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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마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2일 지역주민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에 출마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2일 지역주민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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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짝짝. 박수 세 번은 기본이었다. 형광노랑 빛깔의 얇은 점퍼에 주머니 난로를 항상 넣고 다니다가 사람을 만나면 면전에서 세 번 박수를 치고 인사를 청했다. 장갑과 모자로 중무장한 시민들에게 문재인 이름 석 자를 알리는 데는 그만한 방법도 없어 보였다.

"문재인입니다. 꼭 좀 도와주이소. 잘하겠습니다."

지난 22일 부산 사상구 괘법동 부산산업용품 유통단지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대개 <힐링캠프>에서 봤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문 이사장이 이번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을 지역구로 출마한다는 소식을 접한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함께 사진을 찍었고, 어떤 이는 온장고에서 막 꺼내온 따끈한 유자음료를 건네며 팔로 하트를 그려 보이기도 했다.

"아이코 마. 손이 차가워가 인사드리기가 그렇네예. 잘 될 낍니다."

"당은 무신 당이고, 이번엔 인물이라카이"

유통단지 상가의 점심시간을 준비하던 한 생태탕집 주방 아주머니는 물 묻은 손을 대충 행주치마에 닦고 문 이사장의 손을 잡았다. 알싸한 동태찌개가 코끝을 자극한 시간은 오전 11시 50분경. 이른 점심을 하려고 몰려든 상가 사람들은 문 이사장을 알아보고도 먼저 인사를 건네지는 않았다. 문 이사장이 먼저 다가가 손뼉을 치고, 악수를 청하면 그제서야 반갑게 인사했다. 인사를 나누고 나면 문밖까지 따라나와 배웅을 하지만 상대방이 아는 척 하기 전에는 절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법이 없는 문화. 부산의 문법이리라.

"마 당연히 도와야 안 되겠습니꺼. 당은 무신 당이고. 이번에는 인물이라카이. 인물 이래 딱 보마 문재인이가 제일 낫다 아이가. 사람이 벌쌔 신중해보이고 믿을만하잖아."

선반가공, 기계제작 전문 사업장인 영진정밀의 한 노동자는 "왜 문재인인가"에 대해 설파했다. 야성이 강한 부산이었지만 1991년 3당 합당 뒤로 정체성을 잃었던 부산이 이제는 제대로 된 정치를 찾을 때가 됐다는 것이다. 60대 이상은 여전히 '우리가 남이가' 정서가 있는 게 사실이고, 그래서 겉으로는 "예예" 해도 투표소에 들어가면 새누리당을 찍을 게 뻔하지만 그래도 젊은이들과 40~50대 중장년층은 "이번엔 바꿔야 한다"는 심판여론이 거세다고 했다. 문재인 이사장이 한번 붙어서 승산이 있는 동네라는 게다.

"신문에서 보다 직접 보이 진짜 미남이시네예."
"하하. 그래요?"
"마 밥 사이소."
"아이고 마. 선거법 위반이라예."

문 이사장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는 윤건영 수행팀장은 대경전기 김문수(50)씨와 농을 주고 받았다. 실물로 보니 정말 미남이라는 김씨의 말을 문 이사장이 받고, 다시 김씨가 "밥을 사라"고 농을 건네니, 그 다음엔 윤 팀장이 받은 게다. 그런 김씨를 통해 부산 민심을 몇 마디 더 물었다.

"부산은 워낙 새누리당 강세라 아입니꺼. 민주당이 아무리 사람 마이 내도 쉽지 않다 아이가. 그래도 사상은 다를끼다. 근로자가 많고, 서민층이 많다 아이가."

부산에서 비교적 중산층 이상이 많이 사는 해운대 등 보다는 경제적으로 낙후한 사상이 훨씬 문 이사장에게 경쟁력 있는 동네라고 그는 소개했다. 이 산업단지에서 자영업을 하는 상인의 경우에는 월 순수입 1천만 원까지도 올리지만 대개 임금노동자의 경우에는 150만원 수준을 받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따라서 이 지역 노동자와 서민들이 "바꾸자"고 결심이 서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동네라고 그는 문 이사장의 당선을 앞서 예고했다.

