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라디오스타>에 출연에 눈물을 흘린 박철민

18일 <라디오스타>에 출연에 눈물을 흘린 박철민 ⓒ MBC


남자의 눈물은 진했다. 평소 입담꾼에 재담가로 알려진 그였지만 힘들었던 시절, 만화방에 남겨진 자장면 반 그릇을 먹은 자신이 그렇게 부끄러웠단다. 그리고 동생을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해 준 형 고 박경민씨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도 박철민은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18일 방송된 <황금어장 - 라디오스타>(이하 <라디오스타>) '명품 배우' 편은 그렇게 연극배우로, 조연배우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던 박철민과 안석환, 한상진이 출연했다.

김구라를 쩔쩔 매게 만든 흔치 않은 게스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 본부 홍보대사로 김일성 대학을 방문했었다는 안석환이나 조연배우로서 주인공이었던 고수와의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던 한상진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이날의 주연은 분명 박철민이었다.

"구라씨 나이가 어떻게 되지? 43년 동안 아껴놓은 어금니 한 번 빠져 볼래? 어금니하고 송곳니 순서 한 번 바꿔 보래? 다시는 질긴 고기 못 먹게 만들어 드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김구라의 "박철 미니"라는 소개, 이에 강한 애드리브를 날리는 박철민은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김구라를 쩔쩔매게 하는 동시에 감상에 젖게 하는 게스트는 <라디오스타>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애드리브의 천재'라고 소개된 그는 "복싱은 말이여 바람을 가르는 빠른 팔,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라는 <목포의 항구다> 속 대사나, "미꾸라지 짝짓다가 미끄러지는 소리 하고 있다"와 같은 독창적이고 신명나는 애드리브를 소개하며 독한 진행자들을 무장해제시켰다.

소신 발언 배우를 하나의 색깔로 단정 안 지었으면...

 배우 박철민.

2010년 <오마이뉴스> 인터뷰 당시 박철민 ⓒ 유성호


여기까지였다면 평범한 <라스>와 다르지 않았을 터. 박철민은 무명시절을 이겨낸 인내와 연예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소신까지 거침없이 밝히면서 <무릎팍도사>를 꿈꾸는 <라디오스타>의 품격을 한 단계 상승시켰다.

"당부하건대, 소신발언을 하는 배우나 예술인들을 너무 한 색깔로 규정지어 폄훼하거나 편파적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 저 배우는 전쟁을 아주 싫어하는 배우구나, 그냥 그 정도로 기억해주면 어떨까 싶다. 나는 저 전쟁은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저 배우는 전쟁이 싫은가 보지? 뭐 그 정도로 생각하면 어떨까."

2010년 <오마이뉴스>와 '소셜테이너를 만나다' 인터뷰를 가진 박철민은 연예인의, 예술인의 정치사회참여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그런 소신은 잘 알려진 대로 박철민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진보적인 색깔의 극단에서 활동했던 박철민은 노동자집회나 대중집회에서 연극을 하고 또 사회도 '현실 참여형' 연극인으로서 연기를 시작했다.

<목포는 항구다> <화려한 휴가>는 물론이요 <뉴하트> 등의 드라마를 통해 '명품조연'으로 인정받은 후에도 '양심수 시와 노래의 밤'과 같은 행사에 사회를 보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 홍보대사를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무릎팍도사'에서나 나왔을 법한 '감동 코드'도

날카로운 김구라가 "정치인의 정치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박철민은 김구라가 "멘트가 좋으시네요"라며 부러워할 만큼의 답변으로 평소 소신을 펼쳤다.

"제도권 정치인들 당선을 위해 참여하는 건 정말 반대하고요. 절대선 절대악이 있잖아요. 평화를 위해서 핵이 없어져야 한다거나 나쁜 고기가 수입소고기가 들어오는 걸 반대한다거나. 전태일 열사가 죽음으로 이 사회에 경종을 울렸는데, 그 분의 30주기, 40주기를 기념하는 홍보대사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감동코드도 그의 몫이었다. 연출자의 연락을 삐삐로 기다리던 시대, 만화방에서 하루 몇 천원으로 시간을 때우던 그가 유혹을 못 이겨 남이 남긴 자장면을 먹었던 일화나 차비가 없어 빈 병을 팔아 은하수 담배와 토큰을 샀다는 고생담은 그간 <무릎팍도사>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종류의 고백이었다.

무엇보다 연극배우로서 자신에게 연기자의 꿈을 심어줬던 형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고백하는 장면은 박철민이 공개 석상에서 최초로 밝히는 아픔이었다. "이제는 1년에 한 번 제사 때 한 번 생각난다"면서도 "나보다 더 좋은 배우가 되라"고 해줬던 기억을 떠올리는 모습은 애잔함을 전해주기에 충분했다.

<라디오스타>에게 필요한 게스트의 전형, 박철민

 2010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당시 박철민

2010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당시 박철민 ⓒ 유성호


1시간으로 연장된 <라디오스타>는 지금 실험 중이다. 특유의 독함을 유지하면서도 <무릎팍도사>가 맡았던 감동코드까지 도맡아야 하며, <놀러와>와 같이 색다른 조합의 게스트들을 불러 모아야한다. 다행히 여전히 "강호동이 돌아왔으면 한다"며 자리를 잡지 못한 유세윤은 다음 주 '개식스' 멤버을 초대해 맹활약할 예정이다.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얘기를 하게 될 정도로 분위기가 따뜻했다.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얘기하는 기분이었다"는 박철민의 출연소감을 지속적으로 듣기 위해서 <라디오스타>가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방송이 바로 '뿌리깊은 명품배우' 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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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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