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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후 2시 다뉴바시 경찰서 맞은편 '한인 역사기념비' 앞에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한인 4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92년 만에 한인 이민선조들이 조국 독립을 염원하며 행진한 3.1절 기념 시가행진을 재연했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로 미국 땅에 발을 디딘 한인 이민선조들의 미국 본토 정착지인 캘리포니아 한복판 리들리(Reedley), 다뉴바시(Dinuba).

하와이 정착 이후 미주 본토 한인들의 뿌리인 다뉴바시에서 열린 3.1절 기념 시가행진 재연행사를 기록한다.

한인 뿌리의 현장, 다뉴바·리들리시

3.1절 기념 시가행진 재연행사는 한인장로교회 앞에서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을 갖고 시작했다. 이번 행사는 다뉴바시(시장 마이크 스미스)와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회장 차만재)가 공동주최했다. LA,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실리콘벨리, 프레즈노 등 가주 전역 한인 400여명은 버스 7대와 승용차를 타고 역사 현장에 모였다. 이날 행사는 다뉴바시와 리들리시 관계자,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6.25 참전용사 전우회,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대한인동지회 등 여러 단체가 동참했다.

캘리포니아 한인들이 '뿌리' 장소인 리들리, 다뉴바 시를 찾았다
▲ LA, 샌프란, 산호세, 프레즈노 한인들, 이민선조 고향을 찾아 캘리포니아 한인들이 '뿌리' 장소인 리들리, 다뉴바 시를 찾았다
ⓒ LA이글포토 사진동호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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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만재 회장은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첫발을 내딘 한인 이민 선조들은 노동계약이 끝난 1905년 5월부터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리들리, 다뉴바시로 새 도전에 나섰다"며 "당시 힘센 장정들은 탄광과 철도 현장으로, 농사일이 익숙한 분들은 리들리, 다뉴바, 리버사이드에 정착했다"고 설명했다.

다뉴바시는 지난해 한인들이 장로교회 터와 3.1절 행진거리에 세운 기념비를 '다뉴바시의 영원한 역사기념물'로 지정했다. 마이크 스미스 시장은 "모든 시민을 대신해 환영한다"며 "우리 시가 한인들의 뿌리 현장인 것이 자랑스럽고 그 '기억'을 영원히 지켜갈 것"이라고 말했다. 차만재 박사는 "100년 전 한인들은 농사꾼으로 각종 인종차별을 견디며 악착같이 일했다"며 "이제는 리들리시와 다뉴바시가 그분들 역사를 자랑스러운 시의 역사로 기념한다"고 반겼다.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다

1920년 3월 1일, 중가주 다뉴바(Dinuba)시에는 아침까지 비가 내렸다. 한인장로교회(204 N O st, Dinuba)에 모인 300여 명의 한인 이민선조들은 비가와도 3.1절 독립운동 1주년 기념 행진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 시각 윌로우스 한인 전투비행사 양성소를 떠난 이용선 비행사는 폭우를 뚫고 프레즈노까지 날아오고 있었다.

한인 남성 노동자들은 모처럼 '양장'을 차려입고, 한복을 입은 아낙들은 자녀들과 행진 대열에 섰다. 한인 300여 명은 고된 노동으로 번 돈을 십시일반 모아 기마대와 차량 20여대를 동원했다. (당시 이민 선조들은 급여의 10분의 1을 독립자금으로 모았다. 3.1절 기념행진 당시 1000달러를 모금하기도...)

향후 독립군을 지원하기 위한 간호사들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행진 대열을 이끌었고 이민 선조들은 다뉴바시 메인거리 L 스트릿 약 1마일을 행진했다. 이들은 매년 3.1절을 기념하며 미국인들이 일본인과 동일시할 때면 끔찍이 싫어했다.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발을 디딘 한인 이민선조는 미국에서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
▲ 다뉴바 한인 이민선조들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발을 디딘 한인 이민선조는 미국에서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다.
ⓒ 김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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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아낙들은 이민선을 타고 온 이도, 당시 한국에서 사진(사진신부)만 보고선 이역만리 남편을 처음 만나러왔다.
▲ 독립군을 지원하려는 의지를 담은 여성 간호사들 한인 아낙들은 이민선을 타고 온 이도, 당시 한국에서 사진(사진신부)만 보고선 이역만리 남편을 처음 만나러왔다.
ⓒ 김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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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3일, 지금은 다뉴바시 경찰서가 자리한 한인장로교회 기념비 앞에 모인 한인들은 다들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100년 전 한인 노동자들이 다뉴바, 리들리시에 한인타운을 만들고 교회를 세우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막대한 독립자금을 보탰다는 기념비 내용과 사진이 존재한다는 사실, LA와 샌프란시스코에서 200마일 떨어진 한인 뿌리 현장을 이제야 찾은 자신의 모습에 부끄러웠던 것.

