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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바라보는 별빛은 어쩌면 아주 오래 전에 사라진 별일지도 모른다.'

 

이 땅 위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들, 아니 생명이라 부를 수도 없는 돌멩이 같은 것, 먼지 같은 것, 그리고 이름조차 붙지 않은 어떤 것들은 현재라는 시간에 묶여 존재를 강요당하곤 한다. 사실은 존재의 이유조차 모르고 존재하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시작은 결국 끝을 전제로 한다. 소멸을 향한 항해 가운데 몸을 부비면서 또 스치듯 만난 인연들은 그래서 더 애잔하고 절실한 것일까. 가끔은 지나간 과거들이 지금을 살고 있는 현재보다 훨씬 더 또렷하고 선명하게 가슴을 두드리는가 하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들이 슬쩍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넌, 어디쯤 왔니?"

 

사라지는 것들에 몸이 민감해진다. 눈 끝에 닿은 이 풍경들은 어쩔 수 없이 처음이고, 마지막이기에 절실하게, 간절하게 기억이란 창고 속에 더 깊숙이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하고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어느 것 하나 분명하게 붙들지 못한 흔들리는 자아는 사람들의 이러한 욕망이 만들어낸 도구(카메라)를 들고 며칠 째 재래시장을 헤매고 있었다. "넌, 어디까지 왔니?"

 

 

시답잖은 동정이나 연민 따위를 위해 찾는 것은 아니다. 치열하지 않은 삶이 있을까. '세련됐다'는 말로, 때론 '고급스럽다'는 말로 교묘하게 포장하고 구별하고자 하는 문명과 도시가 준 이분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곳, 가장 원시적인 삶의 방식을 목격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 일상을 벗어난 해방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훨씬 더 철저하게 생존하는 현장을 만나기 위해서다. "어디니, 넌?"

 

얼굴과 손등 곳곳엔 까만 저승꽃이 피었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숱을 곱게 빗질하고 새침하게 실핀을 꽂은 할머니는 리어카 가득 싣고 온 생선들을 손질하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질 못한다. 능숙한 손놀림 끝에서 생선들의 배가 갈리고 내장이 발리고 굵은 소금이 착착 올라앉는다.

 

바다에서 떠나온 시간이 오래될수록 고등어들의 눈깔도 힘을 잃어가지만, 누군가의 조촐했을 밥상은 보다 풍성해질 것이다. 할머니는 피 묻는 손으로 잔돈을 건네고 손님들은 싫은 기색 없이 그 비린내 묻은 지폐를 기꺼이 받아든다. 손님들이 뜸할 시간에 쪽잠을 자는 시장 사람들, 그 사이에서 삶의 비린내도 슬며시 잠이 든다. 문득, 내게도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여기야, 난!"

 

무언가를 팔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본의 시장에서 저마다 치열하게 비린내를 풍기며 발버둥 친다. 등이 시퍼렇게 멍들도록 바다 속을 헤엄쳐 다녔을 고등어에게도, 수천 마리, 수만 마리 고등어의 내장을 바르고 소금을 뿌리며 자식들을 건사했을 할머니에게도, 유형과 무형의 어떤 것을 팔기보다 먼저 자신의 양심을 팔며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그들에게도,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수없이 흔들리는 어수룩한 '찍사'에게조차 삶은 참 고단하다.

 

내일은 또, 무엇을 얼마나 팔아야 할까? 생존의 방식에 있어서 가장, 원시적인 이곳 재래시장에 나는 또 묻는다. "어디까지 왔니, 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작가마당' 19호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포토에세이, #대전역, #대전역 깡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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