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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PK)지역 유력일간지 <부산일보> 지분 100%와 MBC 지분 30%를 갖고 있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총선과 대선 등 중대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슈로 부상했다. 최근 이 지역 바닥민심을 요동치게 한 변수와도 무관치 않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사장을 지낸 바 있는 정수장학회는 태생부터 정치적 악연이 깊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그 악연이 낳은 어두운 그림자가 꿈틀거리면서 해당 신문사 게이트 키핑(뉴스를 취사·선택하는 일)을 옥죄어 왔다. 그러나 더 이상 긴 악연의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게 신문사 구성원들의 한결 같은 주장이다.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동안 정수장학회 문제로 <부산일보> 경영진과 노동조합은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 왔다. 누적된 앙금이 폭발한 것은 지난해 11월 30일. 노조와 편집국은 이날 신문 1면에 이호진 노조위원장에 대한 해고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사와 관련 해설 기사를 2면에 싣기로 하고 편집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사측이 윤전기 가동을 중단시키면서 이날 신문 발행이 중단됐다.

끝나지 않은 <부산일보> 노사 대립

언론노조와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는 지난해 12월 12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정수재단'의 사실상 소유주의 지위를 행사하고 있다며 정수재단의 사회환원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부산일보를 소유한 '정수재단'과 경영진에 맞서 경영권·편집권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호진 부산일보지부장이 경과를 보고 하고 있다.
▲ 언론노조 "박근혜 의원은 정수재단 사회환원하라" 언론노조와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는 지난해 12월 12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정수재단'의 사실상 소유주의 지위를 행사하고 있다며 정수재단의 사회환원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서 부산일보를 소유한 '정수재단'과 경영진에 맞서 경영권·편집권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호진 부산일보지부장이 경과를 보고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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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신문발행 중단은 지난 1988년 편집권 독립 쟁취투쟁 이후 23년 만에 다시 일어났다. 이에 더해 누리집까지 폐쇄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 그러나 앞서 <부산일보>사측은 사장선임제도와 관련해 '불법적인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노조위원장을 징계위에 회부, 하루 전인 11월 29일 면직 통보했다. 또 노조가 주장한 정수재단 환원문제와 관련 사측의 입장을 담은 사고 게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편집국장을 징계위에 회부했다.

하지만 부산지방법원 제14민사부(부장판사 박효관)는 대기발령 중인 이정호 편집국장이 신문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보전가처분' 소송에서 "대기처분 무효확인 청구사건의 본안판결 확정시까지 편집국장의 지위에 있음을 임시로 정한다"며 지난 10일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사측이 편집국장을 상대로 낸 '직무집행정지가처분' 소송을 기각했다.

법원은 "이 사건 징계처분은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으므로 신청인(편집국장)이 주장하는 다른 절차상 하자 및 실체상 하자의 유무에 관하여 살펴볼 필요 없이 위 징계처분은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30일 대기발령 조치를 받은 이 편집국장은 약 70일 만에 징계 무효 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처럼 <부산일보> 노사간 첨예한 대립은 사장 선임 문제에서 비롯됐다. <부산일보> 사장에 대한 선임권은 <부산일보> 주식의 100%를 소유하고 있는 정수재단이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부산일보> 구성원들은 정수재단의 일방적인 사장 선임제도 개선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다.

<부산일보> 노동조합 등 구성원들은 "대선 출마가 유력시 되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정수재단이 신문사 사장을 일방적으로 선임할 수 있는 현 구조는 언론으로서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며 "사장 선임 절차에 <부산일보> 직원들의 뜻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줄곧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수재단은 이런 요구에 대해 대화를 거부한 채 <부산일보> 사장 선임 절차를 강행함으로써 사실상 사장 임명권은 대주주인 정수재단의 고유권한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정수재단은 노조의 주장을 무시한 채 이달 19일 열린 주주총회에서도 신문사 기획실장을 사장으로 임명했다.

