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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눈에 비친 공자> 겉표지
 <노자의 눈에 비친 공자> 겉표지
ⓒ 역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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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의 이도 식으로 표현하자면 '세상이 지랄'같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의원의 비서가 선거관리위원회의 누리집을 디도스(DDoS) 공격하고(문제를 처음 제기한 <나는 꼼수다>에서는 '디도스 공격은 들러리일 뿐이고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당의 전당대회는 돈봉투로 오염됐으며, 가장 순수해야 할 학교에는 조폭 수준의 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삶은 또 얼마나 팍팍한가. 치솟는 물가와 전셋값은 살벌하기 그지없고, 88만 원 세대의 비애는 '거마 대학생'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인해 살갑던 동네 가게들이 문 닫은 자리에는 애꿎은 전단만이 나뒹굴고 있다.

거리로 나서면 무질서가 횡행한다. 신호무시, 불법 유턴(U턴), 불법 좌회전은 예삿일이고, 차에 질세라 아무데서나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과 아랑곳없이 거리에 침을 뱉고 쓰레기를 버리는 무개념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디를 둘러봐도 무엇 하나 정상적인 것이 없다. 보고 있노라면 멀미가 날 지경이다. 마치 '이 세상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식이다. 위를 보나 아래를 보나 어지럽고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이런 답답한 마음에 손에 잡은 책은 김규종 경북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의 <노자의 눈에 비친 공자>(역락 펴냄)였다.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기를 살았던 공자와 노자라면 지금 시대와 다르다 해도 이런 총체적 난국에서 살아가는 데 대한 답을 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일었다. 책을 덮고 난 후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다. 하지만 뭔가 세상에 대한 결의가 생긴다. 세상이 온통 어지럽다고 해도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휘청거리지 않고, 똑바로 살아가리라는 결의.

<노자의 눈에 비친 공자>는 오늘날 이 힘들고 팍팍한 세상에서 노자와 공자가 어떻게 수용되고 이해될 수 있는지를 깊이 있고,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자인 김규종 교수는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교수임에도 인문 고전에 대한 조예가 깊다.

그는 학문의 전당이 아닌 직업 학교화된 오늘날 대학에서 학생들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준비해야 할지를 다룬 <대학생으로 살아남기>를 비롯해, 영화와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 <문학교수, 영화 속으로 들어가다> <기생충이 없었으면 섹스도 없었다> 등을 집필하기도 했다.

<노자의 눈에 비친 공자>는 일반인이 읽고 이해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렵고 버거운 <논어>와 <도덕경>이라는 고전을 인문학자인 저자의 방식대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풍부한 독서를 통해 다져진 지식과 내공으로, 행간에 숨은 뜻은 물론 그것을 확장시켜 현실을 보는 눈을 가지게끔 하는 저자의 공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좋은 통치자와 나쁜 통치자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린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대학강사 박정수씨가 장애인 인권운동 벌금 충당용으로 제작된 쥐그림 티셔츠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 티셔츠는 '김여진과 날리라 외부 세력' 버전과는 다른, '노들 장애인 야학' 버전 쥐그림 티셔츠로 판매 수익은 장애인 인권운동 벌금 충당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린 혐의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대학강사 박정수씨가 장애인 인권운동 벌금 충당용으로 제작된 쥐그림 티셔츠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 티셔츠는 '김여진과 날리라 외부 세력' 버전과는 다른, '노들 장애인 야학' 버전 쥐그림 티셔츠로 판매 수익은 장애인 인권운동 벌금 충당용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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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G20 홍보 포스터에 쥐그림을 그린 대학 강사에게 200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저자와 사람들은 대부분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반응이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했다고 해서 처벌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의 공안부가 수사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노자는 도덕경 제17장에서 "태상(太上), 하지유지(下知有之). 기차(其次), 친이예지(親而譽之). 기차(其次), 외지(畏之). 기차(其次), 모지(侮之). 신부족언(信不足焉), 유불신언(有不信焉). 공성사수(功成事遂), 백성개위아자연(百姓皆謂我自然)"이라 해 지도자와 백성에 관한 혜안이 번뜩이는 글을 남겼다.

