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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뿌리가 부처의 머리를 보호하고 있다.
 나무뿌리가 부처의 머리를 보호하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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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 속을 가로지르는 콰이강에서 잘 지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사실, 콰이강 상류로 들어가면 볼거리가 더 많을 것이다. 상류에는 우리가 묵었던 공원보다 규모가 더 큰 국립공원이 있으며 넓은 호수와 정글이 있다는 것을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로 정할 것인가? 방콕 시내에 들어가 수많은 자동차 틈에 끼어 매연을 마시며 운전하기는 싫다. 지도를 보니 방콕 북쪽에 굵은 글씨로 아유따야 (Ayutthaya)라는 도시가 있다. 관광지가 있다는 별 표시가 지도에 20여 개 이상 있다. 오던 길을 되돌아 아유따야라는 도시를 향해 달린다.

방콕에 점점 가까워진다. 방콕 쪽 하늘은 매연으로 하늘이 꼭 흐린 날처럼 우중충한 색이다. 어제까지 묵었던 새파란 하늘 아래 검푸른 강이 넘실대던 국립공원과 너무 대조된다. 역설적이게도 사람을 위한 개발 때문에 도시 사람의 삶은 매연으로 찌들어 간다. 큰 도시에서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의 삶의 질이 콰이강이 흐르는 밀림 속에서 작은 보트에 의지해 사는 사람보다 더 좋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미래에 대한 공포 극복하려는 눈물겨운 정성

당시의 발달한 건축술을 짐작게 하는 꽤 높은 탑이다. 그러나 세월에는 어쩔 수 없는지 옆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당시의 발달한 건축술을 짐작게 하는 꽤 높은 탑이다. 그러나 세월에는 어쩔 수 없는지 옆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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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가 많다고 알려진 아유따야 도시에 들어서니 꽤 높은 탑이 시선을 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탑을 구경한다. 탑이 조금은 지저분하고 파손된 곳도 보인다. 탑은 한쪽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다.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기울어지는 것이리라. 피사의 사탑처럼 관광자원으로 개발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번역하면 금산(Golden Mountain)이라는 뜻을 가진 탑이며, 1387년에 지었다는 안내판이 있다. 탑을 중심으로 반쯤 허물어진 벽돌로 지은 오래된 탑들이 근처에 서너 개 더 있다. 특별한 장비도 없던 옛날에 엄청난 인력이 투입되어 지은 탑일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를 신에 의지해 극복하려는 인간의 눈물겨운 정성이 보인다.

탑 앞에는 오래되지 않은 동상이 있다. 등에는 칼을 메고 큰 창을 옆구리에 차고 있는 늠름한 장군이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이다. 특이한 것은 동상을 에워싸고 닭의 동상이 호위병처럼 세워져 있는 것이다. 다른 절에서도 닭을 본 적이 있는데 옛날 동양에서는 닭을 귀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유적으로 넘쳐나는 도시...로마와 비교해볼까

아유따야 (Ayutthaya) 왕조의 옛모습을 보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아유따야 (Ayutthaya) 왕조의 옛모습을 보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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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따야 도시는 유적으로 넘쳐난다. 도로 옆으로는 오랜 세월에 파손된 건물이 즐비하다. 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관광객을 코끼리에 태우고 유적지와 시내를 구경시켜 주기도 하며 기념품과 음료수를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로마의 유적지와 비교하면 과장된 표현일까? 하지만 첫인상은 파손된 유적으로 넘쳐나는 로마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인상과 다를 바 없다. 

이곳저곳을 운전하다 관광객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무작정 주차한다. 안내판에는 부처의 유물을 많이 간직했던 1374년에 준공되었다는 궁전이라고 씌어 있다. 많이 파손되었지만, 옛날의 아유따야 왕조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궁전이다. 무슨 이유인지 오늘은 특별히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안내판이 있다. 적은 입장료라도 공짜라니 기분이 좋다.

