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달과 페더러는 호주오픈 준결승 대결로 통산 27번의 맞대결을 펼쳤다 나달의 역전승으로 끝난 준결승 경기는 승패와 상관없이 테니스의 진수를 보여준 최고의 경기였다. 나달은 2009년에 이어 호주오픈 두번째 우승에 도전하게 된다.

나달의 역전승으로 끝난 준결승 경기는 승패와 상관없이 테니스의 진수를 보여준 최고의 경기였다. 나달은 2009년에 이어 호주오픈 두번째 우승에 도전하게 된다. ⓒ www.australianopen.com

테니스 메이저 대회로 가장 먼저 시작되는 2012년 호주 오픈이 우리 시간으로 29일 막을 내렸다. 우승자는 조코비치, 준우승은 나달이 차지했다. 언론의 관심은 조코비치에게 절대적으로 모아졌지만, 테니스 판도 혹은 역사의 관점에서 더 눈길을 끌어야 할 사람은 나달이다. 현재 세계 남자 테니스의 랭킹 순위, 즉 1위 조코비치 2위 나달 3위 페더러의 구도를 만든 주역이 나달이기 때문이다.

 

현 시점, 나아가 향후 최소 1~2년 세계 테니스 판도는 나달에 의해 좌우될 확률이 지극히 높다. 승패를 기준으로 할 때, 나달이 페더러를 물리치고 또 매번 조코비치를 만나면 패할 가능성이 매우 큰 까닭이다. 기술적 측면에서 물고 물리는 이런 구도를 형성한 요인을 딱  한가지만 꼽으라면 나달의 감아 치기, 즉 톱 스핀이다. 다시 말해 나달의 톱 스핀 때문에 현재의 3강 구도가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의 순서로 고착돼 가고 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다.

 

나달의 톱 스핀은 세계 테니스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네트를 넘어 상대 코트로 날아갈 때 회전 수나 속도에서 단연 으뜸이다. 스핀의 위력을 결정하는 분당 회전 속도(RPM)가 평균 3200회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어린 아이 주먹만한 공이 1분에 무려 3200번 도는 속도로 코트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톱 스핀 양이 많다는 페더러는 2500회 정도로 알려져 있다. 세계 정상급의 테니스 선수들의 톱 스핀은 분당 2000회 정도이다.

 

나달 웃고 울게 하는 '톱 스핀'... 지금 1~3위 구도 유지될까?

 

무지막지하다고 할 정도로 강력한 나달의 톱 스핀은 그러나 동시에 나달을 울고 웃게 한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나달은 톱 스핀에 힘입어 페더러를 잡을 수 있으며, 반대로 바로 그 톱 스핀 때문에 조코비치에게 거푸 고배를 드는 것이다. 실제로 나달은 이번의 호주 오픈을 포함해 최근 결승에서만 조코비치를 7번 만났으며 7번을 내리 졌다. 조코비치와 이번 호주 오픈 결승에서 만나기 직전 나달은 준결승에서 페더러를 꺾었다.

 

준결승인 페더러와 경기는 매번 그랬듯이 한 손 백핸드인 페더러를 왼손잡이인 나달이 톱 스핀으로 백핸드 쪽으로 공략하는 양상이 게임을 좌우했다. 나달이 왼손잡이만 아니었다면 페더러의 백핸드 쪽으로 그리 쉽게 공을 보낼 수 없다. 혹은 왼손잡이더라도 괴물 같은 톱 스핀만 없었다면 페더러와 나달의 경기 양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팔의 근육 및 동작 특성상 한 손 백핸드로 강력한 톱 스핀이 걸린 공을 제대로 공략할 수 없는데, 나달은 페더러만 만나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이런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 페더러로서는 알고도 당할 수 밖에 없는 두 사람 사이의 경기 공식이다.

 

하지만 나달의 이런 톱 스핀은 조코비치에겐 경기를 자신의 주도로 풀어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톱 스핀의 결정적인 취약점, 즉 체공 시간이 길다는 점이 조코비치에게는 볼을 때리는 데 여유를 주고 있다. 조코비치는 테니스 사상 가장 받아 치기가 능한 선수 가운데 한 사람이며 특히 면도날처럼 예리한 선 따라 치기(다운 더 라인)로 명성을 얻고 있다. 조코비치는 한 손이 아니라 두 손 백핸드인데다가 페더러나 나달 보다도 키가 조금 더 큰 까닭에 땅에 튀기면서 급속히 솟아 오르는 나달의 톱 스핀을 제대로 눌러 찍어 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두 손 백핸드의 경우 오른손 잡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왼손이 땅을 향해 자연스럽게 덮어질 수 있기 때문에 떠오르는 공을 내려 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조코비치가 1위로 부상하기 전 나달이 테니스 황제 자리에 있으면서도 매번 두 손 백핸드를 구사하는 키 큰 선수만 만나면 게임을 쉽게 풀어가지 못했던 것은 같은 이유에서였다. 후안 마틴 델 포트로, 로빈 소덜링, 존 이스너 등 장신들이 나달을 괴롭혔던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또 세계 랭킹 4위인 앤디 머레이가 페더러보다 훨씬 쉽게 나달과 경기를 풀어갈 수 있는 것도 머레이가 190cm가 넘는 장신이며, 또 안정된 두 손 백핸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톱 스핀이라는 기술적 요소 외에도 나이 차이와 부상 여부, 경기 당일의 컨디션 등 여러 요인에 의해 테니스 경기의 승패가 갈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조코비치는 우리 나이로 26세, 나달은 27세, 페더러는 32세이다. 그러나 세 선수의 기술적 특성에만 주목한다면 톱 스핀을 빼놓고는 승패와 경기 전략을 논할 수 없다. 통계상 테니스 선수가 최고의 기량과 성적을 보이는 것은 29세이다. 페더러는 이미 이런 시점을 한참 지났기 때문에 현재의 1~3위 구도가 향후 4~5년 이상 지속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나달의 톱 스핀에 의해 테니스 3강이 울고 웃는 구도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2.01.30 11:58 ⓒ 2012 OhmyNews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 테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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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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