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3월 2일 서울 세브란스병원 강당에서 열린 이소선어머니합창단 연습
 3월 2일 서울 세브란스병원 강당에서 열린 이소선어머니합창단 연습
ⓒ 이소선어머니합창단

관련사진보기


"자, 이제 베이스하고 테너만 해봅시다. 얼마나 못 하는지 한번 들어보세요."

지휘를 맡은 성악가 임정현 선생님의 뼈 있는(?) 농담에 모두 웃음이 빵 터졌다. 등에 커다랗게 구호를 써 붙인 그을린 얼굴의 남성들도 겸연쩍게 웃고,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여성들도 깔깔깔 웃음을 쏟아냈다. 지난 2일 저녁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강당.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의 연습 풍경이다.

이소선어머니합창단. 혹시나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이라고 읽어서 '주부 합창단인가?'하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 합창단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니의 뜻을 기리는 노동자 합창단이다. "하나가 돼라. 노동자는 하나가 돼야 한다"는 이소선 어머니의 뜻에 따라 한국노총 산하의 연세의료원노조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산하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20여 명이 뭉쳤다.

이소선 어머니는 지난해 9월 3일 돌아가셨다.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은 9월 7일 이소선 어머니의 영결식 무대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뒤로 11월 12일 열린 '전태일 정신 계승 노동자대회' 무대에도 섰다. 원래는 이소선 어머니 영결식 때 한 번의 공연을 위해 모인 프로젝트그룹(?)이었는데 자꾸 불러주는 데가 생기다 보니 아예 상시적인 멤버를 갖춘 공연팀으로 꾸려볼 마음을 먹은 것이다.

내가 찾아간 날은 그렇게 팀을 재구성하기로 한 뒤 처음 모인 연습 날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거기 있었을까? 사실 지금 생각하니 참 우습다 싶다.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의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는 금속노조의 한 간부가 기자인 내게 '이런 팀이 꾸려질 것이다'라는 보도자료(?) 메일을 보내준 것이 발단이었다.

'그냥 알고나 있으라'는 정도의 그 자료를, 나는 순간 '너도 같이 하자'는 것으로 너무 적극적으로 해석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쭈뼛쭈뼛 연습장을 찾아갔고, '낙장불입'이라고 회비까지 덜컥 내버린 멤버가 되고 말았다.

합창단의 '민폐 단원'... '피아노 학원이라도 좀 다닐걸' 

"도~옹지는 간 데 없고 기~잇발만 나부껴어~."

아, 안 된다. 지겹도록 듣고 부른 <님을 위한 행진곡>인데 합창곡으로 편곡된 노래라 완전히 새로 배워야 할 지경이다. 집회를 할 때는 그저 씩씩하게만 부르면 '장땡'인데, 화음이 뭔지도 모르고 흉내 내려니까 주눅이 들어서 입이 잘 안 떨어졌다. 더군다나 이분들은 이 노래로 그 큰 무대에 두 번이나 선 분들 아닌가.

군데군데 자신없는 부분은 입만 벙긋거리면서 립싱크(?)도 좀 하고 겨우 넘어갔다. 이제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의 두번째 레퍼토리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연습할 차례. 이것 역시 합창곡으로 편곡된 것이라 낯설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처음일 테니 그래도 마음이 한결 편하다. 지휘자 선생님이 일일이 파트별로 음을 불러주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열심히 녹음을 했다.

나도 녹음을… 아, 이런… 내 전화기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귀만 쫑긋 세우고 음을 기억하려고 열심히 듣고 있으니 '거긴 왜 녹음을 안 하냐'는 선생님의 지적.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렇다'고 했더니, 한번 '허헛' 하고 헛웃음 웃으시고는 '다른 사람이 녹음파일을 좀 전송해주라'고 하셨다. 첫날부터 이게 무슨 민폐란 말인가! 다행히 친절한 쌍용차 노동자 한 분이 먼저 나서서 파일을 보내주셨다.

15분 동안 파트별로 따로 모여, 녹음한 것을 들으며 음을 익혔다. 들은 대로 따라만 하면 되는데, 알다시피 그게 그렇게 쉬우면 진작에 다들 가수가 됐을 것 아닌가. 15분이 후딱 지나고 다시 모여 노래를 불렀다.

"소~올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새~앳바람에 떨지 마아~라."

노래를 하면서 여기저기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웃음도 피식피식 나왔다. "하나가 되라"는 이소선 어머니의 뜻을 기리는 합창단이라 그런가, 자꾸 옆 사람 노래를 따라가서 음도 하나가 된다. 다시 파트별로 음을 짚어주는 지휘자 선생님.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한테 악보는 있으나 마나다. 악보를 볼 줄 모르니 그저 선생님 소리를 열심히 듣고 무작정 흉내 내는 수밖에. '아,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이라도 좀 다닐걸' 하는 후회가 머릿속에 살짝 스쳐갔다.