22일 부산 사상구 신모라사거리에서 출근인사를 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게 꿀차를 선물한 시민이 응원메시지를 전하며 와락 껴안고 있다.
 22일 부산 사상구 신모라사거리에서 출근인사를 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게 꿀차를 선물한 시민이 응원메시지를 전하며 와락 껴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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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누리당의 공천이 스물일곱 살 여성인 손수조씨로 압축되는 것에 대한 반응은 "사상주민을 우롱하나?" "지금 마 장난치나?" 분위기로 일관했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제일종합상사 차상호 대표는 "새누리당이 손수조씨를 언급하는 것은 일종의 무시전략으로 이해한다"며 "그 어떤 후보를 내도 사상구에서 문재인 후보를 이기기 어렵다고 판단한 새누리당이 신예로 반짝 쇼를 해보겠다는 것 아니겠냐"고 비판했다.

박근혜 방문으로 부산 민심 변화?..."글쎄"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방문으로 부산 민심에 변화가 있겠냐는 질문에는 대다수  주민들이 "별로"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50대 남성은 "박근혜가 진짜 부산에 온다면 그때부터는 진짜 문재인과 한판 뜨는 것"이라며 "여전히 세력이야 그쪽(새누리당)이 많지만 부산시민들이 크게 동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박근혜 신화는 깨졌다"며 "그가 부산에 내려오겠다는 것은 문재인 이사장을 정말 라이벌로 생각하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근혜 위원장이 직접 부산에 내려오면 부산 사람들은 양자간의 대결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또 다른 다수의 50대 이상, 젊은 층 일부는 문 이사장의 인사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명함도 받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었고, 미간을 찌푸린 채 왜 왔느냐는 표정으로 어둡게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문 이사장은 낯빛을 구기지 않고 발랄하게 인사했다.

애써 손잡지 않고 도망가는 연로한 할머니들에게도 총알처럼 달려가 등을 감싸 안고 악수를 청했다. 장갑을 끼면 낀 채로, 벗으면 벗는 대로 그는 손을 잡았다. 멀리서 클랙슨이 울리면 손을 들어 흔들었고, 가까이서 차창을 내리면 기꺼이 달려가 마주 잡았다. 하루 종일 걸어도 날다람쥐처럼 잘도 움직였다.   

"처음에는 한 40점짜리 후보였죠. 뻣뻣하고. 거절을 당하면 무안해서 얼굴이 새빨개지고. 저거 보세요. 이젠 완전히 달라졌어요. 두 달 새 그는 90점짜리 후보로 변신했습니다."

부산 사상구에 20년간 살며 이 동네를 닦아온 이영철 민주통합당 사상지역위원회 위원장은 문 이사장의 출마소식에 참모로 길을 바꿨다. 꼭 출마하고 싶었던 선거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 이사장이 부산정치의 중심에 서고 낙동강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문 이사장을 돕고 있었다. 그런 이 위원장은 문 이사장의 변화를 추켜세웠다. 이제 정치인 다 됐다는 평가가 나올 즈음 문 이사장이 끼어들었다.

"제가 원래 인사는 잘합니다!"

이튿날인 23일 오전 7시 30분 부산 사상구 신모라 사거리에서 만난 문 이사장은 횡단보도를 점령하고 길을 건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전날 일일이 상점 문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며 사람을 챙겨 인사했던 그답게 횡단보도 앞에 선 그 누구도 놓칠세라 꼬박꼬박 인사했다.

이른 아침 집안 문턱을 나서 도심으로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문 이사장의 악수는 '일회성 행사'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정치는 늘 탐욕스러운 것이며 서민 생활과 무관하다고 각인된 사람들에게 문 이사장 또한 새로울 게 없는 또 하나의 정치인쯤으로 여겨지는 눈치였다.

그런 그들에게 문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선거운동 다녀보면 우리 재래시장이나 또 중소상인들의 집합상가나 너무 안 좋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매번 그분들은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도 선거 때만 되면 한나라당을 찍었다. 그래서 불가사의했다. 그런데 이제는 드디어 자신들이 어려운 이유가 나쁜 정치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경제대국으로 사회적 부는 넘치는데 빈곤층이 더 늘어나는 것은 부의 편중 때문이다. 나쁜 정치를 인식하는 것부터, 또 분노하면 바꿔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유권자들이 가져야 할 입장은 바로 이 나쁜 정치에 대한 심판이다."

선거운동 기간 중 하루 24시간을 쪼개 써도 부족한 문 이사장은 때로는 새벽부터 일정을 소화하면서 바쁜 2월을 보내고 있다. 본격적인 선거전 채비가 갖춰지는 3월부터는 옆동네 윗동네로 지원을 하기 위한 터를 지금부터 닦고 있는 셈이다.


태그:#문재인, #부산 사상구, #낙동강 전투, #이영철, #윤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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