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마을회관에서 정월 대보름 잔치햐. 좀 이따 마을 회관으로 오라고."

지난 6일, 안성시 금광면 양지편 마을 사람들의 인사 내용이다. 이런 말을 하면 가장 먼저 모이는 것은 동네 아주머니들이다. 아주머니라고 해도 연세들이 모두 60~80세이니, 할머니라고 해야 맞을 게다. 그들은 음식을 준비해야 하니, 남성들보다 한 걸음 빨리 움직인다.

세월이 흘러도 남성밥상에 여성이 끼지 않는다. 특히 마을공동식사인 경우는 더 그렇다. 하여튼 정월대보름 밥상에서 할아버지들이 소주 한 잔 놓고, 맛있는 밥상을 마주 대하고 있다.
▲ 남성밥상 세월이 흘러도 남성밥상에 여성이 끼지 않는다. 특히 마을공동식사인 경우는 더 그렇다. 하여튼 정월대보름 밥상에서 할아버지들이 소주 한 잔 놓고, 맛있는 밥상을 마주 대하고 있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오곡밥과 소고기국이 아니라도 좋다

사실 오늘이라고 특별히 만나는 건 아니다. 요즘처럼 농한기 때엔 거의 매일 마을회관에서 모여서 식사를 한다. 이건 이 마을에 마을회관이 생기고부터 생긴 풍경이다. 다른 시골마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오늘은 정월대보름이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평소 마을회관에 모이는 인원보다 좀 더 많이 모였다는 것도 다르다면 다르다. 상이 차려진다.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시골에선 '남녀칠세부동석'의 풍습이 지켜진다. 남성 밥상과 여성 밥상을 따로 차렸다.

할머니들이 이런저런 반찬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마을 할아버지들은 밥상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반찬, 밥, 국을 놓아도 여전히 할아버지들은 점잖으시다. 이렇게 차려진 밥상에 둘러앉아 마을공동식사를 한다.

가만히 보니 정월대보름이라고 오곡밥을 한 것도 아니다. 소고기 국이나 돼지고기가 차려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콩나물과 고사리 나물이 있다. 나물로 비벼 드시는 것으로 만족한다. 꼭 오곡밥이어야 하고, 소고기국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정월대보름에 모여서 함께 식사하고 웃는 것으로 그 정신을 잇는다.

식사가 끝나면 할머니들이 밥상을 치운다. 음식을 준비했던 할머니들이 이번에는 쉴 차례다. 다른 할머니들이 밥상도 치우고, 설거지도 한다. '이건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다. 안 지킨다고 쇠고랑 차지 않고, 경찰 출동 안 하지만, 서로 지키기에 관계가 유지된다.'

할머니들이 한 상에 둘러 앉았다. 아직도 마을회관 부엌에선 밥과 국을 차리느라 몇 몇 할머니가 계신다. 먼저 밥상을 대하신 할머니들이 거의 설거지를 담당한다.
▲ 여성밥상 할머니들이 한 상에 둘러 앉았다. 아직도 마을회관 부엌에선 밥과 국을 차리느라 몇 몇 할머니가 계신다. 먼저 밥상을 대하신 할머니들이 거의 설거지를 담당한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오늘만큼은 고스톱 대신 윷판

이렇게 식사하는 걸로 정월 대보름 잔치는 끝나는 걸까? 아니다. 할머니들이 어떤 분들이신가. 한 할머니가 이부자리 하나를 편다. 그럼, 고스톱 판? 할머니들도 오늘만큼은 고스톱을 자제하신다. 바로 윷놀이 판이다. 고스톱 판은 어디까지나 개인전이고, 윷놀이 판은 단체전이다. 오늘 만큼은 단체전으로 판을 벌이신 게다.

부녀회장이 사회를 본다. 10명의 할머니들을 상대로 순서를 정한다. 순서는 화투장을 넘겨서 정한다. 1부터 5까지의 화투가 모두 10장이다. 각 숫자마다 2장씩이다. 같은 숫자가 걸리면 한 팀이 된다. 엎어진 화투를 넘기며, 누구와 누가 같은 편이 되는지를 보면서 서로 웃는다. 별 것 아닌 그 순간에도 배꼽을 잡고 웃으신다.