<부산일보> 노조는 정수재단의 사장 임명 강행에 대해 "부산일보 구성원들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뜻이 명백한 이번 주총 결과를 우리는 온몸으로 거부한다"며 즉각 유감을 표시하고 신임 사장 출근 저지투쟁에 돌입하는 등 내홍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그런 정수재단은 지금도 <부산일보> 지분 100%, MBC 지분 30%를 소유하고 해당 언론사로부터 매년 수억 원에서 수십 억원의 기부금을 받고 있다.

지역신문들, 정수장학회엔 의기소침... 왜?

정수장학회(청오회) 누리집
 정수장학회(청오회) 누리집
ⓒ 정수장학회 청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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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구성원들의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촉구' 운동은 신문 지면과 거리에서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왜 그들은 이토록 사측과 대립하며 처절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을까.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기획시리즈 '정수장학회를 공공의 자산으로'를 연속 내보내며 정수장학회의 실체와 이사장·이사들의 면면을 고발하는가 하면, 정수장학회의 원상회복과 사회환원을 거듭 요구하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다. 그러는 사이에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정치권과 부산·경남지역의 최대 이슈로 부상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부산일보> 내부 구성원들의 눈물겨운 투쟁활동은 고사하고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지역신문들의 침묵이 이상하리만치 길다. 동종업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전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문제에 대해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속내가 자못 궁금하다.  

MB정부 출범이후 지역신문발전기금 축소 또는 중단 움직임이 일 때마다 한 목소리를 냈던 것이 지역신문들이었다. 지면 파업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혀왔다. 그 중심에는 늘 <부산일보>가 있었다. 특히 <부산일보> 김종렬 전 사장은 9개 지역 일간지들로 구성된 한국지방신문협회 회장을 맡아 미디어법 통과 이후 종합편성채널(종편) 및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최종 선정을 앞두고 사업사 선정 이후의 대응방안과 대기업의 지방신문 광고 미집행에 대한 해결방안을 적극 모색하는 등 지면 파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편집권 독립문제로 기자들과 갈등을 빚어온 김 사장도 지난해 12월 5일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나 동종업계 신문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다. <부산일보>가 첨예한 노사갈등으로 초유의 신문중단 사태를 빚는 등 갈등의 촉매제 역할을 해 온 정수장학회에 눈과 귀와 입을 막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일 지면은 선거의제로 가득 차고 있지만, 정작 중요 정치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정수장학회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왜 그럴까.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지역신문들의 모임인 한국지방신문협회 회원사들도 정수장학회를 외면하기는 마찬가지. 미디어법 통과 이후 보수신문들의 종편진출 반대와 조중동의 신문시장 독과점 제지 등 지역신문을 위협하는 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공동 대응하자며 지면파업까지 벌였던 신문들 아닌가. 그런데 정수장학회엔 왜 관심이 없다. 그것도 다름 아닌 지역, 지역신문사 내부에서 기인한 문제인데도 의기소침으로 일관하고 있다.

25개 지역 일간지 중 16곳은 침묵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의 우선조사 대상에 포함된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및 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정수장학회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40여년간 뛰어왔던, 고(故) 김지태(당시 부일장학회 이사장)씨의 장남 김영우씨가 2005년 2월 3일 오후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작고한 아버지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의 우선조사 대상에 포함된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및 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정수장학회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40여년간 뛰어왔던, 고(故) 김지태(당시 부일장학회 이사장)씨의 장남 김영우씨가 2005년 2월 3일 오후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작고한 아버지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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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사통합 검색사이트 '카인즈(KINDS)'에 입력된 기사들 중 올 1월 1일부터 2월 25일까지 제목과 본문 중 '정수장학회'로 수록된 뉴스를 검색한 결과, 지역신문들이 이 문제에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이 보인다.

<부산일보>를 비롯해 전국 25개 지역일간지들의 '정수장학회' 관련기사는 모두 58건으로, 이 중 <부산일보>가 보도한 관련기사 41건을 제외하면 나머지 일간지들이 내보낸 기사는 고작 17건에 불과하다. 전혀 보도하지 않은 신문도 16곳에 달했다. <카인즈>에 수록된 지역 종합일간지(25개사)는 다음과 같다.

