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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텐보쉬(Kirstenbosch Botanical Garden)식물원에서 본 케이프타운
▲ 케이프 키스텐보쉬(Kirstenbosch Botanical Garden)식물원에서 본 케이프타운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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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타운에서 사귄 친구들 가운데, 세네갈 출신의 아저씨 무스타파가 있었다. 아저씨가 운영하는 상점에 손님으로 처음 가서 구매는 하지 않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나온 인연 탓이다. 나는 그 이후로도 밖으로 산책을 나가서 좀 힘들다 싶으면 무스타파 아저씨네 가게에 가서 놀다 쉬다, 다시 또 걷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듣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예술가들은 거리의 어느 곳이나 무대가 된다.
▲ 거리의 악사들 듣는 이들을 즐겁게 하는 예술가들은 거리의 어느 곳이나 무대가 된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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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에서 소자본을 가지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오게 되었고, 길에서 노점상을 하다 어떻게 지금의 번듯한 가게를 일궜는지의 스토리를 마치자 무스타파는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일어섰다.

"어디로 가는데요? "
"응, 이 바로 옆 빌딩이야. "
"알겠어요. 빨리 와요. 난 가방 디스플레이 좀 바꾸고 싶은데. 이 진열장의 가방들, 내 맘대로 좀 바꿔 놔도 되요? "
"그럼, 물론이지~! "

진열장이 내 키보다 높았기에 플라스틱 상자를 딛고 기꺼이 올라서서 난 조금이라도 구매력에 효과있도록 디스플레이에 힘쓰고 있었다. 아저씨의 가게는 3평 남짓. 그 조그만 가게에도 어김없이 붙어 있는 이중 쇠창살 문. 대낮이고 아저씨가 나갔던 터라 문은 열려 있었다.

플라스틱 상자 위에 올라서서 가방을 바꾸느라 낑낑거리고 있을 무렵,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난 휙 고개를 돌렸다. 뒤에 서 있던 사람은 처음 본 낯선 남자였다. 그가 뒷짐을 진 상태로 뒤돌아 본 나를 보며 인사를 했다.

17세기부터 아시아를 잇는 교역로 역할일 했던 이곳, 케이프타운.
▲ 케이프타운 항구 17세기부터 아시아를 잇는 교역로 역할일 했던 이곳, 케이프타운.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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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깜짝이야. 누구시죠? 가방 보러 오신 건가요? "
"음…… 진열 중이시군요. 지나가다 한 번, 그냥 들어와봤어요. 전 그럼 이만 가볼게요."

그는 말을 마치며 천천히 뒷걸음으로 입구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 거 참, 이상한 사람이네. '
그런데 뭔가 뒷걸음으로 천천히 나가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면서, 뭔가 석연찮았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은데, 뭐지…?'

공원에서 만난 청솔모.
▲ 청솔모 공원에서 만난 청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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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그 순간 진열장 위에 올려놓았던 카메라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머릿속에 강한 충격파가 일었다. 그가 문을 나서는 순간, 낮은 진열장 위에 올려 놓았던 내 카메라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그 자리엔 없는 카메라!
동시에 밖에서 무스타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라! 저거 네 카메라 아니야?"

난 빛의 속도로 뛰어나갔다. 달리는 내 머릿속엔 온통 카메라 생각뿐이었다. '마지막 목적지인 이 곳에서 이렇게 당하다니……! 그 누구도 내 카메라에 저런 식으로 손 댄 사람은 없었는데! '

"야! 거기서, 거기 안 서?"

앞에 달려가던 그 남자는 다른 누군가의 모습에 겹쳐 시야에서 멀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듯 보이는 남자.

산에서 바라본 케이프 타운의 아름다운 야경
▲ 케이프타운의 야경 산에서 바라본 케이프 타운의 아름다운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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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이거 내 카메라야~."

내 카메라를 갖고 달리던 그 사람이 다른 남자에게 카메라를 주고 도망가버린 사이, 얼떨결에 카메라를 받아 든 다른 남자의 손에서 난 카메라를 신경질적으로 낚아채며 말했다.

"아? 네. 가져가요. 난 저 사람 몰라요. 저 사람이 나에게 그냥 카메라를 주고, 자기가 금방 가지러 오겠다며 주고 갔어요. "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대며 난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 있었다.

테이블 마운틴에서 본 케이프타운
▲ 해가 저물어 가는 때 테이블 마운틴에서 본 케이프타운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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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게 놔 준 것 같은데? 쫓아가서 경찰서에 잡아넣고 싶어!"
"사라, 카메라 찾았으면 됐어. 쫓아 갈 생각은 하지도 마. 그러게 아무리 가게 안에서라도 카메라는 가방 안에 넣으라고 했잖아. 큰일 날 뻔 했어. 찾았으니 다행이야."

순간 무스타파의 그 말이 내 온도를 확 낮추는 듯 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했는데, 미리 경고를 듣고도 보이도록 간수한 내 잘못을 깨닫게 하는 말이었다. 애초에 조심하지 않고 안 넣어둔 내가 잘못이다.

그래도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나라에선 이렇게까지 남의 물건에 탐을 내고 하지는 않았는데, 괜히 사람들을 경계하게 만든다며 내 카메라를 들고 뛴 그 남자가 야속하다.

케이프타운을 둘러보기 편리한 시티투어 버스.남아공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다.
▲ 시티투어 버스 케이프타운을 둘러보기 편리한 시티투어 버스.남아공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다.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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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 그 중에서도 케이프 타운이라는 동네는 전세계의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아시아를 잇는 유럽의 최초의 기지이기도 했지만 현재는 남아공의 가장 발전된 휴양지이기도 하다.

사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그 중에서도 케이프타운은 나라 이름에 '아프리카'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유럽의 어느 한 나라라고 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겉모습을 갖고 있다. 천혜의 축복받은 자연과, 기후, 그리고 도시의 편리성을 모두 갖추고 있기에 다른 아프리카에서 남아공으로 들어오면 그 발전성에 잠깐 어지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 주의를 끌었던 것은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엔 없는 그 눈부신 발전이나 화려함, 혹은 편리함 등이 아니었다.

바다 앞에 위치한 빌라들이 어느 나라 못지 않은 세련됨을 자랑한다.
▲ 케이프타운 바다 앞에 위치한 빌라들이 어느 나라 못지 않은 세련됨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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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엔 없는 남아프리카 공화국만이 갖고 있는 분위기였다. 예를 들자면 도시 자체의 '경계태세'라고나 할까? 다른 곳에선 본 적 없는 상점의 벨(벨을 누르면 안에서 사람을 확인하고 문이 열리는 시스템)이 그렇고, 쇠창살이 달려 있는 보조 문이 그렇다.

앞의 기사에서 언급했다시피 대중교통엔 타지 않는 백인들이 그렇다. '컬러드(coloured)' 라고 불리는 역사적으로 배제되어 왔던 혼혈들의 정서적인 고립이 그렇다.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과는 좀 다른, '조화'라는 문제를 안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역사의 한 페이지로 인해 이런 문제를 떠 안게 되었지만, 진심으로 바라본다. 진정 무지개의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되기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총 6개월의 여정을 바탕으로 기고합니다.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아프리카 종단 여행, #세계여행, #컬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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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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