팀이 정해졌다.

"자, 준비하시고, 던지세요"

첫 윷이 이부자리 위에 던져진다. '개'다. 또 던졌는데 '개'다. 또 던지니 '개'가 나온다.

"이거 순전히 개판이구만" 

또 웃는다. "난, '개' 아니면 '또' 네"라며 한 할머니도 웃는다. 윷 던지는 시간보다 웃는 시간이 훨씬 많다. 길잡이를 하는 부녀회장 할머니는 부지런히 윷 길을 잡는다. 사회가 제대로 길을 잡으면 아무 말이 없지만, 자신의 맘에 들지 않게 길을 잡으면 바로 태클이 들어온다.

마을 할머니들이 윷판을 벌였다. 평소 하시던 고스톱 판을 오늘은 접었다. 명색이 정월대보름, 민속놀이를 해주는 게 예의 아니던가. 할머니들은 윷판 내내 신명나게 웃어 제쳤다.
▲ 윷 판 마을 할머니들이 윷판을 벌였다. 평소 하시던 고스톱 판을 오늘은 접었다. 명색이 정월대보름, 민속놀이를 해주는 게 예의 아니던가. 할머니들은 윷판 내내 신명나게 웃어 제쳤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아 그건 아니여. 그러지 말고 이렇게 둘러 가라고"
"아녀. 내 말이 맞는 겨. 이렇게 해야 되는 겨"
"아, 그건 던지는 사람 맘이지."

이렇게 의견이 엇갈려 언성이 높아지는 것도 잠시다. 이건 어디까지나 친선경기. 목숨 건 대외경기가 아니니 모두 이해한다. 어쨌든 웬만하면 사회의 길잡이 대로 한다. 좋은 게 좋은 거다. 사회의 혜안을 믿는다는 뜻도 된다.

할머니들은 윷판, 할아버지들은 시사토크

마을 회관 거실 한 쪽에서 할머니들이 이렇게 신나게 노는 동안 할아버지들은 수다 삼매경이다. 정확히 말하면 시사토크 판이다.

"아, 요즘 소 값이 똥값이랴."
"그렇다는구만. 큰일 일세 큰일"

이렇게 요즘 경기를 반영하는 이야기가 화제다. 그러다가 북한을 넘나들기도 한다.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수장이 되었자녀"
"그랴. 근디 북한이 별일 없구마이."
"그런 디야. 그거 보믄 신기햐~~"

역시 남성 분들이라 정치, 북한 등 차원이(?) 다른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회관 거실은 안성 장날이 따로 없다. 한 쪽에선 수다로 소리가 크고, 한 쪽에선 윷판으로 소리가 크고, 양지편마을의 정월 대보름 잔치는 이렇게 이어져가고 있다.

이것이 정월대보름 잔치하는 양지편 마을 회관 전경이다. 한 쪽에선 할머니들이 윷판을 벌이고, 한 쪽에선 할아버지들이 이야기판을 벌였다. 왁자지껄 하는 소리에 안성장날이 여기에 서 있는 듯 했다.
▲ 전경 이것이 정월대보름 잔치하는 양지편 마을 회관 전경이다. 한 쪽에선 할머니들이 윷판을 벌이고, 한 쪽에선 할아버지들이 이야기판을 벌였다. 왁자지껄 하는 소리에 안성장날이 여기에 서 있는 듯 했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못 먹고 가난한 시절을 겪었던 어르신들. 옛날엔 정월 대보름이라고 푸짐한 음식을 먹어서 기념을 했다면 요즘엔 같이 모여서 밥을 먹고, 윷놀이를 하고, 이야기를 함으로서 풍속을 지키고 있다. 아니 그들의 정월 대보름 추억을 다시 되새기고 있다. 이런 풍속이 얼마나 이어져갈지는 모르지만, 아직 시골에 이런 정서가 살아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내가 사는 안성 양지편마을('흰돌리마을'이라고도 함)에서 벌어진 정월 대보름 잔치를 스케치 했다.



태그:#정월대보름, #대보름잔치, #마을회관, #양지편, #흰돌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