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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을 앞둔 동국대 교정은 신입생들로 북적거렸다. 학과별 새터(신입생 예비모임) 준비로 개강보다 일찍 교정을 찾은 신입생들의 재잘거림에 봄기운이 물씬 묻어났다. 그런 신입생들을 바라보며 김정도(22)씨는 "누군가는 입학을 하는데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 내 처지가 아이러니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동국대의 대학구조조정에 반대활동을 벌이다 총학생회 정·부학생회장과 함께 퇴학처분을 받았다. 총장실 불법 점거와 시설물 파손 그리고 입시설명회 방해가 주된 이유였다. 총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은 퇴학처분에 재심의를 통해 무기정학으로 감면되었지만 김씨는 "재심의 소명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2월 9일 퇴학처분이 확정되었다.

김씨는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활동만이 아니라 반값등록금부터 명동 마리 철거 반대투쟁, 학내 청소노동자 노동조합 연대활동까지 사회운동에도 열심이었다. 최근에는 투쟁과정에서 4번이나 연행돼 215만 원의 벌금 폭탄을 맞기도 했다. 김씨는 "퇴학으로 등록금이 굳을 줄 알았더니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김씨는 자신의 퇴학처분에 "학교당국이 표적 징계를 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실제 동국대 관계자는 김씨의 퇴학처분과 관련해 2월 29일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불법 점거와 시설물 파손 그리고 입시설명회 방해의 3가지 사안뿐만 아니라 "김씨의 지난 2년간의 활동을 참작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김씨보다 먼저 대학으로부터 퇴출당한 '퇴학생 선배'가 있다. '나꼼수'로 유명한 시사평론가 김용민씨가 "대학의 본령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기회와 비용을 쏟아부었던 이타적인 청춘"이라고 표현한 중앙대 노영수(30)씨다.

노씨는 지난 2010년 4월 두산그룹이 인수한 중앙대가 학과구조조정을 진행하자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라며 학내 공사장 크레인에 올라 항의농성을 벌이다가 퇴학처분을 받았다. 그는 이후 끈질긴 법정투쟁 끝에 지난해 1월 법원으로부터 "중앙대의 퇴학처분은 무효"라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중앙대는 법원의 퇴학무효 판결에도 불구하고 노씨에게 무기정학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크레인 점거로 공사 진행에 방해를 받았다며 25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노씨는 가까스로 지난해 2학기에 복학했다.

김씨보다 먼저 퇴학을 경험한 노씨는 김씨의 퇴학처분 무효투쟁에 힘을 보탰다. 그는 지난 2월 10일 김씨의 퇴학이 확정된 이후 열린 규탄 기자회견에서 "법정에서 분명히 동국대의 퇴학처분은 철퇴를 맞을 것이다"라며 "퇴학 선배로서 동국대 학생들과 함께할 것이다"라고 연대의 뜻을 내비쳤다.

대학구조조정에 반대활동을 벌이다 퇴학생 선후배 사이가 된 노씨와 김씨가 지난 2월 29일 서울 충무로에서 만났다.

김씨는 학교당국의 퇴학처분으로 학내 활동이 조심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며 "잃을 것이 없기에 대학 구조조정과 등록금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씨는 "고려대와 중앙대의 사례처럼 학생들의 비판행동에 대량징계를 내리는 대학당국의 결정이 법원에서 무효화 되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당국과 총장이 법원의 무효판결에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퇴학당했는데 누군가는 입학하고 누군가는 졸업하고..."

대담중인 김정도씨와 노영수씨
▲ 대담중인 김정도씨와 노영수씨 대담중인 김정도씨와 노영수씨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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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학처분 이후 어떻게 지냈나?
노영수(이하 노) "작년 1월에 중앙대가 내린 경솔한 퇴학 처분에 법원이 철퇴를 내렸다. 그런데 중앙대에서 다시 상벌위원회를 통해 나에게 유기정학 처분을 내렸다. 그래서 작년 2학기에 복학을 하고 지금은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김정도(이하 김) "작년 말에 퇴학처분이 내려지고, 재심의를 진행했지만 2월 9일자로 퇴학처분이 확정됐다. 1학기 등록은 하지 못한 상황이다. 무기정학을 받은 총학생회장, 부학생회장과 셋이서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활동하는 동문 선배님의 도움을 받아 퇴학금지 가처분 신청등 법적 소송을 준비 중이다. 사회적으로도 동국대가 내린 퇴학처분의 부당함을 알려내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길게 보면 2년 안에 복학이 되지 않겠나? 소송에서 이긴다면(웃음)."

