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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쌍용자동차 투쟁 1000일을 맞이해 '쌍용자동차 전국 1인 시위'에 나선 사람들.
 15일 쌍용자동차 투쟁 1000일을 맞이해 '쌍용자동차 전국 1인 시위'에 나선 사람들.
ⓒ 김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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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끝 마디가 아릴 정도로 추운 날씨다. 추위를 피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들에게 그저 평범한 하루.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건 싸움이 어느덧 1000일이다.

쌍용자동차 투쟁 1000일을 맞이한 15일. 가슴 한가운데 피켓을 안고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쌍용차 노조원들을 비롯한 금속노조, '희망뚜벅이'부터 일반시민까지 '쌍용자동차 1인 시위'가 전국을 뒤덮었다.

'쌍용자동차 전국 1인 시위'는 쌍용차 노조와 관련이 없는 사람도 자발적으로 참여해 각 지역의 쌍용차 영업소와 관공서들을 채워갔다. 1000일의 투쟁을 지켜보다 안타까움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직접 피켓을 만들어 시위에 동참한 것이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이 있는 경기도 평택시 평택역 앞에서 12시부터 시위에 참여한 이영창씨는 "평택시민이라 참여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죽음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왔다"며 "바쁜 시간을 내 참여했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여전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추위 속 홀로 시위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가지 않았다. 이씨는 "지나가던 40대 남성이 수고한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젊은이와 중·장년층은 해고자인지 물어보거나 피켓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면서 "쌍용차 노조 김정숙씨는 춥다며 쌍화탕을 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쌍용차 부산가야 영업소와 부산대 앞에서 1인시위를 진행한 안승태씨는 "쌍용차 사태는 자본이 노동자를 어찌 생각하고 속박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너무나 많은 분이 희생당했고 우리의 삶을 위해 자본의 횡포를 끝장내고 싶다"고 말했다.

역시 부산 동대신동 서부산영업소에서 1인 시위에 참여한 A씨는 "쌍용차 투쟁 1000일을 바라보며 정리해고가 얼마나 살인적인지 뼈저리게 느낀다"면서 "1인시위는 사회적 살인을 멈추고 분노를 쌍용차 자본에 돌려주며, 전국적인 연대로 맞서 승리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대구 동구 방촌동 쌍용차 영업소에서 12시부터 시위에 참여한 통합진보당 황순원 의원은 "갑갑하다 못해 화가 난다. 노사 간 합의사항도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상황"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함께 살자'라는 말만큼 와 닿는 말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청주 쌍용차 대리점 앞에서 시위에 참여한 민주노총 충북지역 일원은 "시위에 참여한 것은 '어떻게'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며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싸우는 것이라면 쌍용차 노조와 함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해직자 3000명 중 2000명은 소식조차 모른다"

트럭 위에서 시위중인 쌍용차 노조원
 트럭 위에서 시위중인 쌍용차 노조원
ⓒ 김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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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원들도 전국에 흩어져 각 지역에서 1인시위를 이어갔다. 국회 앞에서 만난 쌍용차지부 김남섭 사무국장은 "1000일이란 시간이 금방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애들 큰 것 보면 많이 지나간 것도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쌍용차 투쟁은 아빠들의 투쟁이다. 복직 문제가 해결된다고 끝나지 않는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받은 상처는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인가?"

역시 1인시위에 동참한 쌍용차지부 양형곤 조직실장은 "앞만 보고 달려오니 1000일"이라면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는데 벌써 이렇게 흘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추위에 얼어붙은 담배를 꺼내던 그는 이렇게 말하며 하늘을 쳐다봤다.

"아직까지도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우리에게 찍힌 사회적 '낙인'이다. 이 낙인이 우리를 아무것도 못하게 막고 있다. 21명이 죽었다. 그러나 해직자만 3000명이다. 2000명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양 실장 옆에 서 있던 신동기씨는 양 실장과 함께 희망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우리 텐트 뉴셰프예요"라는 양 실장 말에 미소 짓던 그는 어느새 어두워진 표정으로 "1000일이 흐른 지금 분노만 남았다"고 말했다.

"사람이 이렇게 죽었고 부당하게 해고되었는데 누구도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도대체 누굴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인가. 365일 중 하루만 와서 우리와 함께 있어 본다면 우리가 왜 죽을 수밖에 없는지,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을 텐데 어느 정치인도 그러지 않았다."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풍림빌딩 쌍용차 서울사무소 앞에서 열린 '쌍용차 촛불문화제'에서 묵념 중인 사람들.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풍림빌딩 쌍용차 서울사무소 앞에서 열린 '쌍용차 촛불문화제'에서 묵념 중인 사람들.
ⓒ 김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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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수록 더욱 살벌해지는 추위에 옷깃을 여미며 도착한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풍림빌딩 쌍용차 서울사무소 앞은 오후 7시 1000일 시위의 막바지인 '쌍용차 촛불문화제'를 준비 중인 사람들로 분주했다.

일부 불편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죽음이 주는 무거움이 버겁다"며 밤거리를 울리는 무거운 목소리에 불평은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2분 정도의 묵념 후 시작한 문화제에서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진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먹먹한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죽음이 아니라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자고 1000일을 보며 달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00일이다. 그동안 21명이 죽었다. 그러나 숫자는 중요치 않다.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 이 현실을 피눈물 삼키며 가슴에 지니고 있다. 죽지 않고 살아서 공장으로 가겠다던 그 마음을 어금니 깨물며 지키고 있다."

그는 "그러나 혹한의 겨울이 춥지 않고 따뜻한 이유는 그동안 함께 연대해주고 오늘같이 시위에 동참해주는 이들이 있어서"라며 "내일로 맞이하는 1001일은 새로운 기운을 갖고 달려가겠다, 더 이상 죽음의 숫자를 세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김혜승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쌍용자동차, #희망뚜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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