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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형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기자말>

지난 번에는 우리 학교 부장 선출을 전체 교사가 모인 자리에서 교사들이 의논해서 했다고 했습니다(관련기사 : <"나는 이 부장 맘에 안 들어"... 이래도 됩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지난해에는 두 명의 업무부장이 업무를 전담했다면, 올해는 학급수가 늘어서 부장자리가 열둘이 되는 바람에 여섯 명의 업무부장이 생겼습니다. 나머지 여섯 명은 학년부장자리입니다.

올해 우리 학교는 서울시교육청의 수업전념을 위한 업무경감방침에 따라 담임선생님들은 학교행정업무를 전혀 하지 않고 학습지도와 생활교육에만 전념하게 하기 위해 여섯 명의 업무부장들이 공문과 에듀파인(학교회계시스템) 같은 학교 행정업무를 도맡아 할 생각입니다.

나머지 여섯 명의 학년부장은 각 학년의 교육과정 운영 전반을 책임지고 운영하게 되는데, 각 학년부장은 각 학년 교사들이 의논해서 뽑았습니다.

그동안 학년담임 배정은 교장의 전권

현재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는 학년담임 배정을 교사들이 써낸 1, 2, 3지망을 보고 교장이 합니다. 교사들은 담임 결정이 날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리기만 합니다.

그동안에 제가 겪은 일만 봐도 1, 2, 3지망을 아무리 써내도 제가 희망하는 학년에 배정될 때보다 안 될 때가 더 많았습니다. 아무도 희망하지 않는 6학년을 지망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3학년을 배정받는가 하면, 3학년을 지망할 때는 얼토당토않게 6학년을 배정받기도 하는 등 예측할 수 없게 담임을 배정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이렇게 배정한 이유를 관리자는 학교교육과정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교사들은 잘 압니다. 교장한테 잘못 보인 사람들은 담임 배정할 때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는 사실을요.

지금은 학교마다 인사관리위원회가 있어서 부장과 학년담임 배정원칙을 미리 정해놓지만, 이런 원칙이 없던 옛날에는 교장한테 잘 보인 사람은 수업시간 수가 적고 아이들 다루기가 한결 쉬운 저학년 담임을 주로 하고, 교장한테 밉보인 사람은 고학년 담임교사로 전전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교장한테 잘 보인 사람은 일도 쉬운 일을 주고 교장한테 밉보인 사람은 힘든 일을 배정받는 일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인사원칙이 잘 세워져 있는 요즘에도 여전히 담임을 배정하고 난 뒤 교사들의 불만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교사는 담임 배정에 불만을 품고 학급에 들어가지 않는 일도 있고, 아이들 앞에서 불만을 터뜨리는 교사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많이 학교들이 담임 배정을 일찍하지 않고 새 학년을 시작하는 첫날인 3월 2일에 아이들 앞에서 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학년담임 배정을 교장의 전권으로 보기 때문에 교장이 바뀌는 경우 교장 발령이 날 때까지 기다려서 담임 발령을 내기 때문에 빨라야 2월 말에나 담임 배정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렇게 담임 배정이 늦어지면 1년 학급 운영 준비를 할 시간이 없어서 준비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만나게 되어서,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갑니다(관련기사 : <새 학년 첫 단추를 잘 채우고 싶은데...>).

