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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슈퍼볼은 패트리어츠와 자이언츠가 겨루고 있다. 어느 팀이 승리하건 4번째 빈스 롬바르디 컵을 가져가게 될 것이다.
 올해 슈퍼볼은 패트리어츠와 자이언츠가 겨루고 있다. 어느 팀이 승리하건 4번째 빈스 롬바르디 컵을 가져가게 될 것이다.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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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이 아니고 사커야."

제2 외국어로서 영어(ESL)를 배우는 이민자들의 영어시간에 난데없는 축구 논쟁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데이비드 베컴이었다. 학생들이 이날 공부할 내용은 형용사를 사용하여 인물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유명한 사람의 사진을 보여준 뒤 적절한 형용사를 사용하여 그 인물을 묘사하도록 했다.

데이비드 베컴 사진이 맨 먼저 등장한 것은 학생들의 취미가 대부분 축구였기 때문이다. 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학생들은 주말이면 대개 축구를 한다고 말한다. 직접 밖에 나가 공을 차지 않으면 TV로 맨유나 바르셀로나 축구경기를 보는 것도 즐겨 한다. 내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아는 학생들은 내게 박지성에 대해 묻기도 했다.   

나는 학생들의 취미가 축구인 것을 알고 있기에 유명인사 가운데 제일 먼저 베컴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을 본 쿠바 출신의 알렉산더는 베컴을 보자마자 '훌륭한' 사커 선수라고 말했다.

그래서 다음 사진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만 거기서 사달이 나고 말았다. 갑자기 이디오피아에서 온 룰이 손을 들더니 베컴은 '사커 선수'가 아니고 '풋볼 선수'라고 반박한 것이다. 룰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신참 이민자다.

두 학생 모두 맞는 대답을 했는데 룰은 알렉산더가 말한 '사커 선수'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모양이었다. 룰은 주말마다 축구를 한다고 했다. 그런 열성 축구팬인 룰이 갑자기 흥분을 하더니 알렉산더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알렉산더, 발이 영어로 뭐야? 풋(foot)이잖아. 그래서 발로 차는 축구는 풋볼(football)인 거야. 사커가 아니고. 알았어? 손은 영어로 뭐야? 핸드(hand)지? 그래서 손으로 이렇게 공을 주고 받는 경기는 핸드볼이라고. 알았어? 풋볼과 핸드볼!"

축구는 영어로 풋볼이다. 물론 사커라고도 한다. 하지만 사커보다는 풋볼이 더 많이 쓰인다. 국제축구연맹인 FIFA에도 풋볼이라는 말이 들어가고 국제적으로도 많은 나라들이 축구를 풋볼이라고 한다. 사커라고 부르는 나라는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아일랜드 정도다. 물론 미국에서는 풋볼이라고 하면 당연히 미식축구를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오래 살았던 알렉산더는 베컴을 보자마자 사커 선수라고 말했고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룰은 풋볼 선수라고 부른 것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룰이었다. (기자 말: 미국에서는 축구가 사커이지만 실제로 사커라는 말은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1880년대 영국에서는 풋볼을 '럭비 풋볼'과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풋볼'로 구분해 불렀는데 그 때 축구를 가리키는'어소시에이션' 풋볼에서 '사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풋볼 경기를 보러온 미국인 일가족. 온 가족이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팀을 응원하고 있다. 갓난 아기를 어르는 아빠.
 풋볼 경기를 보러온 미국인 일가족. 온 가족이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팀을 응원하고 있다. 갓난 아기를 어르는 아빠.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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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볼 열풍, 네바다 코커스도 뒷전

풋볼이라고 부르는 미식축구는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미국의 국기로 불리는 풋볼은 1년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이 아니라 '풋볼 시즌'과 '풋볼없는 시즌' 2계절뿐이라는 농담이 나오게 할 만큼 미국인들을 열광시키는 스포츠이다.

