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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겹다. 어제부터였나, 오늘 새벽부터였나.

 

이 눈물겨움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를 생각하며 창가에 섰다. 벽돌로 쌓은 벽 안에 저마다 사람과 온갖 잡다한 나부랭이를 품고 있는 집들이 연하여 유구하고, 작은 마당에 비해 키가 크지 싶은 나무들은 아직 묵언 중이다. '그래, 나무의 묵언이 눈물겹구나'라는 생각이 눈 앞 가지에 얹힌다. '나무의 묵언쯤으로 눈물겨울 리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그 옆 가지에 얹힌다. 나무는 부모와 같아서 눈물겨움쯤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마음을 이 가지 저 가지 앉히는 사이에 날은 밝아오고 골목에 자동차들이 몇 대 나가고, 염치없고 뻔뻔하기가 뺑덕어멈 소가지보다 더한 여자가 운영하는 유치원 버스들도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유치원 버스로 인해 노란색에 대한 신경증이 심해진 판이라 커튼을 닫고 세수하러 간다.

 

화장실 문을 열면 실로 눈물겨움의 정체는 선명해져 오기 시작한다. 욕조, 변기, 세면대가 제 입구를 다 열고 훈련이 잘 된 하인들처럼 대기하고 있다. 누구들은 숲 속에서 범신론자가 되던데 나는 화장실에서 범신론자가 된다. 사람의 살과 더러움에 부대끼는 저 도기들이 웅숭깊은 신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도기들의 신적 헌신에 대한 내 위축은 일상적이어서 특별히 오늘의 눈물겨움이 설명되지 않는다.

 

치약을 짜들고 들여다본 거울 속에 저 적당히, 흠씬 늙은 여자의 너부데데함도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슬픔이지만 그 늙음 역시 유용한 부식이기 때문에 까닭이 되지 않는다. 칫솔질하기에 아직 불편한 손목이나 팔꿈치도 언제 나을지, 아주 골병이 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영구히 사용할 몸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

 

책상에 앉기 전에 스마트폰을 연다. 깊은 물을 밀듯 머뭇거리며 열어본 액정 속에 어제 제주에서 온, 아득하고 안쓰러워서 버리지 못한 상수리알 같은 문자가 들어 있다. 제주 강정마을 평화활동가인 도라님과 나눈 문자다.

 

"나왔어요?"

"아니요. 동부경찰서로 가는 중임다. 괜찮슴다. 송 박사님 구속되지 않도록 기도 좀."

"네, 밥은 먹을 수 있지요?"

"예.ㅎㅎㅎ 배고파요. 구럼비에서 맛난 김치찌개와 된장국을 먹으려는 찰나에 연행."

 

어제(21일) 오후 구럼비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있었다. 점심 때쯤 전화했을 때 비가 와서 물건들 챙겨 비닐 아래 수습하는 중이라고 했다. 밥을 먹으려고 나무 토막과 비닐로 앉은키만큼 비닐 막을 만들고 앉았는데 연행당했다고 했다.

 

요즘은 동영상이 대세라 현장은 생생하였다. 건설회사 직원들이 와서 "당신들은 공유수면 침범했다"고 '고지'하는 형국도 코미디고, 세 사람 연행하기 위해 경찰 삼십여 명이 우쭐우쭐 몰려와 나대는 꼴도 가소로왔다. 지금 막 밥 먹으려고 하니까 밥 먹고 연행하라는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미란다고지를 씨부리는 여경과 그 와중에 비닐막을 쓰고 묵묵히 된장국을 떠먹는 평화활동가 송강호 선생의 무표정은 기록할 만한 대비였으나 나는 좀 쫄았다.

 

그 와중에는 묵묵히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함께 있던 촬영자는 "공유수면 출입이 제주도지사 권한에 속하는데 당신들이 왜 범법이라고 고지를 하는가" 하고 소리도 지르고 따지기도 했지만 그는 밥을 먹고 있었다.

 

'너희들은 미란다고지를 하느냐? 나는 지금 밥을 먹을 때이니라.'

 

오늘(22일)은 '재의 수요일'이다. 사순절(부활 주일 전 40일 동안의 기간. 교인들은 광야에서 금식하고 시험받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되살리기 위하여 단식과 속죄를 행한다)이 시작되는 첫날. 지금 송강호는 유치장에 있고, 양윤모는 제주교도소에서 보름째 단식하는 중이고, 강동균은 구럼비가 발파되면 함께 몸을 던지겠다 결심하고 있다.

 

"오늘 그리스도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는 닳아서 올이 다 빠진 질문을 어제 저녁에 나 혼자 했던 것 같다. 나는 자주 노심초사하고 초조하고 내 힘이 달리면 비루한 손을 옆 사람에게 내민다. 어제도 그랬다.

 

페이스북에 양윤모와 함께하는 단식에 동참할 사람들 있는지 물었더니, 다음 주 월요일까지 함께할 인원이 찼다. 어제 국무총리는 저 큰 권력을 쥐고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우리 멋대로 하겠다는 취지'를 방송하고, 나는 무력하게 함께 굶을 사람을 찾고 있었다. 단식의 때가 지나면 나도 묵묵히 밥이나 먹을 생각이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한 양윤모는 과연 사순절이 끝나는 부활절 아침에 아직 살아 있을까?


태그:#양윤모 단식, #제주해군기지 연행, #재의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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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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