최고 단계에서는 백성들이 통치자가 있다는 것만 알고, 그 다음은 친밀함을 느끼고 그 사람을 찬양하며, 그 다음은 두려워하고, 그 다음은 비웃게 되는데 그것은 통치자가 백성들을 믿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도 통치자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가장 좋은 통치는 백성들이 통치자의 존재에 관심을 갖지 않고도 충분히 잘 사는 것이다. 요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가 바로 그런 시대였다. 그다음 단계는 백성들이 통치자를 좋아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이 압제와 억압으로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통치는 백성들이 통치자를 비웃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파렴치함과 부도덕, 허위의식과 부당성으로 무장한 지배자가 도덕성과 사회윤리, 사회정의를 요구한다면 국민들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코웃음을 치거나, 그자의 별명을 부르거나, 손사래를 치거나, 욕을 해대기 십상일 것."(본문 중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해 봐서 잘 안다는 '그분'이 입만 열면 부르짖는 '법치'와 '공정사회'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러니 노자의 구분대로라면 쥐그림만 그려도 공안부가 수사에 나서는 지금 시대는 가장 하급 아니겠는가?

'물'을 물로 보지마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2011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영풍문고 앞에서 열린 '한미FTA 비준 무효 범국민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2011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영풍문고 앞에서 열린 '한미FTA 비준 무효 범국민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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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렇게 어려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흔히 사람을 얕보고 무시할 때 '나를 물로 보지마'라고 하기도 한다. 노자는 왜 하필 물을 주목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도덕경에 나오는 또 다른 말인 '부드럽고 약한 것이 강하고 단단한 것을 이긴다'라는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을 들어 설명한다.

물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약한 존재지만, 물을 이겨낼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 만물을 포용하지만, 그런 까닭에 만물을 파괴할 수 있는 것 또한 물이다. 낙수가 바위를 뚫고, 한 방울의 물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 물은 가장 낮은 곳을 흐르면서도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몇 번의 쓰나미를 보면서 물의 위력은 이미 확인하지 않았는가.

물은 장애물을 만나면 그것을 극복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줄 알며, 자신의 깊은 내면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유유자적한다. 그러니 물처럼 부드럽고, 물처럼 강하게, '꼼수'를 부리지도 않고 참고 기다리며, 때가 오면 기회를 놓치지 않는 물의 본성을 따라가는 삶은 어떤가?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쓴 독일의 희곡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우리는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만 배운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구한 말 조선은 열강들과의 불평등 조약을 통해 이권을 하나씩 둘씩 넘겨주다 결국 주권까지 넘겨준 역사가 있다.

조약을 이끈 자들이 그 대가로 호의호식할 동안 식민지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영화 <마이웨이>의 준식이나 종대를 생각하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그때의 전철을 밟고 있지는 않은가?

사법부의 판사들조차 고개를 흔드는 한미FTA 불평등 조약이 국민들의 반대에도 집권여당의 날치기 처리로 통과되고, 현 정권은 마지막 잔치를 위해 국민 모두의 재산인 철도·공항과 같은 공공재의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

브레히트의 말처럼 우리는 정말 역사 속에서 배운 것이 없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물이 돼야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그동안의 부드럽고 유약했던 물의 모습이 아니라 둑을 허물고 쏟아져 나오는 거친 쓰나미가 돼 국민을 기만하고 무시한 이들에게 준엄한 심판과 위력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노자의 눈에 비친 공자> (김규종 씀 | 역락 | 2011.12 | 8000원)



노자의 눈에 비친 공자

김규종 지음, 역락(2011)


태그:#노자의 눈에 비친 공자, #김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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