동네 공원엘 가봐도 풋볼을 주고 받는 일가족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여기에는 딸도 예외가 없다. 화창한 날 대학 캠퍼스에도 풋볼이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풋볼 명가를 이루고 있는 '매닝 패밀리(아버지 아치와 아들 페이튼, 일라이)'의 화려한 경력도 온 가족이 풋볼을 즐겼던 어린 시절의 분위기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렇게 풋볼을 사랑하는 미국인들이 최고의 풋볼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 경기 챔피언전인 슈퍼볼에 열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미국인들이 느끼는 슈퍼볼은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월드컵축구 결승전에 비견할 만하다.

이렇게 미국 전역이 풋볼 얘기로 떠들썩했던 지난 토요일(4일), 미국에는 중요한 정치 행사가 있었다. 바로 대통령 경선인 공화당의 네바다 코커스가 벌어진 날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주요 방송들은 네바다 코커스보다 오히려 '슈퍼볼 이브'에 더 의미를 더 둔 듯 5일 벌어질 슈퍼볼 열기를 취재하는데 열을 올렸다.

올해로 46회를 맞는 2012 슈퍼볼은 슈퍼 선데이인 5일 오후 6시 29분(현지시각)에 벌어진다. 이번 슈퍼볼은 전통의 강호인 NFC 챔피언인 '뉴욕 자이언츠'와 AFC 챔피언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맞붙게 되었다. 이들 두 팀은 지난 2008년에도 슈퍼볼에서 격돌한 바 있는데 당시는 자이언츠가 패트리어츠를 17:14로 눌러 우승컵인 빈스 롬바르디 컵을 가져갔다. 따라서 4년 만에 재격돌하게 된 올해 슈퍼볼은 패트리어츠로서는 설욕전이 될 것이다.

현재 많은 방송 차량들은 슈퍼볼이 열리는 인디애나폴리스로 총 출동했다. TV 카메라는 경기가 벌어질 루커스 오일 스타디움과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인디애나폴리스 시내를 비추며 관광객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시내가 붐비고 있고 이들의 주머니를 노린 슈퍼볼 상술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게마다 양팀 선수들의 유니폼과 각종 기념품, 응원 도구들이 넘쳐나고 있고, 호텔들은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거리 공연도 풍성한 인디애나폴리스 시내를 취재한 한 기자는 마치 올림픽촌에 와 있는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하이오 에이다에 있는 윌슨 풋볼 공장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가죽 풋볼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3천 개 이상의 ‘메이드 인 USA’ 풋볼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하이오 에이다에 있는 윌슨 풋볼 공장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가죽 풋볼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이곳에서는 하루에 3천 개 이상의 ‘메이드 인 USA’ 풋볼을 만들어내고 있다.
ⓒ Wi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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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첨단 테크놀로지, 헬리콥터, F-16으로 삼엄한 경비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이번 슈퍼볼에서도 안전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슈퍼볼 경비를 맡은 지상 요원들은 수 주 전부터 루커스 오일 스타디움으로 출동하여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긴급상황 전문가들로 여기에는 군인, 경찰, 캐나다와 미국의 협력 기관인 북미 항공 방위대(NORAD), 세관 및 국경 보호국을 포함한 연방 요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테러 습격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부터 작은 소매치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황을 책임지게 된다. 경기장에 들어가는 약 7만 명 관중 외에도 14만명 이상이 시내로 몰려가 경기를 볼 것으로 예상돼 이들은 경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비를 위해 경찰견이 출동했음은 물론 특수 모니터가 장착된 헬리콥터와 F-16 등 비행기도 총 출동하여 경기장 주변을 돌게 된다고 한다.

