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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겨울 동장군이 남겨놓은 꽃샘추위가 심술을 부리곤 하지만, 한낮의 따스한 햇살 속에서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자전거를 애용하는 사람들은 바람 속에서 계절의 바뀜을 느끼곤 한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불어오는 바람이 한겨울엔 찰싹찰싹 뺨을 때리는 기분이었다면, 요즘엔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것 같다.

시원하면서도 봄기운이 실린 그런 바람이 그리운 차에 충남 태안의 바닷가에 '해변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떠났다. 태안 몽산포 해변에서 안면도의 꽃지해변까지 25km 정도의 길인데 중간에 길이 잠시 끊기기도 하고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어 애마 자전거를 대동하고 나선 것. 제주 올레길처럼 도보용의 길이라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한갓진 평일에 찾아갔다.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를 타고 태안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출발해도 되는데, 바다를 빨리 보고픈 마음에 안면도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평일의 여행은 주말과 달리 조금은 특별하다. 아침 일찍 전철을 타고 남부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길. 비슷비슷한 톤의 옷을 입고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헬멧을 쓰고 자전거와 같이 서 있다 보면 나는 어느새 이방인이 돼버린다. 매일매일 반복되던 일상의 풍경이 갑자기 다른 곳 같고, 생경하게 느껴지는 묘한 기분···. 자전거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언제가도 정겨운 서해

안면도에 도착하니 할미 할아비 바위와 괭이 갈매기들이 반긴다.
 안면도에 도착하니 할미 할아비 바위와 괭이 갈매기들이 반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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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산, 서산, 태안 등의 크고 작은 버스터미널을 문안 인사하듯 고루고루 들르며 시외버스는 아담한 안면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 화물칸에서 접혀있는 자전거를 꺼내 다시원래대로 펴는 모습을 희한하다는 표정으로 보는 기사 아저씨께 가까운 바다인 꽃지 해변으로 가는 길을 물어본다. 터미널 주변 가게에 들어가 물과 간식을 사 자전거 가방에 충분히 쟁여두는 걸 잊지 않는다. 겨울날의 해변길에는 문을 연 마트나 식당이 없기 때문.

워밍업하듯 10여 분을 가뿐하게 달려가니 눈앞에 꽃지 해변의 드넓은 바닷가가 시원한 파도소리와 함께 펼쳐진다. 언제봐도 그림같은 꽃지 해변의 명물 할미 할아비 바위도 여전하고, 고양이 소리를 낸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괭이 갈매기들의 앙칼진 목소리도 반갑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친숙해졌는지 갈매기들이 속살이 다 보일 정도로 머리 위로 낮게 날아 다닌다. 얘네들 덕분에 앞으로 내내 달릴 인적없는 겨울 바닷가가 덜 쓸쓸하게 느껴졌다.   

지자체에서 관광용으로 만든 '해변길'이 어디 있나 두리번 거리다 물어볼 양으로 작은 해양 경찰서에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던 초로의 아저씨는 헬멧 쓴 사람의 출현에 깜짝 놀라 일어서더니 "해변으로 가면 길이 나오겠쥬"라고 하신다. 경찰복을 입었어도 영락없이 어촌마을 주민임이 티가 나는 아저씨의 모습과 말투에 실실 웃음이 흘러나온다. 내 외갓집이 충남 예산이어서 그런건지 우리나라 사투리 중 가장 정겨운 말은 충청도 사투리가 아닐까 싶다.

서해 바닷길 여행의 묘미

조금만 일찍 왔어도 이어졌을 바닷가... 이런것이 서해 바닷가 여행의 묘미다.
 조금만 일찍 왔어도 이어졌을 바닷가... 이런것이 서해 바닷가 여행의 묘미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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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개, 두여, 기지포, 삼봉…. 안면도의 바닷가는 동네마다 이렇게 이름을 바꿔가며 이어져 있다. 개중 작은 산이 나타나 두어 군데 해변이 끊기기도 하는데, 이런 곳마다 길을 내어 만든 것이 '해변길'이다. 다행히 산이 작은 언덕 수준이라 애마 잔차를 끌고 오르내린다. 이런 곳에는 서해만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썰물 때라면 바닷가 모래사장 위로 그냥 걸어 지났을 길이, 운이 없게도 밀물 때엔 바닷물이 차 언덕이나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운에 맡기든지, 아니면 '물때 정보안내(1588-9822)'에 미리 전화해보면 된다.   