<강원도민일보> <강원일보> <경기일보> <경남도민일보> <경남신문> <경상일보> <경인일보> <광주일보> <국제신문> <대전일보> <매일신문> <무등일보> <부산일보> <새전북신문> <영남일보> <인천일보> <전남일보> <전북도민일보> <전북일보> <제민일보> <중도일보> <중부매일> <충북일보> <충청투데이> <한라일보> 등 25개 신문사.

이 중 광주·전라, 경기·인천, 제주권역 일간지들은 이 기간(1월 1일부터 2월 25일까지) '정수장학회' 관련기사를 단 한 건도 내보내지 않았다. 그나마 다른 지역 일간지들이 내보낸 한두 건의 관련기사들도 정치권에서 주장한 내용을 따옴표와 함께 판박이처럼 내보내거나 "서울중앙지법이 24일 고 김지태씨 유족이 5·16쿠데타 직후 강압에 의해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주식을 넘겼다며 정수장학회(당시 5·16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청구를 기각했다" 같은 단신성 기사가 주를 이룬다.

오히려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이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의제설정을 하거나 상관 조정을 해 대조를 이룬다. <경향신문>은 이 기간 동안 19건의 특집기사와 분석기사를 내보냈고, <한겨레신문>도 사설을 포함 17건의 스트레이트, 분석기사를 내보냈다. 이처럼 정수장학회 문제가 정치권의 큰 이슈로 부각하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신문들도 이 문제를 앞다퉈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은근슬쩍 가세하는 보수신문들의 보도행태는 카멜레온과 하이에나 저널리즘(이슈가 생기면 달려드는 보도형태)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엄혹했던 군사독재시절, 언론사에 강제했던 '금기'를 오늘까지 잊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지키려는 것일까.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하는 지역신문들은 카멜레온과 하이에나 저널리즘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비록 <부산일보>에서 촉발된 문제이긴 하지만 정수장학회는 더 이상 특정 지역 또는 특정 신문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 적극 개입해 문제를 파악·분석하고,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할 의제로까지 확대됐다. 그런데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이 지역보다 더 적극적이다. <부산일보> 못지않게 연일 뜨겁게 지면을 달구고 있는 실정이어서 다른 지역신문들과 대조를 이룬다.

'금기 트라우마' 아직도 작동하나

쿠데타군을 이끌고 시청 앞에 도착한 박정희 소장과 일행들. 박정희 왼쪽은 박종규, 오른쪽은 차지철.
▲ 5.16군사쿠데타 주역들 쿠데타군을 이끌고 시청 앞에 도착한 박정희 소장과 일행들. 박정희 왼쪽은 박종규, 오른쪽은 차지철.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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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와 함께해온 한국지방신문협회 소속 회원신문들까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은근히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으니, 독자들은 그 내막이 궁금할 것이다. 도대체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이슈를 애써 외면하려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기사 가치판단 기준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언론사 게이트 키핑 과정의 특성상 일선 게이트 키퍼에서부터 마지막 단계의 게이트 키퍼에 이르기까지 기사로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다른 매체들이 아무리 많은 양의 기사를 내보낸다 해도 다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과거 일방향 의제설정 방식이었던 아날로그 시대에서나 통용됐다. 쌍방향 디지털 미디어 시대인 지금에 그랬다간 독자들의 반응이 금세 달라진다. 독자들은 일방향성 의제설정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지 않는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유는 뭘까. 이런 상황에서도 사회적 이슈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과거 군사독재시절의 지독한 '금기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권력에 포섭돼 한 지역에 한 일간신문사만 존립이 가능했던 '1도 1사' 시절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신문들이 지금도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세 번째 이유는 아직도 신문사 종사자들의 노조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경영진의 오만불손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과거 '1도 1사' 시절, 판매와 광고시장에서 호기를 누렸던 지역 일간지들로 구성된 한국지방신문협회에 소속된 9개 일간지들 중 전국언론노조에 가입된 신문사 노조는 5곳에 불과했다. 대부분 한 지역에서 50~60년간 뿌리를 내려온 신문사들이 아직도 노조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신문사 내부 게이트 키핑 과정에서 사측의 입김이 여전히 여과 없이 작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지방신문협회는 <경인일보>와 <강원일보> <경남신문> <광주일보> <대전일보> <매일신문> <부산일보> <전북일보> <제주일보> 등 9개 지방신문사로 구성돼 있다. 대부분 역사가 50년 이상 된 신문사들이다. 그런데 전국 언론노조 가입 신문사는 <경인일보> <경남신문> <광주일보> <매일신문> <부산일보> 등 다섯 곳뿐이다.  

