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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16일 낮 12시 30분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최시중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삼보일퍽'을 날리고 있다.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16일 낮 12시 30분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최시중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삼보일퍽'을 날리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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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MBC 앞에서 퍼포먼스를 했더니 일주일 만에 김재철 사장이 사표를 내더라. 오늘부터 카운팅해 보자."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가 16일 낮 12시 30분 광화문 방통위 앞에서 최시중 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벌이며 한 말이다. 정작 최 위원장은 이 시각 강원도 양구 군부대를 방문하느라 자리를 비워 수모는 면했다. 하지만 1시간 뒤 같은 자리에서 케이블TV업계 대표들이 KBS2 송출 중단을 선언하는 바람에 최 위원장은 위급한 상황에 자리를 비웠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탁현민에 '퍽' 당하고 케이블업계에 뺨 맞은 정권 실세

최시중 위원장은 요즘 되는 일이 없다. 이날도 양구에서 돌아오자마자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해 당일 오후 8시까지 KBS2를 다시 내보내라며 과징금과 영업정지까지 내걸고 압박했지만 케이블업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명박 멘토'로 불리며 현 정부 실세 중에 실세로 군림한 '최방통대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최 위원장은 이미 두 정씨 때문에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에게 억대 금품을 수뢰한 혐의를 받고 해외에 도피 중인 '최시중 양아들' 정아무개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과, 지난 12일 대법원에서 배임 혐의 관련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정연주 전 KBS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정 전 사장은 대법원 판결 직후 "최시중은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일갈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 2008년 여름 KBS 이사회와 검찰, 감사원 등 사정기관을 총동원해 정 전 사장을 KBS에서 강제로 내몬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 본인도 국회 인사청문회 등에서 정 전 사장에게 무죄가 확정되면 "적절한 책임을 지겠다"고 두 차례나 공언했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정작 확정 판결 뒤인 지난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법적, 행정적인 책임이 있다면 지겠지만 진퇴 영역까지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이 일로 자진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대법원에서까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가운데, 13일 오전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축하를 보낸다"면서도 "무죄가 확정될 경우 책임을 지겠다"고 한 약속에 대한 이춘석 민주통합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법률적으로, 행정적으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 최시중, 정연주에겐 '미안'하지만 사퇴는 '거부'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대법원에서까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가운데, 13일 오전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축하를 보낸다"면서도 "무죄가 확정될 경우 책임을 지겠다"고 한 약속에 대한 이춘석 민주통합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법률적으로, 행정적으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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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씨가 결정타... 여권-방통위 내부에서도 '용퇴론'    

최시중 사퇴 요구가 어제오늘 나온 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주로 야당이나 언론시민단체에서 사퇴를 요구했지만 최근엔 여권 일부와 방통위 내부에서도 '용퇴론'이 슬슬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보도처럼 정 전 정책보좌역이 조만간 귀국해 검찰 수사를 받는다 해도 양쪽 당사자가 모두 부인하는 상황에서 검찰이 구체적인 로비 실체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최 위원장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밝히기는 더 어렵겠지만 수사 결과에 따라 최 위원장도 도의적,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BS 이사 선임 문제뿐 아니라 SK텔레콤 주파수 배정, CJ 온미디어 인수, 제4이동통신 선정 과정 등 업계 이권이 걸린 방통위 의결 사안에서 로비 의혹이 줄줄이 불거지고 있는 것도 최 위원장에겐 큰 부담이다.

방통위 한 고위 간부는 "방통위가 여야 합의제 기구이기에 망정이지 독임제 기구였으면 전결권을 가진 장차관이 모두 책임지고 물러났을 일"이라고 밝혔다. 방통위 내부에서 '용퇴론'이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차기 정부에서 방통위 존폐 자체가 불투명해지자 '최시중 책임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최근 일부 정치권과 통신업계에선 'ICT(정보통신기술) 컨트롤 타워 부재'를 내세워 '정보미디어부' 신설과 방통위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 방통위에서 위원회 기능만 따로 떼어내 사후 규제만 담당하는 합의제 기구를 만들고, 방송통신 진흥이나 사전 규제 업무는 과거 정보통신부 같은 장관 독임제 기구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통합민주당 등 야권은 물론이고 이병기 전 방통위 상임위원도 참여하고 있는 박근혜 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에서도 제기하고 있어 차기 정부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방통위에선 '인터넷 주민번호 사용 금지', '액티브엑스 대체 유도' 등 나름 의미 있는 방송통신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큰 사건들'에 가려 빛을 못 본다며 하소연한다. 앞서 방통위 고위 간부는 "조직이 작기 때문에 실무자들의 업무 투명성은 독임제 때보다 훨씬 개선됐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통위가 미디어 관련법 개정과 종편 선정 과정에서 합의제 정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사실상 '최시중 독임체제'로 4년째 이어오면서 방통위의 장점까지 희석되고 있다.

당장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 정부로서도 최 위원장 거취 문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 위원장 거취 자체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로 커졌기 때문이다.

방통위 한 고위 관계자는 "평소 최 위원장 성격으로 봤을 때 이미 청와대에서 요청하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청와대로선 당장 최 위원장을 경질할 경우 후임자 결정이나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야권의 공격을 받을 수 있어 4월 총선 뒤 대폭 개각 때 함께 교체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과속 못하게 막아 달라"... 측근에 조기 사퇴 뜻 밝히기도

아직 임기를 2년여 남겨두고 있지만 길어야 내년 2월까지 유지될 방통위원장직에 최 위원장이 목을 맬 이유도 없다. 최 위원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사석에서 조기 사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해 측근들을 놀라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8일 방통위 출입기자 송년회 자리에서도 최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여러분은 30, 40대지만 (70대인) 내가 과속하면 80, 90km다"라면서 "과속하지 않게 여러분이 브레이크를 걸어달라"고 당부했다.

연일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국회 일정에 몹시 지친 심경을 밝힌 것이지만 '양아들' 수사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양아들 게이트' 보도가 시작된 건 올해 3일부터였지만 또 다른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보도 전 주에 한 측근이 정씨 수뢰 혐의 사실을 파악해 최 위원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최 위원장이 정씨에게 돈을 전달받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수뢰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젠 최시중 위원장은 현 정부뿐 아니라 방통위 조직에서조차 '계륵'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1-2기 방통위원장 연임, 재임기간 4년의 최장기 국무위원이란 명예가 채 1년을 넘기지 못한 것이다.

깨끗하게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어도 자신의 사퇴가 곧 양아들 게이트와 정연주 사퇴 압박에 관한 책임을 인정하는 걸로 비칠 수 있어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가만히 자리를 지키기도 애매모호한 지금 처지야말로 최 위원장의 힘든 말로를 예고하는 듯하다.


태그:#최시중, #정연주, #방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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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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