밀물 때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썰물의 바닷가 모래 위엔 온통 물결무늬가 그려져 있다. 서해를 상징하는 참 인상적인 풍경 중의 하나로 일몰 즈음엔 붉은 노을에 비춰 환상적인 예술작품이 된다. 물결 모래 위로 대자로 누워있는 불가사리, 조개, 고둥, 소라들과 어우러진 풍경을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쳐다보면 투명한 바닷속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바다의 물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썰물의 모래사장은 한폭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다.
 바다의 물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썰물의 모래사장은 한폭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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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길'은 도시에서처럼 걷기 좋게 인공적으로 만든 산책로가 아닌 푹신한 모래길, 흙길이다. 예상대로 아직 지나는 사람들이 없어 자전거에 올라타 달려 봤다. 누가 뒤에서 당기고 있는 것처럼 속도가 나질 않는다. 뒤를 쳐다보니 고운 모래들이 '뭘 그리 급하다고, 천천히 가유~'라며 자전거 바퀴를 뭉근하게 붙잡고 있는 듯. 오르막도 아닌데 1단 기어를 놓고 천천히 달려간다. 

4대강을 개발하면서 만든 삭막한 아스팔트 자전거 도로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런 것인지, 이런 곳에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 어쩌나 괜한 걱정이 든다. 강변을 무지막지하게 파헤쳐 그런 자전거 도로도 만들었는데, 다음엔 해변가를 파헤쳐 만들면 어쩌나 하는 그런 걱정. 친환경의 대표적 발명품인 자전거가 오히려 주변 경치와 환경에 피해를 주는 그런 도로는 이곳에 생기지 말았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딴딴한 바닷길, 몽산포 해변

바닷가 옆에 만든 '해변길'은 모래길, 흙길이서 좋다.
 바닷가 옆에 만든 '해변길'은 모래길, 흙길이서 좋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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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길' 중간중간에 놓여있는 쉼터 벤치, 어디 고급 휴양지에 온 것처럼 경치가 좋다.
 '해변길' 중간중간에 놓여있는 쉼터 벤치, 어디 고급 휴양지에 온 것처럼 경치가 좋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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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한 파도소리를 응원 삼아 귀여운 갈매기들을 친구삼아 해변길을 걷고 달리기가 지겨울 즈음 나타나는 길이 '송림길'이다. 해풍을 막기 위해 바닷가에 심어놓은 소나무 숲안에 작은 길이 나 있다. '해변 송림길' 안내판이 잘 나 있어 찾기도 어렵지 않다. 푹신한 흙길 위에 깔린 솔방울과 잔잎들이 여행길의 정취를 돋우고,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섞인 은은한 소나무 냄새가 상쾌하기만 하다.

중간마다 놓여있는 쉼터 격인 벤치에 앉아봤다. 소나무들 사이로 펼쳐진 바다의 전망이 어찌나 멋지던지 마치 고급 휴양지에 온 것만 같다. 안면읍의 가게에서 사온 간식을 꺼내 늦은 점심을 먹으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 주인과 여행 온 강아지 한 마리가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신나게 돌아다닌다. 그 모양이 오늘 내 모습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여 풋, 웃음이 나온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달리는 길

파도소리를 음악삼아 애마 잔차를 타고 바닷가를 달리는 기분이란
 파도소리를 음악삼아 애마 잔차를 타고 바닷가를 달리는 기분이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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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장 해변을 끝으로 안면도에서 벗어나 곰섬, 마검포 해변 이정표를 보며 청포대 해변을 향해 잠시 도로를 달린다. 얼마 안 있어 청포대 해변의 명물 별주부 마을이 먼저 나를 반긴다. 청포대 해변은 용궁에 사는 용왕, 자라, 토끼 등이 나오는 전래동화 <별주부전>에 나오는 곳이다. 바닷가에 큼지막한 바위가 솟아나 있는데 이름도 '자라 바위'란다.

바닷가엔 돌무더기가 빙 둘러 있는 또 다른 특이한 게 보이는데, 이름 하여 '독살'. 좀 무서운 명칭 같지만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이 서해의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여 들고나는 물고기를 가두어 잡는 돌무더기 그물이다. 청포대는 조상들의 전통과 이야기를 잘 살려 체험마을로 유명해진 좋은 사례다.

청포대에 이어지는 몽산포 해변은 지금껏 지나온 다른 해변들과 달리 무척 딴딴하다. 같은 서해 해변인데 어쩜 이럴 수가. 자전거 타고 바닷가 위를 달려가면서도 신기하기만 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바닷가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해변을 나란히 걷는 노부부와 아들 가족에게 부탁해 오랜만에 자전거 타는 내 모습을 찍어 봤다. 이곳에도 해변길, 송림길이 나있지만 발치까지 들이치는 파도 소리를 록 음악처럼 감상하며 바닷가를 달리는 기분은 떠나는 겨울이 선사해준 상쾌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안면도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 꽃지해변 - 백사장 해변 - 청포대, 몽산포 바다 - 태안 버스터미널 까지의 '해변길' 여행 (거리:30km)
 안면도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 꽃지해변 - 백사장 해변 - 청포대, 몽산포 바다 - 태안 버스터미널 까지의 '해변길' 여행 (거리:30km)
ⓒ N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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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자전거여행, #해변길, #태안, #안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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