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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는 텐트가 있다. 1월 9일, 나는 '희망의 텐트'라 이름 붙여진 이곳에 도착했다. '1일 입주자'가 되기 위해 도착했을 때는 보름을 갓 넘긴 둥근 달이 막 떠오르고 있었다.

희망텐트가 시작된 지는 34일째였고, 나는 19번째 '1일 입주자'였다. 이곳의 노동자들과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에 공장 담벼락에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종이 '퍽탄'을 붙였다. 그리고는 코끼리 코를 하고 19번을 돌았다. 19번째 입주자에 19번 뺑뺑이…. 사람들은 재밌다고 웃고 있었지만, 모두에게 쉽지 않은 숫자가 '19'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그날의 '잔혹함'을 기억한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009년 7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법원삼거리에서 정부의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자 경찰 헬기가 저공비행하며 강한 바람을 일으켜 강제해산 시키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009년 7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법원삼거리에서 정부의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자 경찰 헬기가 저공비행하며 강한 바람을 일으켜 강제해산 시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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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6일, 쌍용자동차 노조와 회사는 대타협을 했다. 그리고 8월 7일 노동자들은 점거 중이던 공장에서 해산 집회를 연 뒤 스스로 걸어 나왔다. 나는 2009년 용산참사 때 벌겋게 타오르던 화염과 경찰 특공대가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 철거민들을 공격하던 순간들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와 함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 "함께 살자"며 옥쇄파업을 할 때의 기억도 선명하다. 하늘에서는 경찰 헬기가 고산성 최루액을 투하하고, 컨테이너 박스를 통해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공장 옥상에서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던 모습. 경찰의 '테이저 건'의 핀이 노동자의 얼굴에 박혔던 모습. 한솥밥을 먹던 노동자들이 구사대로 동원돼 가족대책위 천막을 철거하고, 바리케이드도 철거하고, 쇠파이프로 동료 노동자들을 구타하던 모습들….

국가 폭력과 사적 폭력이 극에 달했던 그 현장, 당시 조현오 경기경찰청장(현 경찰청장)과 박영태 회사 법정관리인이 합작한 그 현장에는 인권이 없었다. 밥, 물, 의약품마저 차단한 채 고립시켜서 놓고 항복을 강요한 그곳에서 인권을 말하는 것은 사치였다.

그 파업의 뒤에 나타났던 결과는 너무도 처참했다. 노조원 64명과 연대투쟁을 한 21명이 구속됐고(현재는 한상균 지부장만 구속 수감 중), 무급 휴직자 462명(현재 461명, 한 명이 죽었다!), 징계 해고자 44명, 징계자 72명, 그리고 희망퇴직자 2405명이 발생했다.

파업 중에, 그리고 파업 뒤 2년 6개월 동안 19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목숨을 끊었다. 노조원과 그 가족들 대부분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때문에 항상 죽음의 그림자를 곁에 두고 살아가는 이들,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을 뿐인데도 억울하게 자존감마저 파괴된 이들에게 필요한 말은 무엇일까?

회사는 1년 뒤 무급 휴직자를 복귀시키겠다는 약속을 위반했고, 파업 노동자들에게 수십억 원의 '손배가압류 폭탄'을 안기고 있다. 또한, 그들은 생계 문제로 2중, 3중의 고통을 강요받고 있다. "파업권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다" "파업을 이유로 민·형사상의 소추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유엔이 권고하고 있다" "이것이 글로벌스탠더드다"라고 아무리 말한들 현실은 너무도 냉혹하기만 하다.

결국 '희망'은 쌍용자동차를 점령할 것이다

 2차 희망텐트 선전 웹자보
 2차 희망텐트 선전 웹자보
ⓒ 금속노조/희망텐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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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들은 절망만 하고 있지 않았다. 절망을 극복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지난해 12월 23일과 24일, 쌍용자동차 정문 앞으로 혹한의 추위에도 수천 명의 인파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이들은 1월 13일과 14일 2차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쌍용자동차 포위의 날'을 열 계획이다. 희망버스에서처럼 그들도 외친다.

"웃으며 끝까지 함께 투쟁!"

나는 하룻밤을 텐트에서 자고 일어나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 옆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한솥밥을 먹던 그들인지라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며 "밥 먹었냐"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인사하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다. 서울로 올라왔을 때, 회사 관리자들이 '1월 12일에 있을 전국동시 다발 시위를 중단하라'며 노조 사무실에서 난리를 치고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희망텐트촌이 커질수록 저들은 '쫄' 것이고, 우리의 희망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희망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그것을 간절히 원하는 이들과 그들과 함께 손잡은 이들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희망은 이처럼 절망의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쌍용자동차가 희망으로 포위되는 날을 넘어 희망으로 점령할 그날이 오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래군님은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쌍용자동차#해고자#박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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