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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법원이 국민들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마련한 '소통 2012 국민속으로' 토론회가 열리는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 대회의실에 영정사진을 들고온 한 시민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법원이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며 법원을 규탄하고 있다.
 6일 오후 법원이 국민들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마련한 '소통 2012 국민속으로' 토론회가 열리는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 대회의실에 영정사진을 들고온 한 시민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법원이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며 법원을 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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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
"이게 사법부가 소통하는 방식이냐! 전관예우나 없애라!"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6일 '소통 2012, 국민 속으로'라는 제목으로 '국민과 대화' 자리를 마련했지만 소통은 쉽지 않았다. 행사장은 사법 피해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고함과 야유로 난장판이 됐다. 지난해 11월부터 준비했다는 이 행사 역시 법원의 경직성과 권위적 자세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객석의 반응은 '분노' 그 자체였다.

이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대회의실에 열린 행사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정향 영화감독, 김상현 NHN 대표, 최철규 HSG 휴먼솔루션 그룹 대표 등이 패널로 참석한 가운데 500여 명의 시민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최근 영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 등으로 사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를 경청하겠다고 자리를 만든 법원은 객석보다 패널들의 소리를 듣는 데 집중했다.

시작부터 소란스러웠다. 19살 아들의 죽음이 억울하다며 영정을 들고 소리치던 아버지는 결국 법원 직원들에게 들려 나갔다. "얼마나 억울하면 그러겠냐, 그냥 놔줘라"라며 항의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회자는 "억울함은 이해하지만 개별 사건과 관련해서는 질문을 받을 수 없다, 각 법정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며 발언을 차단했다. "협조해 달라", "시간을 드리겠다"며 공손한 어투로 제지했지만, 객석에 마이크가 돌아가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패널들도 쓴소리를 꺼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서울지방법원은 법원의 현황을 설명하고 그동안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보여주는데 40분을 할애했다. 2011년 의미 있는 판결을 소개하기 위해 나온 최성준 민사수석판사는 각 사례에서 판결문에 사용된 어려운 법률용어를 그대로 읽어나갔고, 객석에서는 "지금 잘했다고 자랑하러 나온 거냐"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졌다. 또 1부와 2부 사이에 '법원의 하루'라는 영상을 상영해 판사들의 고충을 보여주려 애썼다.

"'당신은 법을 모른다'는 자세, 해법 아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법정 다툼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의 장면들을 보여주며 발표하고 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법정 다툼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의 장면들을 보여주며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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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2012 국민속으로' 토론회에 참석한 이진선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비롯한 법원관계자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소통 2012 국민속으로' 토론회에 참석한 이진선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비롯한 법원관계자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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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토론으로 들어가자 장내는 겨우 진정됐다. 패널들이 법원의 잘못을 지적하자 박수를 치며 호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국 교수는 "국민과 법원 사이의 인식의 골이 넓다"며 "판결의 결론도 중요하지만 결론으로 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절차에 불만이 생기면 감성적으로 승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에서 우수한 판결들을 소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지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2005년에 있었던 절도사건 관련 '7천 원 훔치고 징역 1년'이라는 기사를 소개하며 "법률적으로 이런 선고가 내려진 이유가 있지만, 비슷한 시기 900억을 횡령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집행유예를 받았다, 이 역시 법률적 설명이 가능하지만 대중들은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분노하는 대중에게 '당신은 법률을 잘 모른다'는 자세로 대하는 건 해답이 되지 못한다"라고 질책했다.

전직 판사 출신인 김상헌 NHN 대표는 "'우리는 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알아주지 않냐'는 생각을 하지 말고 일반인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공정한 재판을 고민하는 성숙한 모습이 필요하다"며 "시민들이 정의를 기대하는 곳이 법원이기 때문에 노력하면 다시 신뢰가 쌓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철규 HSG 휴먼솔루션 대표는 "소통의 가장 큰 적은 권위주의"라며 "어느 조직이든 소통을 잘하려면 스스로 힘을 빼야 한다, 감정을 공감해줄 때 대화가 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러진 화살>이 개봉하고 2주 있다가 대법원이 입장을 발표했다"며 "소통이 잘 되려면 빠르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원이 사과하는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영화 <집으로>와 <미술관 옆 동물원> 등을 연출한 이정향 감독은 자신의 최근 작품 <오늘>(2011)에서 다룬 형사사건 피해자들의 보호와 치유 문제를 제기했다. 이 감독은 "재판과정에서 범죄 피해자들은 자신보다 가해자가 보호를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법원이 피해자가 외로 받고 치유될 수 있는 기능도 수행해야 하는데 오히려 2차 피해를 주지는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처받은 분들 있다, 반성하고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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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행사의 2부 '시민과의 대화' 순서도 앞서 나선 패널들과 함께 사전에 섭외된 일반 참가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객석에서는 또다시 소란이 일었다. 발언 기회를 기다리던 참석자들은 더 크게 반발했다.

각자의 억울한 사정을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사법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대표할 만한 패널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러한 항의로 10여 분 동안 행사가 진행되지 못했고 결국 주최 측이 객석에 발언권을 넘기게 됐다.

마이크를 잡은 60대 남성은 "불공정한 재판은 판사가 공판조서를 허위로 작성하는 데서 발생한다"며 "이걸 근절하려면 법정 녹음을 의무화해야 한다. 녹화까지 하면 금상첨화"라고 지적했다. 또 "검찰이나 법원이나 부패가 가장 큰 문제"라며 "검찰이 부패했다고 하지만 법원이 더 부패했다, 그런 의식이 있어야 뭘 해도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인들이 법원에 갖는 정서는 불신"이라며 "대기업과 소송에서 힘에 밀리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 벤처기업이 특허를 내고 대기업과 계약을 했지만 대기업이 독자적으로 특허를 내고 사업을 진행해 특허침해소송이 있었다"라며 "대법원이 특허침해라고 결정했는데, 이후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특허침해가 아니라 대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이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행사장에서 만난 서울지방법원의 한 관계자는 "법원이 국민들과 소통을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라며 "사법피해자라고 말하는 분들 가운데 분명 문제가 있는 분들도 있지만 그런 목소리도 경청하는 자세로 다가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이진성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행사 인사말에서 "법원 구성원들도 아픔과 고통이 담긴 사건마다 성의를 다해 재판하자고 새기고 다짐해 왔다"며 "우리의 부족으로 상처를 입거나 불편을 겪은 분들이 있을 거다, 돌아보고 반성하면서 그런 이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울지법은 국민과 소통 방안 연구를 위한 TFT를 구성하고 ▲ 시민과의 대화 정기 개최 ▲ 온라인 소통 강화 ▲ 재판체험 프로그램 강화 ▲ 법 문화센터 개설 등의 세부 계획을 발표했다.


태그:#사법부, #사법개혁, #부러진 화살, #도가니,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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