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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에 해님이 얼굴을 내밀면 질매섬 갯벌에는 생기가 돈다. 달리기 선수 달랑게, 욕심내어 많이 먹으면 배탈 나는 대수리, 민물을 좋아해 갯고랑 언저리에 사는 농게, 조가비 빛깔이 까만 가무락 조개, 만지면 노린내가 나는 갯강구가 있다.

 

질매섬 갯벌은 고향에 있는 갯벌 고향 이름이 '질매섬'이라 질매섬 갯벌이라 부른다. 아이들과 함께 들릴 때마다. 갯벌을 찾아 달랑게, 대수리, 농게, 조가비를 동무 삼아 놀았지만 콘크리트로 방파제를 만든 이후 이 놈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문득, 2009년 여름방학 당시 아이들과 함께 갔던 갯벌의 풍경이 떠오른다.

 

"아빠, 요즘은 왜 농게, 조가비잡이 안가요?"

"응. 없어!"

"없다구요? 왜 없어요?"

"방파제라는 게 만들어진 후에 농게, 조가비, 대수리도 없어졌다고 하더라."

 

아이들 얼굴은 실망으로 가득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에 갯벌을 묻히면서 농게 잡는 재미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향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갯벌에서 잡을 수 있는 조개가 있는지 물었다.

 

"요즘은 갯벌에서 농게, 가무락 조개 따위 잡을 수 있어?"

"별로 없어. 바지락은 있을까?"

"바지락이면 어때? 아이들 조개 잡겠다고 난리다."

"그럼 오세요."

 

바지락잡이 간다는 말에 아이들은 좋아했다. 통통배를 타고 1분만 가면 갯벌에 갈 수 있었다. 통통배 타는 재미와 바지락잡이의 재미가 함께 어울리니 신날 수밖에. 요즘 아이들이 통통배를 구경이나 해 봤을까?

 

"아빠 통통배예요. 통통배."

"너희들 통통배 처음이구나. 아빠는 옛날이 돛단배도 탔다."

"돛단배까지요?"

"그래.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돛단배를 갈 수 없었다. 오늘 바지락 누가 많이 캐는지 내기 한다. 인헌, 서헌, 체헌이도, 그래 하경, 예경도 다 같이. 알겠지?"

 

할머니와 부부, 아이들 셋과 조카 셋, 삼촌에, 장모님까지 바지락을 캐기 위해 질매섬 갯벌에 모였다. 아이들은 호미도 제대로 쥐지 못하면서 바지락을 캐겠다고 나섰다.

 

"너희들 호미 잡을 줄도 모르면서 바지락을 캔다고. 호미 잡는 법부터 먼저 배워야겠다."

"아빠, 그냥 손으로 호미 잡으면 되지 않아요? 무슨 방법이 있어요?"

"그래, 호미 잡는 법이 따로 있지. 그런데, 너희들 바지락이 어디 숨어 있는지 알아? 이 넓은 갯벌에 숨어 있는 곳을 찾을 줄 알아야지."

 

막상 말을 해놓고 보니 나도 바지락을 캐려면 바지락 구멍을 알아야 하는데 솔직히 모르겠다. 바지락 캐 본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까마득하기 때문이었다.

 

"아빠 바지락에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세요."

"그냥 갯벌에 난 구멍을 무조건 파면 된다. 바지락은 깊이 있지 않기 때문에 호미로 조금만 파면 된다."

"아빠는 갯벌에 살았다면서 바지락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그럼 삼촌 따라 다니면서 캐면 되잖아? 모래가 섞인 갯벌에 바지락이 많아. 펄만 있는 갯벌에는 많이 없어."

 

정말 무조건 캐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정신이 없다. 하지만 캔 바지락은 알이 너무 작았다. 아무리 커도 엄지 손톱밖에 안 됐다. 어머니께서 한 번씩 가지고 오면 알이 굵어 먹을 만했지만, 손톱만한 바지락으로 국을 끓어 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바지락 씨알이 왜 이리 작아?"

"예. 여름이 비가 오지 않아서 그래요. 진양호에서 민물이 내려 와야 하는데 물이 한 번도 안 내려왔어요."

"민물하고 바지락하고 무슨 관계인데?"

 

동생은 참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갯벌에서 자란 사람이 민물하고 바지락이 자라는데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냐는 투다.

 

"바지락은 민물을 한 번씩 먹어야 해요. 플랑크톤과 온갖 미생물을 민물에서 공급받잖아요? 민물이 내려오지 않으니 작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 나는 몰랐는데. 한 번씩 민물이 내려 바지락도 잘 되니 적당한 것도 좋은 것이지."

"아빠!"

 

큰 아이다.

 

"왜?"

"바지락 잡았어요. 바지락. 재미있어요. 서헌이, 체헌이, 하경이, 예경이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어요!"

"나중에 캘 수 있겠지. 바지락 캐니 기분 좋지?"

"아빠! 동죽이예요. 동죽!"

"아빠는 가리맛 조개 잡았다."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호미를 들고 갯벌을 팠더니 손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다. 씨알이 작아 한참 캤는데도 겨우 반 바구니밖에 되지 않았다. 장모님과 동생은 한 바구니를 캤다.

 

"장모님도 바지락 캐보셨어요? 저 보다 많이 캐셨네요."

"자네 보다야 낫지. 처녀 때 바지락 많이 캤지."

"올 추석 바지락 걱정은 안 하겠네요."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 남는 것도 없네. 나만 먹으면 되나. 이웃과 나눠 먹어야지."

 

아내에게 장모님보다도 적게 캤다는 핀잔을 들었지만, 다섯 가족 몇 끼 국물거리는 충분했다. 마트나 시장에서 사는 바지락과 비교할 수 없는 국물 맛을 내는 질매섬 바지락 맛을 생각하니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면서 바지락만 가득 차있는 바구니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옛날에는 개불, 개맛, 보말고둥, 백합, 살조개, 피조개도 심심치 않게 잡았는데, 이제는 구경하기도 힘들다. 바지락을 한솥 넣어 끓였다. 씨알이 작았지만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딸 아이는 먹지 못하는 것이 없다.

 

"아빠, 국물이 정말 맛있어요?"

"마트에서 사는 바지락과는 다르지."

"응. 다음에도 바지락 캐러 갈 수 있어요?"

"그래 다음에도 가자."

 

그때 약속은 했지만 바지락, 개맛, 동죽을 앞으로 캘 수 있을까? 방파제 때문에 내 고향 갯벌을 점점 죽어가고 있다. 그러나 포기는 아직 이르다. 게가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 고향 갯벌 게들이 살아움직이는 모습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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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갯벌, #바지락, #갯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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