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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씨의 빈소
 고(故)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씨의 빈소
ⓒ 주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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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를 시해한 외조부를 대신해 '더 사죄하기 위하여 오래 살고 싶다'던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씨가 3일 오전 눈을 감았다. 향년 90세.

가와노씨의 외조부는 '구니토모 시게아키'(1861~1909)로 1895년 건천궁 옥호루에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다. 특히 구니토모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주모자 중 한 사람으로 당시 미우라 고로 일본공사의 지시로 명성황후 시해를 위한 '특별부대'를 조직하고, 시해 당일에는 '특별부대원' 들을 끌고 들어가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데 적극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조부의 행적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가와노씨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발생 110년 만인 지난 2005년 5월, 일본시민단체인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들과 명성왕후 묘소인 홍릉(洪陵)을 찾아 무릎을 꿇고 울음을 터트렸다.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해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사죄나 유감 등 어떤 반응도 보인 적이 없었다. 즉 민간차원이지만 첫 사죄의 자리였다. 

기자는 같은 해 6월, 가와노씨를 그가 운영하는 현지 병원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개인적인 사죄로 그칠 일이 아닌 만큼 일본 정부가 나서 사죄해야 한다고 본다"며 "명성황후 시해사건도 일본교과서에서 다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가와노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명성황후의 묘소를 찾아 외조부가 저지른 일을 참회해 왔다. 지난 2007년에는 "죽기 전에 꼭 복원된 건천궁에 와서 용서를 빌고 싶었다"며 경복궁 내 명성황후의 거처였던 건천궁을 찾아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이날 자리에는 손자인 나리타 진(당시 30세)씨가 동행했다.

기자가 가와노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지난 2009년 9월이다. 마침 일본 민영방송인 TV 아사히가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후손들의 사연을 전국에 생방송한 직후였다. 한의원을 운영하던 그는 외조부의 죄상이 담긴 부끄러운 방송 녹화분을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보여주며 '역사 바르게 알리기'에 힘썼다. 당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과 만난 가와노씨는 일행에게 "더 사죄하기 위하여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인의 손자(2007년) "할아버지 돌아가셔도 대를 이어 참회하겠다"

지난 2007년 건청궁 복원행사에 참석한 이태원(뮤지컬 <명성황후> 배우)씨와 명성황후 시해 후손 가와노 다쓰미씨(오른쪽).
 지난 2007년 건청궁 복원행사에 참석한 이태원(뮤지컬 <명성황후> 배우)씨와 명성황후 시해 후손 가와노 다쓰미씨(오른쪽).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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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가와노씨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더 이상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인의 손자인 나리타 진씨는 지난 2007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를 이어 참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 한국인의 심정과 할아버지의 마음을 보다 잘 알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참회 활동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진정으로 존경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더라도 명성황후 묘소를 참배하는 일을 이어서 하고 싶다"

가와노씨의 빈소에는 일본 구마모토 시민단체회원들과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구마모토 시민단체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충남 시민단체는 4일 조전을 통해 "일본 정부도 하지 못한 참회와 사죄의 큰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명복을 빈다"며 "일본의 과거청산과 참된 한일관계 정립을 위해 고인을 대신해 애쓰겠다"고 추모했다.

고인의 영결식은 5일 오후 1시 구마모토 현지에서 열린다.


태그:#명성황후, #시해후손, #가와노다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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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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