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작년 9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대법원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법원의 소통지수는 아직 높지 않은 듯 싶다.

그런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시민과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는 판사 2명이 징계대상자와 연임부적격 심사자로 올라 판사직 유지가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대법원식 '소통의 역설'이라고 해야 할까.

이정렬 판사, 김명호 교수 사건 판사 합의공개로 징계 회부

 창원지법 이정렬 부장판사.
 창원지법 이정렬 부장판사.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먼저 창원지법 이정렬 부장판사(@thundel)다.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예비군 훈련 상습 불참자 실형, 진술거부권을 고지받지 못한 살인피의자 영장 기각 등 소신 있는 재판으로 주목받던 이 판사. 작년 국회에서 한미FTA가 강행처리된 이후부터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누리꾼들과 활발한 소통을 해 왔다.

그런데 이 판사는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되면서 석궁사건의 발단이 된 김명호 전 교수의 민사사건(교수지위확인 소송) 2심 주심판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에 휘말렸다.

일부 누리꾼들은 사실과 달리 '이 판사가 석궁사건의 형사재판을 하였다'거나, '민사재판에서 특정인의 지시를 받아 짜맞추기식 엉터리 판결을 했다'는 등의 의혹을 제기하였다. 심지어 법원 내부에서조차 항의성 메일을 받게 되자 그는 이같은 주장을 반박하는 차원에서 지난 1월 25일 법원전산망에 민사사건의 합의과정을 공개하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그는 "애초의 합의 결과는 판사 3명 사이에 이견없는 김명호 교수 승소였다"면서 "변론재개 후에 당초의 결론이 뒤집어졌다"는 내용을 밝혔다.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않도록 돼 있다.

그는 다음날 게시물을 자진삭제했지만 1월 30일 그가 소속된 창원지방법원장은 이 판사에 대해 징계를 청구했다. 대법원에 설치된 법관징계위원회는 조만간 징계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현행법상 판사에게는 정직, 감봉, 견책 등 3종류의 징계를 할 수 있다. 다만 형사처벌이나 탄핵을 받지 않는 한 판사를 파면할 수는 없다. 징계위는 징계사유가 인정되지 않으면 무혐의결정을 하거나, 사유가 인정되더라도 사안에 따라 불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지방의 한 판사는 "이 판사가 법원조직법에 명시적으로 나온 사항(합의사항 비공개)을 어긴 점이 있지만 자신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한 발언인 점이 참작돼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또한 "이 판사가 SNS에서 패러디물을 올리거나 발언한 내용 등이 논란이 되었는데 징계사유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징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느냐"고 조심스레 말했다.      

서기호 판사에 "근무성적 현저히 불량... 연임 부적격 심사" 통보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SNS를 통해 공감과 소통의 대화를 강조해온 서기호 판사(@gihos1)는 더욱 심각한 상황에처해 있다. 올해로 판사생활 10년이 되는 서 판사는 법관 연임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법원이 그를 부적격 심사대상자에 올렸기 때문이다.

판사들의 인사를 관장하는 법관인사위원회는 지난 1월 27일 서 판사에게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연임적격 여부가 문제되는 판사"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법관인사위는 서 판사에게 회의에 출석하여 의견을 진술하라고 통보한 상태이다. 서판사가 연임 부적격자로 최종 결정되면 판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법관연임을 심사하는 법관인사위원은 판사 3명을 포함하여 대한변협회장 추천 변호사 2명, 법학교수 2명, 각계 전문가 2명 등으로 구성된다.

서 판사는 "다음주로 예정된 법관인사위 회의에 참석하여 의견을 진술할 것"이라고 담담하게 밝히면서도 "근무성적이 불량하여 연임적격이 문제되는 판사로 결정된 것에 대해선 전혀 수긍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징계 절차를 진행할 때도 공문으로 사실관계를 알려주는데 하물며 판사의 직을 박탈하는 연임 적격 심사를 하면서 어떤 근거로 근무성적이 불량한지, 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인지 밝히지도 않은 채 전화와 개인 메일로 법조항만 설명하고 통보를 한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한 "지난 10년간 저의 근무성적이 하위권이라면 그 내용을 밝혀달라"고 대법원에 요구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법관근무평정은 비공개자료여서 당사자에게 공개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서 판사는 근무성적이 불량하다는 추상적인 이유로 법복을 벗을 위기에 처해있다.

판사들은 해마다 사건처리율과 처리기간, 상소율, 상급심에서 파기된 비율 등을 포함한 근무성적 평정과 성실성, 청렴성, 친절성 등을 고려한 자질평정을 더한 근무성적평정을 받고 있다.     

현행법상 판사의 임기는 10년이며, 연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동안 판사의 연임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물론 연임 부적격 심사 대상에 오르면 사직하는 관행도 있었지만, 지난 88년부터 현재까지 20여 년간 연임에서 탈락한 판사는 총 3명에 불과할 정도다. 따라서 서 판사가 연임 부적격자로 결정된 것을 두고 재판외적인 요소가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법원장님, SNS 판사와도 만나겠다고 하시더니..."

서울북부지방법원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서 판사가 법정에서 누구보다 당사자들과 소통하고 그들이 납득하는 재판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은 같은 법원에서 일한 직원들이 잘 안다"면서 "2009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촛불재판 파동 때 평판사회의를 주도했던 점과 작년 연말 한미FTA 사태 이후 트위터 활동 등이 빌미가 되지 않았나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 판사는 작년 연말 트위터에 '가카' '빅엿'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조중동으로부터 "법복을 벗으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서 판사는 "대법원장님이 연초에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를 포함한 SNS 판사와도 만나겠다고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데 내가 연임 부적격심사를 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서 판사는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은 근무평정으로 판사를 심사한다는 것도 부당하지만 법관인사위에 외부인사들이 다수 포함된 점도 외부 압력에 휘둘릴 소지가 있어서 위험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사안은 서기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법관의 독립과 직결되는 사안이므로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법관의 신분은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의 핵심은 법관의 독립이기 때문이다. 어느 판사는 "사법부가 외부로부터 신랄한 공격을 받고 있는 지금, 대법원이 인사권과 징계권을 통해 법관의 독립을 스스로 침해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금 법원은 국민과의 소통 전에 내부 소통을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정렬#서기호#SNS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