중가주 바이셀라에서 온 조성호(50), 크리스티 조(48)부부는 "미국 본토에 온 한인 300명이 농장 일꾼으로 일하면서 독립운동에 나섰다니 참 놀랍다"며 "여태껏 역사를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나직하게 말했다.

대한독립 만세, 한인 이민선조 만세

오후 4시, 한인 400여 명은 간단한 단체촬영을 한 뒤 92년 전 3.1절 1주년 기념현장인 장로교회 터 앞에 줄을 섰다. 다뉴바시는 교통통제 인원과 말 두 필을 선두에 세웠고 지역 자동차 딜러는 오픈카 3대를 협찬했다. 한인 여성 약 30명은 적십자 두건에 하얀 간호복을 입고 태극기를 들며 1920년 3월 1일을 그대로 재연했다. 가주 전역에서 모인 한인과 시 관계자들은 너도나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O 스트릿과 L 스트릿을 행진했다.

한인 이민선조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불구 독립운동을 기념했다.
▲ 1920년 3,1절 1주년 기념행진 한인 이민선조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불구 독립운동을 기념했다.
ⓒ 김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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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명이 긴 행진 대열을 이뤄 시내를 걷자 시골 도시 시민들은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기록으로 남겼다. 행진 대열의 의미를 알게 된 거주민 버지니아 로드리가스(62)는 "내가 어릴 적 한인들은 미용실과 트럭 회사, 식당 등을 경영했다"며 "지금 이곳에서 한인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들은 다뉴바시 역사를 만든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인들은 다뉴바시 중심가인 L스트릿에 세워진 '1920년 3.1절 1주년 기념 시가행진 기념비'까지 행진했다. 도심 한복판에 선 이들은 이민 선조들이 걸어간 길을 똑같이 행진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찬 표정이었다. 기미독립선언서가 한국어와 영어로 낭독되자 현지 주민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많은 이민선조들은 조국 광복을 보지 못 하고 영면하여 다뉴바와 리들리에 묻혀 계신다. 그들의 희생어린 정신, 믿음, 애국 활동을 후세에게 알리자"라는 기념비 속 사진에는 지금은 세상을 떠났을 한인 아이들이 한복을 입은 채 활짝 웃고 있었다.

한인 후손들이 선조의 정신과 넋을 기렸다
▲ 92년 만에 3.1절 행진 재연 한인 후손들이 선조의 정신과 넋을 기렸다
ⓒ 김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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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행진 재연
▲ 시가행진 재연 시가행진 재연
ⓒ 김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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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행진을 마친 한인 2세들이 한인 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
▲ 코리안 아메리칸 시가행진을 마친 한인 2세들이 한인 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
ⓒ 김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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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내륙 농장지대에 정착한 한인 300여명은 매년 3.1절을 기념하고 막대한 독립자금은 상해 임정에 보냈다.
▲ 다뉴바 한인장로교회 터 기념비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내륙 농장지대에 정착한 한인 300여명은 매년 3.1절을 기념하고 막대한 독립자금은 상해 임정에 보냈다.
ⓒ 김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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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즈노 중가주 한인들은 돈을 모아 이민선조 역사 기념비를 세웠다
▲ 다뉴바 한인역사 기념비 프레즈노 중가주 한인들은 돈을 모아 이민선조 역사 기념비를 세웠다
ⓒ 김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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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바 리들리 한인타운 역사현장>
다뉴바 한인장로교회: 204 N O ST, DINUBA, CA
리들리 한인 이민역사 기념각: 196 N REED AVE, REEDLEY, CA
리들리 한인 이민선조 공동묘지: 1850 S REED DR, REEDLEY, CA
리들리 한인장로교회: 1408 J ST, REEDLEY, CA
리들리 한인 이민선조 박물관: 1752 10th Street, Reedley, CA (559) 638-1913


태그:#3.1절, #미주 한인, #캘리포니아, #리들리, #다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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