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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나의 영향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후배가 한 명 있다. 계기는 2000년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선거였다. 공화당 조지 부시 후보와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재검표 소동까지 벌이며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내 모습을 그 후배는 더 흥미롭게 쳐다봤다. 우리나라 선거도 아닌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웬 관심이 많으냐는 것이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후배였기에, 어설프게 미국 대선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을 지겹게 설명하였다가는 고리타분한 선배로 찍힐 것 같은 노파심이 들었다. '정치'라는 재미없는 쓴 약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당의정이 필요했다.

 

나는 그 후배에게 4년 혹은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선거는 4년마다 개최되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처럼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얘기했다. 규칙을 알고 보면 스포츠경기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정치도 게임의 룰을 안다면 정말로 재밌게 즐길 수 있다는 식의 설명이었다. 전술은 주효해서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후배는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물론, 선거 결과가 생활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할 정도가 됐다.

 

4·11 총선, 몇 석 얻어야 승리했다 할 수 있을까

 

4년마다 돌아오는 총선 시즌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선거철이 돌아오면 농번기 농부들처럼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직접 선수로 뛰어야 하는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그 게임의 결과를 중계하는 정치부 기자들과 결과를 전망해야 하는 자칭, 타칭 정치평론가들도 호황을 누리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문제는 선거는 스포츠 경기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여러 부분에서 다르겠지만, 그 중에서도 이번 총선과 관련하여 가장 크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승패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물론 개별 지역구에서야 당락이 명확히 갈리니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갈린다. 하지만 정당 차원의 승패는 어떻게 판가름해야 하는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그 기준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시계를 20년 전쯤으로 돌려보자. 1992년 총선에서는 당시 여당이던 민자당이 과반에 육박하는 149석을 얻었음에도, 당시 언론은 여당이 참패했다고 보도했다. 3당 합당까지 하며 크게 불린 몸집을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치러진 1996년 총선에서는 여당인 신한국당이 139석을 얻어 직전 선거보다 의석수가 줄어들었음에도 승리로 기록됐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신한국당이 이회창이나 박찬종 등을 영입하여 선방했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승패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4년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이 단독 과반을 획득하며 명실상부한 진보진영의 승리임을 알렸다. 민주노동당도 10석을 얻어 사상 최고의 의석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패자는 확실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121석을 기록하여 역대 최저 의석을 차지했지만, 당시 박근혜 대표는 난파의 위기에 빠진 당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박근혜=선거의 여왕'으로 불리게 된 계기가 바로 진보진영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총선이었다는 것은 선거의 결과를 둘러싼 평가가 주는 아이러니다.

 

제1당 차지하는 정당이 승리 월계관 쓸 가능성 농후

 

그렇다면, 다가오는 4·11 총선의 승패 기준은 무엇인가? 한동안 민주통합당 일각과 언론에서 '단독 과반' 운운하며 지지자들의 눈높이를 한껏 높여놓더니 요즘은 숨고르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선거 수순이다. 너무 앞서간다고 떠드는 것은 지지자들의 긴장을 이완시킬 뿐만 아니라 상대 진영의 표를 더욱 결집시킬 수도 있다.

 

너무 차이가 크게 난다고 판단되면 지난 총선이나 대선처럼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를 아예 꺾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이겨도 백중우세 쯤으로, 져도 백중열세 정도로 평가를 내려야 가능한 최대의 득표치를 얻을 수 있다. 덧붙여 승패의 기준에 대한 눈높이를 높여버리면 이겨도 평가를 박하게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정치인들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7일자 <한겨레신문>에 난 "'수도권 우세론' 헛물켠 민주…내부 전망도 '130석 어렵다'" 제목의 기사가 눈에 띈다. 두드러지게 하락한 지지율을 보니 엄살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한동안 민주통합당의 상승기였다면 지금은 완연한 하락세다. 쇄신과 공천 결과에 대한 실망감이 그대로 목표 의석의 하향 설정으로 나타난 것이다.

 

신문기사에 나온 내부 전망의 이면은 이렇게 추론된다. 아마도 민주통합당 내부에서는 130석과 총의석수의 딱 절반인 150석 사이가 현실적인 목표치가 되고, 통합진보당과 자유선진당이 가져갈 의석수를 상정하여 단독 과반을 차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전제하면 제1당이 되느냐 여부가 승패의 기준이 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단 한 석이라도 많이 가져가 제1당을 차지하는 정당이 승리의 월계관을 쓸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130석을 넘어 제1당을 차지한다는 목표는 쉬울까? 이것은 민주통합당이 매우 잘 나가서 모든 조건이 매우 만족스러울 때만 나타날 수 있는 의석수다. 3당 합당 이후 민주당, 국민회의, 열린우리당 등의 깃발을 들고 나섰던 민주통합당 계통의 정당이 130석 이상을 차지한 적은 탄핵 역풍이 불어주었던 2004년 총선이 유일하다.

 

'MB정권 심판' 구도 무너지면... 선거는 새누리당 몫

 

최근 선거 결과로 130석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스포츠에 기본적인 실력과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있다면 선거에는 기본적인 구도와 선거 국면의 집중력이 존재한다. 만약 선거의 기본 구도가 MB정권 심판이 된다면 어느 정도의 집중력만 유지하고도 민주통합당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본 구도가 흔들리고 지난 무상급식 투표에서 확인된 여당 고정표(투표율 25.7% 내외)가 힘을 발휘한다면, 이번 선거는 박근혜가 이끄는 새누리당의 몫이 될 것이다.