2011년 9월 7일 이소선 어머니 영결식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의 모습
 2011년 9월 7일 이소선 어머니 영결식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의 모습
ⓒ 이소선어머니합창단

관련사진보기


잘 되지 않는 부분은 몇 번이나 부르고 또 다시 불렀다. 이제 좀 된다 싶은 순간, 지휘자 선생님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가라고 했다. 무대는 언제나 낯설다. 객석에는 지휘자 선생님밖에 없지만 앉아서 노래할 때랑은 사뭇 다른 긴장감이 느껴졌다.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고옷~ 사알~아서 만나리라아~."

우와, 이거구나! 뭔가 짜릿짜릿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오르는 것 같았다. '이래서 합창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확 꽂혔다. 제 아무리 인순이나 조용필이 와도, 혼자서는 절대 만들어내지 못할 소리. 저마다의 소리가 서로 섞이고 어울려야만 낼 수 있는 소리였다. 한 번 흥이 오르니 목소리도 자신있게 나왔다. 다른 사람들이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목소리를 섞으니 부르기도 좋고 듣기도 좋았다.

'쌍용차 복직' 기념 무대 만든다면... 새로운 꿈을 꾼다

두 시간 정도 이어진 연습이 끝났다. 지휘자 선생님은 다음 연습 날까지 각자 녹음파일을 열심히 듣고 음을 완벽히 익혀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다음 연습날은 3월 30일. 한 달에 한 번 매달 마지막 금요일 저녁에 정기연습을 하고, 공연일정이 잡히면 그에 따라 추가로 연습을 하게 된단다.

뒤풀이를 하러 가는 길에도 머릿속에서 노랫소리가 웅웅 울리는 것 같았다. 쌍용차 노동자 몇몇은 길을 걸으면서도 계속 노래를 불렀다. 2009년 여름, "해고는 살인"이라 외치며 77일 동안 옥쇄파업을 벌인 이들이다. 그 뒤로도 1000일을 넘겨 이어지고 있는 전쟁 같은 해고자의 삶.

그동안 목숨을 잃은 20명이 넘는 동료와 가족들이 아마 저들의 가슴속에 묻혀 있겠지. '해고자 복직' 조끼를 입고 신촌 거리를 걸으며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그들의 상처가 이 노래를 통해 조금이라도 아물기를 잠깐 기도했다.

다음 연습부터는 공공운수노조 국립오페라합창단지부 노동자들이 함께해 '중심'을 잡아준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연습 날 전까지 공개적으로 단원을 모집해서 합창단을 60명 규모로 늘릴 계획이라고. 노동자라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고 하고, 공개모집이라고는 하지만 오디션은 따로 없단다. 역시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차별 없는 연대'의 정신에 투철하다고 봐야 하나?

실력 있는 분들이 많이 들어와서 합창단이 발전하면 참 좋은 거지만 조금 불안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60명이 다 한 무대에 서기는 참 힘들 것이고, 그렇다면 안 그래도 버벅거리는 내가 주전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지 않을까 하는…. 예끼! '하나가 되라'는 이소선 어머니의 뜻으로 모인 합창단인데 여기서도 경쟁을 생각하고 있다니! 어머니한테 혼나기 전에 마음을 고쳐먹어야겠다.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이 되고 나서, 나한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우리 합창단의 단독공연. 이소선의 어머니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함께 맞춰 입고, 이소선 어머니를 추모하는 시에 가락을 붙여 만든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 무대에 '쌍용차 해고자 복직 기념'이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걸 수 있다면 정말 최고일 것이고.

다음 연습 때까지 스무 날 정도가 남았다. 부지런히 녹음파일을 듣고 열심히 연습해야지. 새로운 멤버들도 많이 나올 텐데,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의 '민폐 단원'으로 내 캐릭터가 굳어져서는 안 된다. 아, 녹음기도 챙겨야 한다. 내일 당장 선배기자들을 찔러서(?) '고성능' 취재용 녹음기부터 구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 이소선어머니합창단의 단원이 되고 싶은 분은 페이스북 그룹 '이소선어머니합창단(http://www.facebook.com/groups/263867227004804/)'으로 들어와 신청해주시면 됩니다.



태그:#이소선, #합창단, #이소선합창단, #이소선어머니합창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록하는 사람.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산지니, 2021) 등의 책을 썼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