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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퇴직 후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와서 안락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형태의 삶을 '귀촌'이라고 부른다. '귀농'이 젊은 생계형이라면, 귀촌은 노년의 안락한 삶을 추구한다. 최근 도시에서 정년을 맞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귀촌을 희망한다는 보도가 종종 나온다.

바다로 나갔던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듯이, 도시에서 길을 잃은 젊은 노년들이 내려와 빈집을 채우고, 텃밭을 갈고, 이웃과 경험을 나누며 정붙여 산다면, 텅빈 농촌엔 생기가 돌 것이다. 예산군에도 큰 소문없이 귀촌해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집을 수소문해 방문했다.

충남 예산군 대술면 송석리 한적한 산마을.

500평 남짓한 터에 두 노인이 살기 알맞은 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는 귀촌 8년차인 김차중(75), 양현실 부부는 농촌사람이 다 됐다. 공기 좋은 곳에서 한가한 노후를 생각하며 60년 서울 생활을 접고 내려왔는데 어느새 텃밭을 더 늘리고 싶은 욕심쟁이 농사꾼이 된 것이다.

오늘은 이것저것 사러 읍내에 다녀오자마자, 포도나무 밑에 거름을 주고 이웃과 함께 키우는 고추육묘장을 보살피고 나니 하루 해가 저무는지 닭들이 모이를 달라고 보챈다.

김 옹 부부가 이웃주민과 함께 심은 배추육묘장을 보살피고 있는 모습.
 김 옹 부부가 이웃주민과 함께 심은 배추육묘장을 보살피고 있는 모습.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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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데 어려운게 하나도 없어. 내 이웃들이 선생님이고, 그 사람들이 시키는대로, 하는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돼. 어떤 때는 내가 심은 배추가 더 좋다니까. 그저 난 거름 주라면 주고 약 치라면 치고, 시키는대로 틀림없이 한 것 밖에는 없는데두…."

농사일은 누구에게 배웠냐고 하니, 김 옹은 사람좋게 웃으며 이웃 주민들의 도움이 가장 컸다고 한다.

농사 선생님은 이웃들

예산군은 그의 고향이 아닐뿐 더러 아무 연고도 없는 생면부지의 땅이다.

그는 예산으로 귀촌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때 교사도 했고, 이곳저곳에서 직장인으로 살다 정년퇴직 하고, 청와대 아래 효자동에 살았는데 하루종일 할 일이 없어. 서울서는 운동을 할래도 체육관에 가던지 일부러 등산을 해야 해. 직장에 다닐 때 운동삼아 하는 등산은 좋은데, 놀면서 하는 등산은 못할 짓이야. 그리고 나이가 들으니 20kg 쌀한푸대도 못 옮길 정도로 체력이 떨어지는 거야. 지금은 25kg 사료 포대도 번쩍 들어 옮길만큼 좋아졌지만…. 귀촌을 결심하고는 지도를 꺼내놓고 서울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지역을 콤파스로 둥그렇게 그려놓고 땅을 찾다가 예산과 인연을 맺었어. 그게 2004년도야."

김씨의 집을 둘러싼 텃밭에는 사과, 배, 포도, 매실, 복숭아, 감 그리고 복분자까지 없는 나무가 없다. 거기다가 닭장에는 하루에 90여개의 계란을 낳아주는 토종닭이 130마리나 된다. 노부부의 유일한 용돈벌이라는데 용돈을 넘어 생활비까지 나오는 눈치다.

"서울서 살고 있는 자식과 손주들에게 싱싱한 과일과 푸성귀를 먹이는 재미로 가꾸니 어렵지도 않아. 그리고 계란도 보내줬더니 수퍼에서 파는 양계장 계란하고는 맛이 다르거든. 아들, 딸네집 이웃 사람들이 이 계란을 먹어 보고는 서로 사먹겠다고 보내달라고 하는 바람에 마릿수를 야금야금 늘렸지. 더 늘리고 싶은데 너무 많으면 냄새가 나서 이웃들에게 폐가 될까봐 더는 안 키워."

김씨는 장날이면 닭 배합사료 재료를 구하러 시장에 나가 굴껍데기와 야채, 정육점에서 고기를 썰 때 생기는 부스러기까지 구해온다. 이렇게 만든 배합사료를 먹고 낳은 웰빙계란이니 그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터.

손재주도 보통이 아니다. 병아리를 깨는 부화기까지 손수제작해 사용한다. 그러고는 "인터넷에 들어가면 만드는 방법이 다 나와 있다"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마을에 처음 왔을 때 텃세는 없었냐고 물었다.

"아주 없었다고야 할 수 없지. 그런데 금방 좋아졌어. 먼데서 온사람 도와 주는게 시골인정이니까. 그리고 내가 자가용이 있어 읍내에 나갈 때마다 버스 기다리는 마을 분들 태우고 다니니까 금방 정이 붙더라고."

과일, 채소, 닭... 재미가 쏠쏠

지금 대도시에서 귀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냐는 말에 김씨는 첫째가 용기라고 한다.

"그리고 차분히 준비하면 돼. 65세면 인생 끝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일해서 건강을 찾고 자식들에게 싱싱한 먹을거리를 주니 얼마나 좋아. 귀촌을 할려면 땅을 사는게 가장 중요한데 반드시 그 마을 이장을 만나봐야 해. 부동산업자들 말만 믿고 샀다간 바가지를 쓰고 낭패를 볼 수 있거든. 또 호수 같은게 있어서 경치가 좋고 땅값 비싼 곳은 인심이 사나우니 피해야 해. 인터넷과 전원생활 같은 잡지를 이용해 사전에 정보를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 그리고 먼저 귀촌해 사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듣는 것도 필요해."

그러자 "바쁜 양반들 붙잡고 얘기가 길다"며 김씨의 아내 양현실 할머니가 타박을 한다.

기자가 할머니에게 "대부분 여자들이 반대해 시골로 못내려 온다는데 농촌에서 사니 어떠냐"고 묻자 "나도 괜찮아. 손주들 다 커서 서울서 특별히 할 일도 없는데 여기 오니까 공기좋고, 건강해지고 애들도 좋아하고"라며 할아버지를 향해 "저 양반들 가게 이제 그만 얘기하고, 닭모이 주라"며 채근한다.

해주고 싶은 말이 더 있는데 아쉽다는 표정이 돼 닭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김씨의 뒷모습은 노년을 넘어 중년의 활기가 배어난다. 알록달록한 토종닭들이 그의 발소리를 듣고 우르르 닭장 문앞으로 몰려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귀촌, #귀농,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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