 

여당 고정표는 전국적인 구도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민주통합당의 지지기반인 호남의 의석수는 30석, 새누리당의 지지기반인 영남의 의석수는 67석이다. 극복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차이다. 더구나 분위기가 좋았던 지난해 서울시장 보선과 함께 치러진 강원과 충청, 영남의 기초자치단체장 선거는 당시 한나라당이 싹쓸이했다. 전국적인 구도에서는 지난 재보선에서조차 새누리당이 완승한 셈이다.

 

민주통합당이 제1당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의 상당부분은 영남, 그 중에서도 이른바 낙동강 벨트를 중심으로 한 부산 지역에서 민주통합당 당선자가 상당수 나올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한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낙관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 한 표라도 지면 끝나는 소선거구제에서 문재인을 비롯한 민주통합당 부산지역 출마자들의 당선은 쉽지 않다. 2000년 총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부산에서 10%p 이상으로 앞서고도 실제 선거에서 뒤집힌 사례가 있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10%p 이상 앞서고 있는 문재인 후보도 안심할 수 없다면 다른 후보들 역시 당선보다는 낙선의 가능성이 많다고 보아야 한다.

 

민주당, 제대로된 바람 못 일으키면 질 수밖에 없어

 

그러면 이번 총선 전망이 진보 진영에게 여전히 어둡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여전히 유권자들의 바닥 정서에는 'MB정권 심판'이라는 도도한 강물이 흐르고 있다. 민주통합당이 그것을 담을 그릇을 만들지 못하고 있고, 그 물줄기를 힘차게 흐르게 할 바람을 만들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 선거를 이길 동력은 수면 아래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 사용하는 공도 둥글고 투표소에서 찍는 기표용구의 모양도 둥글다.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에선 대부분 집중력이 경기의 승패를 좌우한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지지율이 앞서는 부자 정당은 몸조심하며 가야하고 지지율이 떨어지는 정당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한 곳에 집중해야 이기는 법이다.

 

지금까지 민주통합당은 부자도 아니면서 부자가 된 것처럼 행세하고, 거기다 부자의 기본 덕목인 몸조심도 할 줄 몰랐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그 틈을 정확히 파고들며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다시 1위로 회복시켰다. '선거의 여왕'이라 불릴 만한 놀라운 집중력이다.

 

현재까지 새누리당은 수도권의 고정표와 영남이라는 지역기반을 회복하면서 본인들이 가지고 있던 숨겨왔던 실력을 내놓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 민주통합당은 MB정권에 대한 실망감을 바탕으로 야당 바람을 불게 해야만 하는 국면에 맞닥뜨렸다. 기본 체급이 딸리기 때문에 바람을 제대로 일으키지 않으면 선거에서 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본격적인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이미 바람의 힘을 한 차례 보여줬고, 새누리당은 보수 세력의 저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판세에 대한 여론조사 맹신, 부채도사 믿는 거랑 같다

 

선거 마지막까지 온갖 여론조사 결과가 공표될 것이고, 각 언론사는 경마 중계하듯이 각 지역의 판세를 분석해 내놓을 것이다. 한 가지 관전 포인트를 상기해주자면, 여론조사가 선거 결과를 다 맞히지 못한다는 원론적인 문제제기를 넘어서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론조사가 번번이 틀려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각 전문가들은 이 결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여론조사 지지율 말고는 달리 분석할 도구가 없으니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과도한 의미 부여는 분명 피해야 할 일이다.

 

여론조사 기관에게 선거는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대목이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여론조사 기관은 200개가 넘는 지역구를 제대로 분석할 만한 인력과 역량을 갖추고 있지 않다. 더구나 유선전화에서 무선전화로 바뀐 통신환경에 적용할 정통한 조사기법을 발굴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조사에 판세 분석의 대부분을 맡기는 것은 부채도사를 믿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전국적인 정당 지지율도 참고 사항으로 봐야지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 총선 의석수는 각 지역의 결과가 모자이크 형식으로 집계된다. 한 표 차이로 이긴 지역이나 만방으로 진 지역이나 결과는 1: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은 정당 지지율에서 앞서고도 의석수에서는 뒤지는 구성의 모순이 나타나기 쉽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런 오리무중 상황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의견이 판세를 좌우할 결정적인 흐름인 것처럼 과신하는 오류도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김진표의 공천으로 10석은 날아갔다'는 <오마이뉴스> 기사도 이런 경향성을 잘 보여준다. 김진표의 공천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그의 공천이 과연 10석을 날아가게 할지는 극히 미지수다. 아마 실제로 '10석이 날아간다'기보단, 그만큼 잘못된 공천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일 테지만, 그 글을 읽은 뒤 판세를 오인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돌입할수록 부동층은 줄어들지만 지지율의 격차도 오차 범위 내로 좁혀지기 시작한다. 여론조사에서 말이 없는 부동층은 투표장에 걸어갈 때까지 자신의 의사를 숨길 가능성이 높고, 이들의 미세한 표의 흐름이 총선의 판세를 좌우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박빙의 승부에서 어김없이 증명됐다. 결국 중요한 건 각 세력의 집중력이다.

 

지지정당이 확실치 않은 제3자에게 이번 선거는 꽤 흥미 있는 게임이 될 수도 있다. 오랜만에 여야가 승패를 확신할 수 없는 진검승부를 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이뤄야 하고 지켜야 할 정책과 비전을 갖고 있는 정치 세력과 인물에게 이것은 게임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게임에서 집중력은 단지 승패를 위한 유희에 지나지 않지만, 역사를 두고 벌이는 선거는 절대로 그런 한가한 게임이 아니다. 여기서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해 선거에 패하는 세력에겐 그만큼의 정치적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태그:#4.11총선, #민주통합당, #새누리당, #여론조사,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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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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