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티 룸(The Tea Room)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게 아니면 홍차에 관해서 알고 있나요?"영국에 관하여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언제나 한결같다. 정원의 나라, 홍차의 나라, 신사의 나라 등등. 그 중 홍차에 관해서는 아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듯, 우아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고급 찻잔을 들고 마시는 이미지는 대체로 사람들이 홍차와 영국에 관하여 상상하는 것들이다. 영국에 관해서는 잘 몰랐던, 유학을 와서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내가 깨달은 것은 홍차는 정말로 영국인들의 삶 속에 깊게 스며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영국인들은 언제나 홍차(영국에서 차는 곧 홍차를 뜻한다, 영어로는 Black Tea)를 마신다. 영국인들은 휴식시간이 되면, 당연히 차를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떠한 학교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습관은 밖을 나서면 자연스럽게 차를 마실 최고의 공간, '티 룸'을 찾아 다니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느낀다.
큰사진보기
|
▲ 티 룸 영국의 일상인 티 룸. 티 룸에서 즐기는 풍경은 영국을 색다르게 보이게 한다. |
ⓒ 조혜리 | 관련사진보기 |
티 룸(Tea Room), 카페만큼이나 영국인들에게 친숙한 공간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지도 모른다. 찻집이라니? 아마도 한국사람들은 옛날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시골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다방을 떠올리거나, 십전대보탕을 마셔볼 수 있을 것 같은 전통찻집을 떠올릴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찻집은 어쩐지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 전통적인 공간으로 느껴졌고, 더욱이 차보다는 커피가 내 입맛에는 더 맞는다고 느꼈기에 항상 카페를 찾아 다녔다.
그러나 영국에서 찻집은 카페만큼이나 친숙하고 찾아 다니기 매우 즐거운 공간이다. 찻집, 즉 티 룸은 영국인들 일상생활에서 빠지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영국에 와서 처음 홍차를 접했다. 처음 와서 1년 동안은 홍차를 즐겨 마시거나 집에다 꼭 하나씩 사두어야만 하는 필수품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평생 5잔이나 마셔볼 수 있을까 한 음료를 나는 영국생활 6년동안 몇 잔이나 될지 샐 수도 없이 많이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 한잔을 마시고, 휴식시간 때만 되면 또 한잔씩 마시고, 집에 돌아가서 쉴 때나 과제 중에도 홍차를 꼭 마시게 된다. 커피중독자라고 생각되었던 내가, 나도 모르게 홍차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홍차에 대한 애착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자연스럽게 인터넷으로 평이 좋은 티 룸을 검색하고 찾아 다니게 만들게 되었티 앤 테틀다.
큰사진보기
|
▲ 티 앤 테틀의 앞 아서 프로스테인 이라는 서점의 지하에 위치해 있다. 간판을 눈여겨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
ⓒ 조혜리 | 관련사진보기 |
내 생애 첫 티 룸은 티 앤 테틀(Tea & Tettle)이라는 작은 찻집이었다.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서 고작 몇 발자국 걸어서 찾을 수 있는 곳. 의외로 그곳은 한 서점의 지하에 위치한 곳으로 서점의 주인 아들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대영 박물관의 앞에 있는 어마어마한 관람객이 있음에도 너무나 조용해서 깜짝 놀랐던 장소. 티 룸을 찾아보면서 반드시 즐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애프터눈티 세트를 처음 접한 장소이기도 했다. 예쁘게 담겨나오면서 맛도 훌륭한 샌드위치와 스콘, 나는 아무리 차를 우려봐도 나오지 않는 훌륭한 홍차의 맛과 더불어 친절한 서비스들은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도 영국을 가면 반드시 이곳을 다시 찾아보고 싶다고 항상 생각한다.
큰사진보기
|
▲ 티 룸의 내부 조용한하고 차분한 내부. 중국문화를 좋아하는 주인의 취향이 나타나 있다. |
ⓒ 조혜리 | 관련사진보기 |
처음 가본 티 룸의 느낌은 카페와는 달랐다. 카페의 느낌이 진한 커피 향같이 세련되고 중후한 느낌의 공간이라면, 티 룸은 차분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처음 접한 이 새로운 공간은 그 뒤로도 어떤 티 룸을 가도 똑같이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티 룸 안에서는 시간이 어쩐지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았다. 티 룸 안에서만큼은 화가 났던 마음도 진정되고, 급해지는 일이 생겨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뒤로도 나는 홍차와 티 룸을 내 곁에 내내 두어야만 했다. 일상이 바쁘다 보니 티 룸을 자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꼭 하나씩 좋은 티 룸을 찾는 것을 즐거워했다. 전에는 몰랐던, 영국에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수 많은 티 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충격을 받기도 하였다. 더 놀라운 것은 많은 티 룸 중 그 어느 곳도 똑같은 곳은 없다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내가 티 룸의 존재를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이 좋은 곳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보았을 거라는 것이다. 언제나 후회는 깨닫고 나서야 한다고 하던데, 내 상황이야 말로 딱 그 상황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