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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자녀들의 이른바 '대기업 빵집' 논란이 거세다. 여론에 밀려 일부 대기업은 사업 철수를 선언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대형마트와 대형슈퍼마켓(SSM),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에 시달려온 지역 소상인들의 생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31일 결국 문을 닫은 홍익대 앞 리치몬트 과자점과 최근 프랜차이즈 빵집 등장으로 위기를 맞은 이화여대 후문 '이화당'을 찾아 '동네 빵집' 주인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편집자말]
이대후문 건너편의 '빵집' 이화당. 지난달 26일 이화당 바로 옆에 약 세배 규모의 파리바게트가 생겼다.
 이대후문 건너편의 '빵집' 이화당. 지난달 26일 이화당 바로 옆에 약 세배 규모의 파리바게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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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렇.게. 해.요? 우.리.는 그.런. 거. 없.어.요."

30년 넘게 '빵집' 이화당을 운영해 온 박성은(74)씨가 미국인의 어눌한 발음을 흉내 냈다. 얼마 전 이웃에 10평 남짓한 이화당보다 세 배 넓은 파리바게뜨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연세대 어학당에 있는 미국인 단골 손님이 와서 이렇게 말했단다. 자기 동네에서는 "저렇게" 장사하지 않는다고.

마침 지난 1월 31일 30년 전통의 과자점 리치몬드 홍대점이 마지막 영업을 했다. 그 자리엔 롯데 계열의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가 들어선다. 같은 날 오후 이화여대 후문 건너편에 있는 이화당을 찾았다. 주인 노부부에게 리치몬드 소식을 전하자 깊은 한숨부터 나왔다.

"리치몬드 폐업? 우리도 없어진 거나 다름없어"

"기술도 좋고 자본도 탄탄할 건데. 정말 그렇게 돼 버렸어? 어떻게 해…. 리치몬드가 없어지면 우리도 다 없어진 거나 다름없어."

박씨의 부인 신현주(71)씨는 인터뷰 내내 연신 리치몬드 이야기를 꺼냈다. 기자에게 "정말 그 좋은 빵집이 없어졌어?"라며 리치몬드의 폐점 여부를 수차례 물었다. 얼마 전 '바로 옆'에 파리바게뜨가 생기면서 이화당 역시 사정이 안 좋아진 건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노부부에 따르면 이화당 매상은 절반으로 줄었다. 신씨는 "나 같아도 크고 깨끗한 곳으로 가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바로 옆 파리바게뜨에 가봤다. 아르바이트 직원은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만 5명이었다. 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테이블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파리바게뜨 바깥 길모퉁이로 이동했다. 그곳에 서니 이화당 모습은 파리바게뜨 건물에 가려 아예 보이지 않았다.

실제 파리바게뜨 건물은 이화당보다 좀 더 튀어나와 있었다. 박씨는 구청에 민원을 넣었다. 민원이 잘 해결되지 않아 구청장을 만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구청 직원들이 와 점검은 하고 갔다. 하지만 "(파리바게뜨) 업주와 잘 상의해봐라", "파리바게뜨 쪽에서 세금을 내면 된다"는 답을 얻었다. 이제는 답답해서 포기한 상황이다.

도로 쪽으로 튀어나온 파리바게트 건물로 인해 이화당이 보이질 않는다.
 도로 쪽으로 튀어나온 파리바게트 건물로 인해 이화당이 보이질 않는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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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소식에 단골 발걸음 더 늘어

전체 매상은 줄었지만 단골 손님의 발걸음은 오히려 늘었다. 노부부 응원 차 일부러 이화당을 찾는 것이다. 

"파리바게뜨가 생긴 이후에 단골들이 많이 찾아와줘. 주변 교수님들이랑 학생들, 매일 찾아오던 단골들이 와서 응원해주고, 대신 싸워주겠다 하고…. 얼마나 고마운지."

신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최근 '동네 빵집'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이 같은 발걸음이 더 늘고 있다. 단골이 아니어도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는 사람도 많다. 기자가 이화당을 찾았을 때도 한 청년이 주인 노부부와 리치몬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이 이화당 옆에 파리바게뜨가 들어선 것을 보고 SNS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주로 이화당을 응원하는 글이었다. 그렇다 보니 기자들도 여럿 다녀갔다. 최근에는 <중앙일보> 기사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앙>은 파리바게뜨 점주가 힘든 여건에서 겨우 점포를 얻었고 이화당이 있는 2층짜리 건물은 이화당 노부부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비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횡포를 좌시해서도 안 되지만 덮어놓고 하는 마녀사냥도 곤란하다"며 "'동네 빵집 지키기'가 '자영업자 죽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 적고 있다. 이 기사가 나간 뒤 트위터에서는 "자영업자 내세워서 대형 프랜차이즈의 속성을 숨길 셈이야?"(@4of_fire) 같은 비판 글도 올라왔다.

"파리파게뜨 점주도 마진은 얼만 안 될 것"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연신 '덤'을 얹어 주는 신현주씨.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연신 '덤'을 얹어 주는 신현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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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주 호의적으로 취재를 해줘서 빵도 한 보따리 싸줬는데…."

박씨는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아쉬움을 감추진 못했다. 그러면서도 "(중앙일보) 기자가 글은 저렇게 안 썼는데 아마 위에서 바꾼 것 같아"라며 "그때 찾아온 기자를 미워하진 않어"라고 말했다.

연세대에 다니는 송준모(27)씨는 <중앙일보> 기사가 '구조의 문제'를 '개인 간 문제'로 환원했다고 비판했다. 자영업자의 어려운 상황이 단지 이화당 때문이 아니라 파리바게뜨의 구조 때문이란 것이다. 송씨는 "기사는 프랜차이즈가 점주에 부과하는 구조적 힘을 간과하고 있다"며 "이화당 노부부와 파리바게뜨 점주 개개인의 문제를 근거로 '자영업자 죽이기'라는 답이 나오는 것은 '물타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노부부는 파리바게트 점주도 큰 이윤은 없을 거라고 했다.

"빵 많이 팔아도 본사에 돈 납부하고, 이걸로 돈 내고, 저걸로 돈 내고…. 사실 저기(파리바게뜨) 마진도 얼마 안 남을 거야."

취재를 하는 동안 몇몇 손님들이 이화당을 다녀갔다. 신씨는 빵을 담은 봉지에 연신 '덤'을 넣는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박씨는 "우리 힘으로 법 바꾸고 하는 게 어느 세월에 되겠어"라며 "그래도 어떻게 알고 이렇게 찾아와 주는 사람들 보니 사회가 절망적이지만은 않더라고"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소중한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이화당, #파리바게트, #동네 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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