 수달피비렁 전망대가 나온다. 넓은 바위에 수달이 자주 모여 놀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달피비렁 전망대에는 팽나무가 길 위로 올라섰다.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길을 만들었는데, 그게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길은 옛 송광사터를 지나고, 농사를 짓기 위해 척박한 땅에 돌담을 쌓고 개간한 밭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간다. 소나무 사이에 컨테이너 박스가 보인다.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쉼터다. 금오도 막걸리와 두부김치를 시켜서 점심을 먹는다. 막걸리 맛이 진하다.

두포마을,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

숲속을 걸었다가 다시 바닷가를 보면서 걷기를 반복한다. 넓은 바위를 만나면 신선이 놀았음직한 신선대다. 길은 바다를 보면서 걷기를 계속한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걸으니 마을이 보인다. 두포마을이다. 두포에 오니 마음이 편해진다. 깊은 오지를 벗어난 기분이다. 버스정류장도 있다. 잠시 앉아서 쉬었다 간다.

비렁길 가는 길에 신선대 바위
 비렁길 가는 길에 신선대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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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해안절경을 보여주는 비렁길
 아름다운 해안절경을 보여주는 비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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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등전망대가 있는 비렁길
 굴등전망대가 있는 비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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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끼고 다시 해안 길을 걸어간다. 시멘트 포장길을 한참 간다. 길은 거칠어지기도 하고, 오르막을 만나기도 한다. 가는 길 중간에 인가가 보인다. 굴등전망대가 있는 곳은 기껏해야 3가구가 돌담을 쌓고 산다. 이 깊은 섬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걷기를 3시간 넘게 했더니 조금 지루하기도 하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니 두포마을을 보았을 때와 비슷한 풍경을 만난다. 직포마을이다. 직포(織浦)라는 지명은 금오도 옥녀봉의 선녀가 이곳에서 베를 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는 길에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보았는데….

직포마을은 해송이 집집마다 아름답다. 해송이 먼저 있었는지 집이 먼저 있었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잘 어울려 있다. 직포에서도 비렁길은 섬의 서쪽을 따라 남쪽 끝까지 이어진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걸을 생각이다.

마을에는 비렁길 걷기를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객선 시간도 여유가 있어 우학마을까지 걸어간다. 마을 주변은 온통 방풍나물 밭이다. 주민들은 방풍자랑에 흥이 났다. 밭에서 쪼그려 앉아 방풍을 수확하다가도 지나가는 길손이 말을 걸면 바로 받아준다. 섬사람들 정이 깊다.

전국 방풍 중 금오도 방풍이 최고

해송과 잘 어우러진 직포마을
 해송과 잘 어우러진 직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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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는 밭에 방풍나물을 재배한다. 섬에서 자란 야생초인데 씨를 받아 재배를 했단다.
 금오도는 밭에 방풍나물을 재배한다. 섬에서 자란 야생초인데 씨를 받아 재배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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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풍 중 금오도 방풍이 최고라고도 하고, 어디로 팔리냐고 물으니, 서울이고 어디고 간에 식당에 방풍나물 안 나온 데가 없다고 자랑이다. 방풍이 풍을 예방한다나? 정말 말 그대로 이름도 잘 지었다.

우학 선착장에 도착하니 다리가 뻐근하다. 직포에서 우학까지 3.5㎞ 정도니, 오늘 걸을 거리가 12㎞ 정도 된다. 여수로 가는 배는 4시 30분에 온단다. 섬 사이로 보이는 바다가 파랗다. 비렁길의 아름다운 풍광과 옛날 옛적 그 곳에서 살아갔던 섬사람들의 애환이 오래된 영화 속 풍경처럼 아른거린다.

덧붙이는 글 | 금오도 비렁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수시 남면 사무소(http://nam.yeosu.go.kr/)를 방문하세요.

지난 3월 10일 여수 금오도 비렁길을 다녀왔습니다.



태그:#비렁길, #금오도, #섬, #바다,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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