그동안 이들은 판매와 광고 등 경영의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공동 대응하고 나섰다. 그러나 겉으론 서로가 한배를 탄 듯이 '회원사'라며 공동체임을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철저히 자사주의 또는 실리주의로 무장돼 행동하고 사고하는 이기적 협의체임이 이번 <부산일보> 정수장학회 문제에서 그 속살을 드러냈다. 

이들 신문사들은 이중적인 행태도 서슴지 않았다. 미디어법과 조중동 종편 출범을 그토록 반대하던 신문들이 슬그머니 보수신문들과 손을 잡고 신문사 내부에 방송실과 장비, 인력 등을 보강해 종편에게 지역소식을 물어다 주는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언론시장의 승자독식주의와 서울 종속을 외치며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확대를 주장하고, 서울언론이 지역의 목소리를 외면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정수장학회, 더 이상 금기로 둬선 안 된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21일 오전 개관한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을 둘러보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21일 오전 개관한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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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는 그의 저서 <권력변환 - 한국언론 117년사> '박정희 정권하의 언론'편에서 <부산일보>와 <한국문화방송>은 물론 <부산방문화방송>의 사주였던 고 김지태씨가 1962년 5월 경영권을 재단법인 5.16 장학회에 넘기고 물러난데 대해 이렇게 적시했다.

"'문화방송 30년사'는 그걸 단 한 줄로 가볍게 기록하고 넘어갔지만, 그건 김지태가 5.16쿠데타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사정권이 강탈한 혐의가 짙다."

강 교수는 '부산문화방송 30년사'에 기록된 고 김지태씨의 주장을 근거로 내세웠다. 당시 김씨는 '부산문화방송 30년사 1959~1989' 117쪽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혁명 후 10개월 만인 1962년 3월 27일 국내 각 신문들은 큼직큼직한 활자로 '부정축재 처리위반법, 국내재산 해외도피 등의 혐의로 김지태씨 입건'이라는 제목 아래 소상한 기사를 썼다.… 이렇게 하여 1948년 4월 이래 14년간 애지중지 가꾸어놓은 부산일보와 4년 동안 막대한 사재를 들여 궤도에 올려놓은 문화방송과 부산문화방송은 1962년 5월 25일 5·16 장학재단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 기본 재산을 토대로 하여 '5·16 장학회'는 그해 7월 14일에 발족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부일장학회'의 기본 재산인 부산 시내 토지 10만 평을 헌납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군사정부의 횡포와 압력이 얼마나 포악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때도 언론들은 카멜레온 또는 하이에나처럼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권력에 포섭돼 맹공을 당하는 세력들을 물어뜯거나, 자신의 이름과 색깔을 알리기에 바빴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적대적 공존관계는 거대한 사회적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채, 한국사회의 진정한 문제가 무엇인지, 그것조차 알게 하지 못하는 은폐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했다. 지금도 그러한 메커니즘이 작동 중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참담해 진다.  

그동안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엔 '금기'였을지 몰라도 다른 지역신문에 '금기'는 아니었다. 지역사회의 공론화에 눈과 귀와 입을 막는 것은 지역신문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제라도 지역신문들은 정수장학회 등 지역사회 공론화에 적극 동참할 때다.


태그:#정수장학회, #부산일보, #박근혜,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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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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