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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대의 가격표, 한우불고기 100그램, 1890원
 판매대의 가격표, 한우불고기 100그램, 1890원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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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14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 노인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주말인 14일 오후 3시경, 날씨가 꽤 쌀쌀했다. 농협마크가 그려진 차량 앞마다 길게 늘어선 줄, 어떤 노인은 잠깐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선다. 너무 오랫동안 서있어서 다리가 아픈 것이다. 몇 시간이나 기다렸느냐고 물으니 여섯 시간이 지났다고 한다. 그래도 줄에서 벗어나는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비싸서 맛보기 어렵던 진짜 한우고기 맛 좀 보려고요."

멀리 불광동에서 왔다는 노인의 말이다. 추운 날씨 속에 기나긴 시간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노인들, 요즘 한창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한우고기를 사기 위해 모여든 노인들이었다. 주말이지만 젊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차량 앞으로 다가가 고기를 사들고 차량 판매대에서 내려오는 노인을 만났다.

7시간을 기다려 한우고기를 산 할머니
 7시간을 기다려 한우고기를 산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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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드디어 샀네요, 면목동에서 온 노인
 나도 드디어 샀네요, 면목동에서 온 노인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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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창피하게, 사진 찍지마, 7시간이나 기다려서 이거 산 거여."

노인이 손에 든 비닐 봉투를 들어올린다. 노인은 불고기와 국거리용 쇠고기를 5킬로그램 샀다고 했다. 값이 시중가보다 정말 싸냐고 묻자 훨씬 싸단다. 그리고 여기서 사는 쇠고기는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한우고기일 것 같아 샀다고 한다. 정육점이나 대형매장이나 어디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없지 않느냐고 한다.

판매 차량에 가까이 접근한 줄에서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은 곧 차례가 될 것 같아서인지  표정이 밝아 보인다. 오랜 기다림에 지쳤을 것 같은데 참 대단한 인내심이다. 아무리 한우고기라지만 추운 날씨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노인들의 말은 달랐다.

구미칠곡축협 차량 앞에 늘어선 노인들
 구미칠곡축협 차량 앞에 늘어선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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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너무 많네, 나도 과연 고기를 살 수 있을까?
 사람들이 너무 많네, 나도 과연 고기를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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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값 폭락이라고 난리 났지만 음식점이나 정육점에서 한우고기 값은 말도 아니게 너무 비싸잖아요? 곧 설도 다가오고, 이런 기회에 맛보기 힘든 한우고기 한 번 먹어보려니 참 너무 힘드네요."
"우리 같이 돈벌이 못하는 늙은이들이 어디 비싼 음식점에서 한우고기 한 번인들 맛볼 수 있나요? 더구나 확실히 한우고긴지 믿을 수도 없고."
"그저 불쌍한 건 소 키우는 농민들과 한우고기 한 번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우리네 같은 서민들이지..."

노인들의 푸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찬바람 부는 광장에서 몇 시간을 줄서서 기다린 서글픔도 담겨 있는 말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몇몇 노인은 어제도 왔었는데 고기를 사지 못하고 번호표만 받아들고 갔다가 오늘 다시 왔다고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고기를 사들고 내려오는 창신동 할머니
 오랜 기다림 끝에 고기를 사들고 내려오는 창신동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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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차량 앞에 와글와글 모여든 노인들
 판매차량 앞에 와글와글 모여든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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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고 가격도 싼 한우고기 직거래장터, 18~19일 과천에서 또 열릴 예정

"시중가격도 여기랑 같았으면 이런 고생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소 값은 엄청 떨어졌다는데 한우고기는 왜 그리 비싼지 몰라, 유통구존지 뭔지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는데..."
"맞아요, 소문 들어보니까 축산농가들 사료 값도 안 나온다고 소를 굶어죽이기까지 하던 걸,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70대 초반의 친구로 보이는 노인 둘이 혀를 끌끌 찬다. 축산농민들의 눈물어린 땀과 정성으로 길러진 우리 한우고기 판매는 동해삼척, 홍천, 구미칠곡, 나주, 논산계룡 등 5개 지역축협이 참여한 '설맞이 한우 직거래장터'로서 모처럼 한우고기를 맛보려는 노인들의 긴 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13일(금)부터 14일(토)까지 이틀 동안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의 동남쪽에 마련된 차량부스에서 판매되었다.

6시간을 기다렸다는 길게 늘어선 줄,
 6시간을 기다렸다는 길게 늘어선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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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되어 판매대에서 한우고기를 사는 노인들
 순서가 되어 판매대에서 한우고기를 사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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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터는 최근 한우가격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축산농가에 실질적이고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서울시에서 제안해 마련됐다. 축산농가와 시민들의 직거래인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한우고기를 구입할 수 있어 전통명절인 설을 앞둔 서민들의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한우고기 가격은 시중에서 100그램에 3114원 하는 1등급 한우 불고기를 39퍼센트 저렴한 1890원에, 100그램에 5838원 하는 1등급 한우 등심을 23퍼센트 저렴한 45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 이틀 동안의 직거래 장터에서는 한우고기를 구입하려는 시민들의 수요를 다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주축협 판매차량 앞에 늘어선 노인들
 나주축협 판매차량 앞에 늘어선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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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번호표를 소지 하지 않고 줄을 서있는 시민들께서는 오늘 한우고기를 구입할 수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셨다가 오는 18일과 19일 과천 경마장에서 다시 열리는 직거래 장터를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주최 측에서 알리는 안내방송이 찬바람 부는 서울광장에 몇 번이고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다. 뒤늦게 소문을 듣고 이날 처음 이곳을 찾았다는 노인들 몇이 방송을 듣고 줄에서 빠져나온다. 벌써 두 시간이나 기다렸다는 노인들은 몹시 아쉬운 표정이었다. 노인들은 어쩌면 18~19일의 과천 한우고기 직거래장터를 다시 찾을 것이다.


태그:#한우고기, #서울광장, #노인들, #직거래장터, #축산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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