- 개강이다. 신입생들도 들어오고 대학에 활기가 넘치는 시기인데 마음이 어떤가?
"작년에 퇴학을 당했지만 선배 졸업식에도 참석을 했고, 올해 신입생들 입학식에도 참석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퇴학을 당했는데 누군가는 졸업을 하고, 누군가는 입학을 한다. 조금 생각해보면 대학생활이 너무 파란만장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치열하게 살려고 했을 뿐인데 여러 가지 다른 결과들을 낳으니까 당황스러운 마음도 있다."

"나도 퇴학당한 후, 개강시기마다 학교에서 학생회와 끈을 놓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퇴학당한 서러움, 그런 감정은 분명히 있다. 그런 감정을 더욱 가중시켰던 것은 학교에서 퇴학생들을 상대로 교내 출입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었다. 너무도 매몰차고 필요 이상의 행동으로 학생들을 압박했을 때 그때 너무 많이 힘들었다. 학교와 싸우며 아닌 척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이방인일 수밖에 없구나!'라고 실감할 때가 많았다."

-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보니까 김정도씨는 학내활동만이 아니라 사회운동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던데?
"그 결과가 혹독하다. 작년 6월 10일에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한 번, 그리고 여름에는 명동 마리 철거 반대투쟁에서 친구가 연행되는 것을 막으려고 경찰과 다투다가 공무집행방해로 연행되었다.그리고 작년 6월 20일 등록금 집회와 8월 10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시국대회 참가를 구실로 벌금 100만 원이 나왔다. 명동 철거투쟁건 100만 원, 반값등록금 청와대 앞 집회 15만 원 등 총 215만원 벌금을 부과받았다."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 고등학교와 별로 다르지 않더라"

대학구조조정 반대 활동으로 퇴학당한 동국대 김정도씨
▲ 김정도씨 대학구조조정 반대 활동으로 퇴학당한 동국대 김정도씨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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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대학생들에 비해 독특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벌금까지 받아가면서 사회운동에 나서는 이유가 뭔가?
"재수할 때 공부만 하느라 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미친 용산참사 문제나 쌍용자동차 대량 정리해고 사태 등이 발생했다. 우리 사회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문제에서 나는 공부하느라 아무것도 못했다는 자괴감이 있었다.

입학 후에도 대학을 두고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하는데 고등학교와 별로 다르지 않더라. 그냥 수업 듣고 집에 가고 다시 토익 학원을 다녀야 하는 이런 삶들이 재미가 없다. 내가 나서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에 대해 평범한 학생들도 이런 문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알지만 행동하지 않는 것이고 체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행동하지 않으면 자기 스스로가 자기모순에 빠져서 불편했다."

- 김정도씨의 퇴학처분 철회투쟁에 연대하는 이유가 뭔가?
"동국대를 보면 기업화 전략을 취하는 재단과 그를 집행하는 대학, 그리고 그런 전략과 일방적 행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에 대해 중징계를 내렸던 일련의 과정들이 정확이 중앙대와 궤를 같이한다. 딱히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없더라도 마땅히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동국대 구조조정 과정은 어땠나?
"작년 4월부터 학교 측의 학문구조개편위원회가 출범을 했었고, 윤리문화 학과와 북한학과의 폐지를 비롯한 학과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이후에 저희가 '동행'이라는 학생 대책위를 9월에 구성, 수차례 면담요청과 항의방문, 기자회견, 집회 등 점거 이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었다.

거기서 얻어낸 게 고작 20페이지짜리 설명 자료였다. 학교 측에서는 대화라고 했지만 형식적인 설명회만 두세 차례 열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점거를 행하게 되었다. '동행' 측에 소속되어 있던 학과들이 연합해서 학생총회를 개최하여 점거 안건을 회의에 올려서 가결시키고 12월 15일 점거를 하게 된 것이다."

