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는 이번 시즌 9위와 10위 두 팀의 맞대결이 펼쳐졌다. 바로 서울을 연고지로 하고 있는 팀인 SK와 삼성. 9위 SK는 알렉산더 존슨이 부상을 당한 12월 4일 이후 10개 팀 중 가장 저조한 경기력을 보이고 있었고, 10위 삼성은 일찌감치 최하위가 확정된 상태였다. 현 시점에서 가장 약체라 부를 수 있는 두 팀의 승부가 펼쳐진 것이다.
 

결과는 연장 접전 끝에 SK의 91:87 승리. SK는 용병 알렉산더 존슨이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뒀다. SK에서 알렉산더 존슨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상에 가깝기에, SK의 승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결과였다.

 

사실 이 두 팀의 승부는 9위와 10위의 대결을 떠나서, 감독 간의 자존심 싸움이기도 했다. 프로에서 처음으로 감독직을 맡은 SK의 문경은 감독 대행과 삼성의 김상준 감독. 이 두 지도자는 시즌 내내 프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신임 사령탑들과 그들이 맡은 두 팀은 공통점이 많았다. 두 감독은 모두 철저하게 선수들의 이름값 위주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특히 이미 하위권이 확정된 상황 속에서도, 팀의 미래를 위해서 젊고 가능성 있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닌, 선수들의 이름값으로 출장 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프로 경기의 흐름에 감독들 본인이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노출했다. 한편, 선수들은 팀이 아닌, 개인을 위해 플레이하는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줬다. 감독들이 선수단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 것이다.

 

시즌 종료를 단 다섯 경기만 남겨 놓은 상태에서 만난 이 두 팀의 대결은, 결국 어느 감독이 이번 시즌 KBL에서 최하위 감독인지를 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승자는 문경은 감독 대행이, 패자는 김상준 감독이 됐다.

 

문경은의 선수 기용... '빛났다'

 

 삼성 김승현(왼쪽)의 수비를 뚫고 슛을 시도하는 SK 권용웅

삼성 김승현(왼쪽)의 수비를 뚫고 슛을 시도하는 SK 권용웅 ⓒ KBL

이 경기를 통해, 두 감독 간의 우열은 확실히 가려졌다. 문경은 감독 대행은 알렉산더 존슨이 갑작스레 부상을 당하자, 김우겸과 한정원이라는 골밑 자원들을 활용했다. 그동안 충분한 기량을 갖췄음에도, 이름값에서 떨어진다는 이유로 쉽게 기회를 잡지 못하던 이 선수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들의 기량을 뽐냈다.

 

권용웅 또한 주희정의 이름값에 가려서 쉽사리 기회를 얻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찾아 온 기회를 잡아 진가를 드러냈다. 시즌 내내 이름값으로 선수 라인업을 구성해오던 문경은 감독 대행. 시즌 종료가 다섯 경기 남은 상황에서, 알렉산더 존슨의 부상 재발로 인해,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진정 경기에 나가고 싶어하는, 그리고 크게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면에 삼성의 김상준 감독은 어땠을까. SK는 용병 알렉산더 존슨이 결장했다. 더군다나 최근의 SK의 경기력은 삼성보다 분명 떨어졌다. 그렇지만 김상준 감독은 아쉽게도 SK전에서 자신의 한계를 드러냈다. 점수를 벌릴 수 있는 기회에서 클라크와 이승준을 번갈아 쉬게 한 것은 패배의 요인이었다.

 

또한 SK가 후보 선수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며 다음 시즌을 가늠한 반면, 삼성은 이관희를 제외한 후보급의 젊은 선수들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다음 시즌 이승준이 떠나면 유일하게 남게 되는 골밑 자원인 유성호는 6분, 박재현은 7분을 뛰었고, 강혁의 반대급부로 데려온 김태형과 시즌 초반 김상준 감독의 마음속에 주전으로 각인돼 있던 박대남은 경기 종료까지 뜨겁게 벤치만 달궜다. 바로 이 부분이 '미래를 잃은 삼성'의 모습을 보여줬다.

 

팀도 감독도 모두 10위인 삼성

 

 SK 김민수(왼쪽)와 삼성 이승준

SK 김민수(왼쪽)와 삼성 이승준 ⓒ KBL

물론 팀 순위가 반드시 감독의 순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울산 모비스가 지난 시즌 8위에 그쳤다고 해서, 그 팀의 감독이었던 유재학 감독의 능력을 8위라 평가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번 시즌 고양 오리온스가 8위를 기록했다고 해서, 만년 하위 팀의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추일승 감독의 능력을 8위라고 결론 내리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번 시즌의 삼성은 팀도, 감독도 철저하게 10위였다. 19일 SK전은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준 경기였다. 선수들의 정신력에서도, 감독의 전술과 선수기용에서도 9위와 10위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문경은 감독 대행은 시즌 막바지에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타 선수들의 플레이에 그 본인이 크게 실망하며, 자신의 생각이 잘못 됐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름값의 기용에서 조금씩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며 서서히 프로 지도자다운 모습을 구축하고 있다.

 

반면에 김상준 감독은 선수단에 대한 장악 실패, 전술 부재 등으로 현재를 잃었고, 젊고 유망한 선수들에게 쉽사리 기회를 주지 않으며 미래도 잃어 가고 있다. 과연 김상준 감독은 19일 경기를 통해 어떠한 깨달음을 얻었을까. 상대팀의 감독 대행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임 감독들이기에 전술의 부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프로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도 물론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감독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문경은 감독 대행은 이제 조금씩 프로에 대해, 지도자에 대해 배워가고 있다. 그렇지만 김상준 감독은 프로 감독 생활 1년 동안 무엇을 배웠을까. 그리고 그가 지도한 삼성이란 팀의 구성원들은 어떤 소중한 가르침을 얻었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2.02.20 13:55 ⓒ 2012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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