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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3일 목요일 역사적 일 날이 밝았습니다. '오전 8시 30분까지 동천체육관 앞으로 오시오'라는 문자가 어제 오후 날아 왔습니다. 장장 7년을 끌어오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가 23일 오후 2시경 대법원에서 드디어 최종판결이 난다고 했습니다. 몇 주 전 최종판결 날이 잡히자 현대자동차는 '김앤장'이라는 로펌 변호사 단체를 통해 연기 통보를 했다고 들었지만 예정대로 최종판결이 진행되는 걸 보니 대법원 판사님이 받아 들이지 않았나 봅니다.

 

아침에 일어나 시간에 맞춰 동천체육관으로 갔더니 두 대의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 2, 3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1호차 타고, 나머지 공장은 2호차를 탔습니다. 버스는 8시 30분 경에 서울로 출발하였습니다. 같이 가는 노동자들은 모두 들뜬 기분이 확연하였습니다. 마치 이미 승리를 거둔 사람들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슬픈 소식 입니다. 좀 전에 1공장에서 나이든 비정규직 노동자 한 명이 기계에 압착되어 숨졌다고 합니다. 이번에 참상을 당한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다니다 정년 퇴직 후 다시 사내 하청에 들어가서 일을 했었다고 합니다."

 

기대에 들떴던 버스 안은 한 노동자의 방송 소리를 듣고 모두 침통해 했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서울에 도착하였습니다. 쉬기도 하고, 점심도 먹으며 올라가니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대법원에 도착했습니다. 머리털 나고 처음 가보는 대법원 풍경이었습니다. 

 

"오늘 모두 방청석에 앉아 최종판결을 지켜 보면 좋겠지만 방청권이 한 차 당 5매 배당되었습니다. 꼭 들어가 보실 분만 드리겠습니다."

 

법원 안, '묻지마' 촬영금지

 

저는 대법원 입구에 도착 할 때까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최종판결이 얼마나 묵직한 판결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재판실 입구에 가 보고서야 얼마나 큰 사건 재판인지 알 게 되었습니다. 수 십여 명이나 되는 취재 기자가 입구를 꽉 메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멋도 모르고, 입구 안에 들어가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려 사진기를 꺼내 들었습니다.

 

"법원 안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는 법원 직원에게 '왜 안 되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묻지마' 촬영금지 였습니다. 사진 촬영을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허가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물었습니다. 법원 직원은 '308호에 가서 물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법원 중앙으로 찾아가서 주민증을 내고, 방문증을 받아 308호를 찾아 갔습니다. 여직원이 있었습니다.

 

"저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 입니다. 법원 로비에 있는 오늘의 재판 일정 중 방청관련 협조 안내문에 대해 사진을 좀 찍으려 하는데요."

 

법원 여직원은 잠시 기다려 보라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사진 촬영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재판이 열리는 곳으로 가서 방청 안내문을 적어 두었습니다. 사진에 담으려 했던 방청 안내문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오늘 선고 예정인 사건 수는 총 286건 입니다. 하지만 법정 촤석수는 100석으로 입석을 감안 하더라도 총 140석 뿐 입니다. 그래서 부득이 아래와 같이 다수의 일반 방청객이 예상되는 사건에 대해서 방청권을 미리 배부하오니 해당 사건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아래-

1. 2011 두 7076호 원고 최병승 피고 중앙노동위원장

 

20여분 후 방청권을 받고 들어갔던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난 듯 했습니다. 나온 노동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판결이 나왔는지를.

 

"사건 번호 부르고 사건을 기각한다. 이게 다 였어요."

 

속으로 참 황당해 했습니다. 저는 최종판결이고 또, 현대자동차 쪽에서 연기 요청도 해놓았던 상태였고 해서 뭔가 장왕한 설명을 곁들인 후 의미심장하게 판결을 할 줄 알았습니다. 헌데 사건을 '기각한다? 그게 다?'. 너무 시시하게 끝난거 같기도 했습니다. 뒤가 좀 허전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1분 도 채 안 걸리는 그 판결을 받아 내려고 우린 7년이나 고행했다는 생각을 하니 참 황당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여기 저기서 "우리가 이겼다"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모두 간만에 환하게 웃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이라는 사실을 대법원에서 확정 지었습니다. 그동안 최병승 조합원 앞으로 든 변호사 비용은 모두 현대자동차 쪽에서 부담하라고 합니다. 저도 참 기분 좋았습니다. 대법원에서 현대자동차를 불법파견 기업으로 판결했습니다. 최병승 조합원은 이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합니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 이름이 나였으면 좋았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현대자동차 노동 조합의 조합원 자격도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울산, 전주, 아산 공장 안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1만 명이 넘습니다. 그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는 언제쯤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최병승 조합원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에서 대표 소송을 한 것이었으나 현대자동차 쪽에선 분명히 "그건 개별소송이므로 최씨 개인에 국한된 판결"이라고 하면서 나머지 불법파견 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선 정규직으로 전환할 지, 말 지 불투명 합니다. 더 지켜 보아야만 회사 쪽 반응을 알 수 있지만 그동안 제가 겪어 온 현대자동차 노무관리 방식을 보면 정규직 전환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나온 우리는 대법원 앞에 모여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대법원 최종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현대자동차 울산, 전주, 아산 비정규직 지회가 모여 규탄 성명도 발표하였습니다. 오후 4시가 다 되었습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울산으로 향했습니다.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본 황당한 일

 

버스에 오른 노동자들은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내려 가면서 간단히 축하 주를 하자고 했습니다. 울산 가는 길에 상점에 들러 술과 안주를 사려고 했습니다. 하필 멈춘 곳이 공교롭게도 현대자동차 본사 앞 이었습니다.

 

"버스를 잠시 정차 할 곳을 찾다보니, 이곳이 가장 적당해서 여기에 세웠어요."

 

버스 기사님께 물어보니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는 큰 농협 가게가 하나 있었습니다. 몇 명이 물품을 사 오는 동안, 저는 밖에 나가 있었습니다. 그냥 바람이나 쐴 겸 해서요. 평온하던 현대자동차 앞이 갑자기 분주해졌습니다. 한 경비가 어디론가 무전기를 하더니 갑자기 수 십여 명의 직원이 나와 섰습니다. 또 잠시 후엔 대형 버스가 3대나 입구를 가로막아 세웠습니다.

 

"우린 그냥 물품을 사고 가려는 거에요. 왜 이리 민감하게 반응하세요? 우리가 '버러지'로 보이세요?"

 

우리가 그리도 달갑지 않은 존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물품이나 사 올려 가려는 것 인데도 그리도 민감하게 반응하다니,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대 한다는 게 정말 불쾌해서 무전기 들고 서 있는 직원에게 한마디 해버렸습니다. 그 사람 반응이 참 '문지기'다운 답변을 했습니다.

 

"그런 말은 우리에게 할 필요 없어요."

 

현대자동차의 노무관리 방식을 보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생산직 노동자를 얼마나 업신 여기는 지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10여년 간 제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사내하청에 들어가 출·퇴근 해오면서 느낀 것 이기도 합니다. 물품을 다 사 올리고 버스를 타고 다시 울산으로 이동하는데, 이번엔 현대자동차 본사 앞으로 전투경찰 차량 두 대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경찰을 즉시 출동을 명령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

 

이번 대법원 최종판결은 어찌하여 불법파견이 아니라 합법도급이라고 답을 얻어내지 못했을까요? 국내 최고로 권위있는 변호사 로펌인 '김앤장'을 고용하고도 말입니다. 그것이 참 궁금해 졌습니다. 서울서 울산 내려오는 내내.

 


태그:#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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