- 대학 측에서는 "학교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어느 조직이나 사회건 일정부분의 효율성을 가하는 것은 불가피 하다. 그러나 효율화 이면에서 두산재단이 주되게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재벌총수 1인을 중심으로 한 기업과 같은 일사불란한 효율성이었다. 부총장제 도입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기업의 대학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독재 같다. 학교발전을 위해 학과 구조조정으로 인한 피해를 학생들이 좀 참아달라고 말한다. 과거 박정희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통해 국가발전을 강조하며 국민에게 독재를 참고 견디라고 강요한 것과 뭐가 다른가. 경영상의 잘못이나 학교 운영구조에서 비민주성을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학술부총장이 규모의 경제논리를 운운했지만 대학은 경제논리로 운영하면 안 된다. 앞서 노영수씨가 효율성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하셨는데 효율성이 보편적인 시대가 된 것 자체가 안타깝다. 꼭 효율적일 필요가 있나? 대학의 기능을 설명하는 말에는 효율성보다 좋은 말이 많다. 창의력, 상상력, 민주주의 등 좋은 말 많은데 거기에 왜 기업이 왜 들어가고, 구조조정이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동국대에서 고공시위했다면 즉결처형감이었을지도..."

- 대학본부와 학생들 간의 입장 차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물리적 점거 방식을 비판하는 의견도 많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중앙대에서도 본관 앞에서 학과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천막농성을 진행하면서, 본관 점거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본관 점거는 학생회의 체계적인 의결과정과 총학생회의 결의가 필요하고 학생사회의 광범위한 공감대가 있을 때 가능한 투쟁 방식이다. 일개 학과의 힘으로 본관 점거를 진행하지는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동국대 학생들의 본관 점거는 총학생회 당선자들이 앞장서서 대화를 거부하는 대학 측과 대화를 하기 위해 시도한 지극히 정상적인 의사표현 방법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동국대 당국은 이를 꼬투리 잡아 학생 대표자들에게 퇴학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만약 나 같은 학생들이 동국대에서 시위를 했다면 거의 즉결처형감일지도 모르겠다."

- 동국대 측은 "김정도씨에게 재심의를 기회를 주었지만 소명절차에 응하지 않아 불가피 하게 퇴학결정을 확정했다"고 밝혔는데.
"사실이 아니다. 퇴학처분이 내려지고 학교당국에 재심의 요청을 했다. 재심의 개최 공문을 받을 당시에 출석해서 소명할 것인지 서면으로 제출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었다.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은 출석소명과 서면소명을 둘 다 진행 했고, 나는 학교에서 제시한 양식에 맞게 서면 소명서만을 제출했다.

소명을 위해 출석을 하지 않은 이유는 학생준칙에 의해서 열린 상벌위원회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벌위원회 위원 중에는 총장실을 점거중인 학생들을 강제해산 하는 과정에서 선두에 서서 나를 폭행한 사람이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상벌위원으로 우리에게 징계를 논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 동국대 관계자가 김정도씨의 퇴학처분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최근 2년간의 김정도씨의 활동 과정을 참작했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라고 보나?
"표적징계라는 것을 학교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실제로 표적징계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입학을 하고 바로 총학생회 집행부를 해서 크고 작은 집회에 참여했다. 가장 주된 활동은 2010년 10월부터 12월까지 학내에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노동조합이 결성될 당시 조직활동을 도운 것이다. 그리고 2010년 12월 말 청소노동자들이 본관점거 농성을 진행할 때도 주도적으로 연대했다. 그때부터 악연이 쌓인 것 같다.

그 뒤로 작년 8월에는 학교당국이 학생 휴게실을 축소하고 커피 전문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당시 사회과학대 학생회와 공사현장에서 집기를 들어내고 10일 정도 농성을 했다. 학교와 협상을 통해 기존의 커피 전문점 입점공간을 삼분의 일로 줄였다. 2년의 활동 과정을 참작했다는 것은 이러한 활동이 실질적 징계의 이유라는 것이다."

