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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북의 정치공작원과 접촉, 지령을 수수하고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국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하고 피의자 신분으로 국정원의 수사를 받아왔던 안영민 <민족21> 편집주간에 대한 수사가 최근 종결됐다. 한때 <조선일보>가,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국방위원회 직속기관인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았다"며 대서특필까지 했던 '민족21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 안영민 편집주간이 국정원 수사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편집자말>

지난 2월 7일자로 필자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가 종결됐다. 7개월에 달한 공방.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다시 검찰, 법원으로 이어지는 2차, 3차 공방이 기다린다. 끝나지 않는 가시밭길 여정, 일단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7개월 전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한 <민족21>의 간첩 혐의, 구체적으로는 필자와 정용일 편집국장이 북과 일본을 오가며 북의 정치공작원과 접촉, 지령을 수수하고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다. 지난해 7월 6일 필자의 집이 국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당하고, 보름 뒤에는 정용일 국장의 자택과 <민족21>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언론탄압이었다.

 

그 와중에 <민족21>이 이른바 '왕재산 사건'의 하부조직이라는 둥, 북의 대남기구인 225국의 지령을 받았다는 둥 설왕설래하더니, 급기야는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국방위원회 직속기관인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았다는 혐의까지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조선일보>는 친절하게도 도표와 사진까지 첨부해 이러한 혐의 사실을 아예 기정사실화했다.

 

이처럼 불법적인 피의사실 유포와 마녀사냥, 여론재판 속에 <민족21>은 혹독한 시련의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워낙 언론에서 크게 떠들어대다 보니 주변의 지인들은 물론 가족들까지도 "혹시 뭔가 있는 게 아닌가" 하며 노심초사해야만 했다.

 

혹자는 이참에 <민족21>도 '친북'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털어낼 건 털어내고 가라"며 조언해주기도 했다. 수사기관이 유죄를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21>이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주객이 전도된 꼴이 돼버린 것이다. 

 

지루한 국정원 수사... 여전히 실체는 없고 의심만

 

어쨌든 그로부터 일곱 달 동안 지루한 국정원 수사가 진행됐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국정원은 헌법상 보장된 '피의자가 변호사로부터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기도 했다. 또 <민족21> 전직 기자와 직원들에 대해 참고인 소환장을 남발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필자와 정용일 국장은 진술거부로 맞섰다. 모두 9회까지 진행된 필자의 피의자 심문조서는 수백 쪽에 달했고, 국정원이 제시한 관련 증거자료만도 100여 종에 달하는 방대한 수사기록이 작성됐다.

 

하지만 국정원은 <민족21>의 간첩 혐의에 대해 결정적인 증거를 끝내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 말마따나 수 년에 걸쳐 의욕적으로 내사해온 사건이었음에도 결과는 보잘 것 없었다. 필자에 대한 불법 도청, 감시, 미행이 일상적으로 진행됐고, 이메일과 통신기록을 샅샅이 훑었음에도 그들의 주관적 '의심'을 뛰어넘는 객관적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애초 문제가 됐던 일본 총련 국제통일운동국의 조아무개 부국장를 만난 사실에 대해서도, 그 만남이 지령을 수수하고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는 혐의 역시 이를 입증할 증거가 어디에도 없었다. 필자가 취재나 사업협의를 위해 일본을 방문할 때 사전에 일정을 협의하기 위해 조아무개 부국장과 주고받은 수많은 이메일을 국정원이 모두 찾아서 내밀었지만 그 어디에도 지령과 보고의 단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민족21>의 방북취재도 마찬가지다. <민족21>은 통일부의 승인을 받아 적법한 절차를 거쳐 방북취재에 나섰을 뿐, 북에서 그 누구로부터 지령을 받아 <민족21> 잡지에 게재한 사실이 없었다. 있다면 그랬을 것이라는 국정원의 주관적 억측뿐인 것이다.    

 

결국 국정원은 막판에 가서는 필자가 지난 몇 년간 진행해왔던 100여 차례의 강연과 지난해 3월 출간한 <행복한 통일 이야기>에서 문제가 될 만한 대목들을 뽑아내 이적표현물 제작과 찬양고무 혐의를 덧씌우려고 했다.

 

'간첩' 혐의 벗더라도, '종북 잡지' 낙인은 어떡하나

 

이제 공은 다시 검찰로 넘어갔다. 국정원이 작성한 방대한 수사기록을 토대로 검찰이 다시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별반 달라질 건 없다. 어차피 국정원이 못 찾은 증거가 검찰 수사에서 새로 나올 가능성은 없다. 결국 간첩 혐의에서 단순 찬양고무로 피의 사실이 바뀌는, 전형적인 용두사미 꼴의 수사가 될 것이다.

 

그래서다. 이미 여론재판을 통해 공안기관은 <민족21>에 대한 '종북' 낙인 효과를 얻었다. 수사가 유야무야되고, 재판 역시 기껏 찬양고무 혐의로 결론이 나겠지만 <민족21>에 덧씌워진 '종북' 이미지는 결코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분통 터지는 결과를 도대체 어떻게 감내해야 할까.

 

<민족21> 수사가 종결될 즈음에 다시 전교조 통일위원회와 평통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자주민보>가 줄줄이 공안당국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눈엣가시 같은 단체를 종북의 단두대 위에 올려놓고 온갖 으름장을 놓겠지만 이들 사건 역시 용두사미 꼴이 될 것이다.

 

이처럼 치고 빠지는 공안기관의 '국보법 놀이'를 근절할 방법은 뭘까. 어마어마한 간첩 혐의가 삼베 바지에서 방귀 새듯 빠져나가고, 기껏 해야 찬양고무로 결론이 나는 황당한 현실. 결국 국가보안법이란 싹을 잘라야만 한다. 오는 4월 총선, 우리가 진보개혁세력의 압도적 승리를 염원해야 하는 첫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태그:#민족21, #국가보안법,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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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지와 민족21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현재는 (사)평화의길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유튜브 채널 명진TV를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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