삼성의 슈퍼볼 광고. 갤럭시 S2 광고인데 애플을 의식한 비교 광고가 눈에 띈다.
 삼성의 슈퍼볼 광고. 갤럭시 S2 광고인데 애플을 의식한 비교 광고가 눈에 띈다.
ⓒ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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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의 전쟁' 슈퍼볼 광고

슈퍼볼의 또 다른 볼거리는 광고다. '슈퍼볼 광고'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로 슈퍼볼에서는 광고가 큰 몫을 한다. 지난해 그린베이 패커스와 피츠버그 스틸러스가 맞붙었던 2011 슈퍼볼에서는 무려 1억1100만 명이나 되는 시청자들이 슈퍼볼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하여 당시 주관 방송사였던 FOX는 시청률과 관련하여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었다. 즉, 슈퍼볼을 방영하면서 가장 높은 저녁 시간대 시청률을 기록했고, 황금 시간대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 프로그램으로 기록되었다. 또한 지난 20년 동안 모든 채널을 통해 가장 많은 사람이 TV를 시청했던 것으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엄청난 고객을 코 앞에 둔 슈퍼볼 광고를 위해 각 기업들이 광고를 따내기 위해 '쩐의 전쟁'을 벌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올해 슈퍼볼 주관방송사인 NBC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30초 광고에 평균 350만 달러가 책정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1초당 117만 달러로 우리 돈으로 따지면 무려 1억3천만 원이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런 거액의 광고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슈퍼볼 광고에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 뉴욕타임스는 슈퍼볼 광고와 관련하여 올해 새롭게 첫 선을 보이는 기업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아큐라>와 <렉서스>, 영화배우 존 스타모스가 등장하는 <다논>, 데이비드 베컴이 등장하는 < H&M >, 부동산기업인 <센추리 21> 등이 바로 그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아, 현대, 삼성 등이 슈퍼볼 광고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삼성은 이번 광고에서 라이벌 애플을 의식한 비교 광고를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슈퍼볼과 뗄 수 없는 것들

슈퍼볼 특수를 겨냥하여 월마트 계산대 옆에 맥주와 음료수 등이 잔뜩 쌓여 있다.
 슈퍼볼 특수를 겨냥하여 월마트 계산대 옆에 맥주와 음료수 등이 잔뜩 쌓여 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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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볼을 앞두고 또 분주한 곳이 있다. 바로 월마트, 코스코 등 대형 마트다. 이곳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입구에 대형 TV를 비치해두고 풋볼 명 장면을 계속 돌리고 있다. 풋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미끼인 셈이다. 또한 슈퍼볼에서 빠질 수 없는 맥주 등의 주류와 음료, 갖가지 스넥도 대형마트의 <슈퍼볼 코너>에 자리를 잡고 있다.

슈퍼볼은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처럼 특별한 요리를 준비하기도 한다.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때 칠면조 고기를 먹듯 슈퍼볼 때는 치킨 윙을 먹는다. 주부들이 시청하는 아침 방송에서는 슈퍼볼을 관람하면서 가족,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요리법을 계속 소개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슈퍼볼 음식을 담는 그릇도 슈퍼볼 모양을 하고 있거나 슈퍼볼 무늬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슈퍼볼 다음 날인 월요일, 학교나 직장에서의 화제는 단연 슈퍼볼이다.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라 경기가 있는 다음 날이면 온통 화제가 월드컵이듯 말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슈퍼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미국인들에게 귀가 솔깃해질 제안이 있다.

슈퍼볼 다음 날인 월요일을 쉬자는 제안이다. 다소 엉뚱해보이지만 실제로 이런 제안이 진지하게 나온 적이 있었다. 지난 2007년, NBC 스포츠 기고가인 밥 쿡은 "이제는 슈퍼볼 다음 날인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할 때"라고 주장했다.

그는 슈퍼볼이 일요일 저녁에 시작되고 경기가 다 끝나면 늦은 밤이 되는 만큼, 국민들을 위해 다음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제안을 했다. 피곤모드에 젖은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물론 이런 제안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고 그냥 웃어넘길 일이었지만 혹시 아는가. 앞으로 언젠가는 슈퍼볼 다음 날이 공휴일로 지정될는지. 풋볼에 열광하는 미국인인 점을 감안한다면 전혀 터무니 없는 제안만은 아닐 듯 싶다.

한가지 풋볼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이제는 세계 어디에서나 슈퍼볼을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미국내에서만 슈퍼볼을 볼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처음으로 해외팬들을 위한 온라인과 모바일 서비스도 제공된다고 한다.


태그:#슈퍼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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