- 중앙대와 동국대는 대학구조조정이 일차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변화된 학교의 풍경을 보면 어떤가?
"절대 구조조정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대학 구조조정 자체가 상시화 되었다. 2010년 4월 8일에 두산이 인수한 중앙대 이사회가 처음으로 의결한 구조조정안 이후에도 학교당국은 학기별로 학과취업률을 근거로 신입생 모집인원 감축을 진행한다. 실제 가정교육과는 폐과되기도 했다. 공개 석상에서 부총장들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계열별로 폐과수순으로 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나처럼 반발하는 학생들은 대량징계로 본보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학생들의 저항은 소극적이다. 교수들 역시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 좌천되고 협조하면 교양학부에 남겨두는 형태로 통제한다. 대학사회가 위축되고 공포가 일상화됨과 동시에 제대로 저항의 목소리를 내야 할 때 그렇지 못하면서 불의가 일상화 되고 있다."

대학구조조정 반대활동 중에 퇴학당하고 현재는 법원의 무효판결에 의해 복학한 중앙대 노영수씨
▲ 노영수씨 대학구조조정 반대활동 중에 퇴학당하고 현재는 법원의 무효판결에 의해 복학한 중앙대 노영수씨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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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사이에서 대학 구조조정을 막지 못했다는 패배적인 기억들이 분명히 있다. 다들 무기력해 있고, 다시 한번 저항을 일으키기 위해 다들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쉽지는 않다. 영수씨 말처럼 패배감과 공포가 일상화 되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비유를 하자면 노예들이 막 탈출하려고 하다 실패하고 순응하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할까. 커피 전문점이 들어오고 상업시설이 늘어나는 만큼 학생공간이 축소되는데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다.

"동국대, 학생징계 '원조' 고려대에서 큰 깨달음 얻어야"

- 이후 징계문제를 어떻게 풀어 갈 것인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퇴학처분 중지 가처분 신청과 퇴학무효 소송준비를 진행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대학 기업화의 문제를 알려내가는 동시에 학내에서 학생들 힘을 모아 징계철회 투쟁을 시작할 것이다. 그에 앞서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고 불안하기 때문에 저 스스로 정신을 챙기는 것도 필요하다."

"대량 학생징계의 원조 격인 고려대의 사례에서 동국대가 큰 깨달음을 얻었으면 좋겠다. 고려대가 통합된 보건전문대 학생들의 학생자치기구 투표권을 요구하는 본관항의 농성을 '교수감금사태'라고 주장하며 항의농성 학생 7명을 출교 조치한 사태를 기억할 것이다. 긴 법정 소송 끝에 민사재판까지 5개의 소송에서 출교 학생들이 완전히 승리했다.

그런 선례가 있었기에 중앙대 문제도 신속하게 법적 해결이 되었다고 본다. 학생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교육기관으로 너무나 경솔한 판단을 내린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고 사법부도 그에 대해서만은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 지금 동국대의 대량징계 사태도 예외 없이 동일한 결과가 나올 꺼라 생각한다.

법정소송에서 퇴학이라는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단을 받을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동국대가 퇴학처분과 무기정학 등 징계를 강행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총장이 최종 재가로 이루어진 징계가 재판부에서 무효라고 판결이 내려지면 책임져야 한다. 총장, 보직 교수 등이 일반시민으로 돌아가야 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서 징계를 남발하지 않게 해야 한다. 국회나 정치권에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대담이 끝나고 노씨는 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고 따뜻하게 격려했다. 새터 준비를 위해 학교로 올라가는 김씨를 뒤로 하고 기자는 노씨와 나란히 걸었다. 퇴학된 이후 긴 시간 동안 학내농성과 법적 소송 등으로 바빴던 노씨에게 "지치지는 않았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눈물이 많기도 하지만 12번도 넘게 남 몰래 울었다. 그래도 고공시위와 퇴학처분 이후 많은 언론에서 관심을 보여줬다.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의 과정을 이야기했던 것 자체가 하나의 치유 과정이 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동국대, #대학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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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이 서서히 물러갈 때, 이 봄날의 꽃이 자신들을 위해 화사하게 피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자신을 지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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