수십 개의 부처 동상이 줄지어 있으나 머리는 잘려나가고 없다.
 수십 개의 부처 동상이 줄지어 있으나 머리는 잘려나가고 없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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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은 많이 파손되었다. 특히 부처 동상은 머리가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캄보디아의 유명한 유적지 시엠립에서 본 것처럼 머리가 잘려나간 부처들이 줄지어 있다. 무자비하게 잘린 부처의 머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힘 있는 나라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을까? 돈 많은 수집가의 정원에 있을까? 머리가 잘린 부처는 돈 많은 수집가의 집에서, 힘 있는 나라의 박물관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이 유적지에 유일하게 부처의 머리만 잘 보관된 곳이 있다. 부처의 머리가 나무뿌리 사이에 신비하게 박혀 있다. 고목이 부처의 머리를 잘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다. 부처의 머리와 고목의 뿌리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많은 관광객이 사진에 담고 있다. 

숙소를 찾아야 한다. 유적지를 나와 요행을 바라며 동네 주위를 운전한다. 숙소가 없다. 외국 배낭족으로 붐비는 곳에 숙소가 있기는 하지만 자동차를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 숙소 찾기를 포기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도시, 롭부리(Lop Buri)를 향해 떠난다. 

롭부리에 들어서면서 조그만 다리를 하나 건너니 제법 큰 호텔이 있다. 호텔 입구에는 원숭이가 커다란 엽전을 껴안고 복두꺼비 위에 앉아 있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돈도 많이 벌고 복도 많이 받기를 기원하는 것이리라. 돈과 복은 비례한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과연 그럴까?

호텔은 수영장까지 갖춘, 예전에는 고급 호텔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은 낡은 호텔이다. 깨끗한 호텔은 아니지만 지낼만하다. 해 떨어지기 전에 하루 편안히 묵을 곳이 찾으니 마음이 편하다. 아내와 함께 태국에서 가장 흔한 태국 마사지를 받으며 하루를 끝낸다.

뚜껑 열고 요구르트 마시는 원숭이...이런 광경 처음이야

원숭이들이 절에서 사람들이 나누어 주는 과일을 먹고 있다.
 원숭이들이 절에서 사람들이 나누어 주는 과일을 먹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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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호텔 열쇠를 주고 동네를 자동차로 돌아본다. 도시는 가로등을 비롯해 동양 종교 냄새가 흠뻑 나도록 장식되어 있다. 자그마한 절을 지나 기차 철로를 지나는데 원숭이가 도로를 휘저으며 다닌다.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어도 원숭이가 많아 속도를 내지 못한다. 흔히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차를 일단 길에 주차하고 원숭이가 돌아다니는 거리를 함께 걷는다.

자그마한 절에 들어선다. 절 입구 계단 앞에는 아기 원숭이를 껴안고 있는 원숭이 동상이 있다. 동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원숭이가 절을 점령하고 있다. 원숭이들의 눈총을 받으며 절 주위를 걷는데 태국 의상으로 뽐낸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있다. 구경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우리까지 합쳐 서너 명에 불과해도 춤에 열중한다. 사진기를 들어대니 조금은 수줍은 듯한 포즈도 취해 준다.

고유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으려 하니 포즈를 취해 준다.
 고유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으려 하니 포즈를 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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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절 주위를 걸으니 조금 넓은 잔디밭에서 원숭이들이 요구르트를 마시고 있다. 사람이 원숭이에게 준 것이다. 수십 마리의 원숭이가 많이 먹어본 솜씨로 능숙하게 뚜껑을 열고 요구르트를 먹고 있다. 이런 모습은 난생처음이다.

바로 옆에서는 수박과 과일을 원숭이에게 먹이로 제공한다. 아기를 등에 업은 엄마 원숭이를 비롯해 많은 원숭이가 수박을 먹느라 정신없다. 수박을 칼로 자르고 있는 아줌마와 아저씨의 손길도 따라서 분주해진다.

동네는 원숭이 냄새로 진동한다. 나 같으면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주민은 원숭이 냄새와 함께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이다. 조금 오래된 건물이 있다 싶으면 어김없이 원숭이가 놀이터로 사용한다. 심지어는 전봇대 위에서 전깃줄을 타고 노닌다. 감전될 수도 있을 터인데 하는 걱정이 든다.

동네 아줌마가 집을 나서며 바깥문을 확실히 잠그는 모습을 본다. 원숭이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단속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런지 문이 열려 있는 집이 없다. 원숭이와 함께 지내는 동네 사람들, 불편한 점이 많이 있을 터인데 왜 같이 지낼까?

성공을 향해 효율성과 경제성만 생각하는 현대인의 머리로는 절대로 풀지 못할 수수께끼 중 하나다.


태그:#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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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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