학년담임 배정을 전체 교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처음에 포스트잇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희망하는 학년에 붙인 다음, 포스트잇을 옮겨가면서 서로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마지막 결정된 것이 아니고 몇 차례 더 조정을 했습니다.
▲ 우리 학교 학년담임 배정 과정 모습 처음에 포스트잇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희망하는 학년에 붙인 다음, 포스트잇을 옮겨가면서 서로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마지막 결정된 것이 아니고 몇 차례 더 조정을 했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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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교장 전권으로 학년담임을 배정하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이 많았던 우리 학교 교사들은 아예 첫 해(2011년)부터 교사들이 학년담임 배정을 스스로 공개적으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담임배정을 하는 방법은 각 학년 자리 숫자를 써 놓고 포스트잇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희망하는 학년 칸에 써 붙이는 것입니다. 처음에 한 번 붙여놓고, 넘치는 학년과 모자라는 학년을 모두 확인한 뒤 다시 자리를 옮기면서 조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작년 첫 해에는 모두가 처음 지원한 교사들이기에 조건이 모두 같아서 담임배정이 쉽게 빨리 끝났습니다. 교사들이 직접 학년담임을 배정하는 것을 처음 경험해 보니 교장이 배정할 때와 크게 다른 점이 배정한 결과에 모두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누가 억지로 가라고 해서 등떠밀려가거나 강제 배정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사들 스스로 담임배정으로 하게 되면 한 해 동안 같이 연구할 사람들이 한 학년에 모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교장이 배정할 때보다 동학년 교사들이 협력과 소통이 잘되는 편이어서 수업연구도 잘 됩니다. 그래서 두 번째 해인 2012년에도 학년담임을 전체 교사회에서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여러 가지 조건과 변수가 많아서 작년보다 시간이 꽤 많이 걸린 편입니다. 작년에는 두 번 만에 결정이 났는데, 이번에는 지난 1년 동안 교사들끼리 서로 잘 알게 되었기에 학년을 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특히 아무것도 몰랐던 첫 해와 달리 두 번째 해에는 그동안 암암리에 알고 있던, 동료들 사이에서 기피하는 교사가 누구인지가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되기도 했는데, 당사자도 힘들었겠지만 지켜보는 사람들도 모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달리 보면, 그동안 뒷말만 무성한 채 드러나지 않았던 엄연한 사실이기에 이런 '드러내기'가 당사자에게는 새로운 깨달음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두 번째로 학년담임을 공개적으로 정하고 보니, 교원평가 동료평가가 여기에서 진짜로 이뤄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익명으로 하는 온라인 교원능력개발평가는 당사자를 변화시킬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들이 공개적으로 학년담임을 배정하는 자리에서 보면 누가 그동안 잘 협력하지 않는지, 소통을 못하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됩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협력하지 않는 교사는 서로 건드리지 않고 피하면서 말도 안하고 숨어 지내면 그만인데, 대부분의 교사들이 협력하고 연구하는 우리 학교 같은 분위기 속에서는 교사 스스로 변하지 않고는 안 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 누구가 뭐라 하지 않아도 교사들은 자신의 부족한 점이 드러나는 순간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늘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꼬리표를 달고 온 교사도 우리 학교에서는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에 자주 가져온 공개 논의 시간을 통해 자신이 다른 교사들과 다른 '아닌' 점이 드러나서 '아닌' 모습을 스스로 깨닫는 기회를 충분히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런 모습이 또 다른 내 모습이 아닌지 교사들은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점검하는 기회를 갖기도 합니다.

교사들이 공개로 학년배정을 하게되면, 교사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보다는 학교교육과정 운영 전체를 생각해서 조정하게 됩니다. 원활한 학교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스스로 좀더 힘든 학년을 택하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남의 탓을 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선택한 학년에 대한 책임감이 그만큼 커집니다.
▲ 머리를 맞대고 학년담임을 서로 조정하는 모습 교사들이 공개로 학년배정을 하게되면, 교사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보다는 학교교육과정 운영 전체를 생각해서 조정하게 됩니다. 원활한 학교 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스스로 좀더 힘든 학년을 택하는 교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남의 탓을 하지 않게 되고, 자신이 선택한 학년에 대한 책임감이 그만큼 커집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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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은 것은 인사원칙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

공개적으로 학년담임을 배정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보다는 학교 전체의 이로움을 위해 솔선해서 '아닌' 학년으로 옮겨 간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분들은 다른 교사들이 다 인정하고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분들은 다른 교사들이 알아주는 마음을 받아서 '아닌' 학년을 잘 이끌어 갈 힘을 충분히 얻습니다.

또 이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이들을 기억하고 있는 다른 교사들은 내년 학년담임 배정 때 누가 그렇게 하자고 따로 원칙을 세우지 않아도 저절로 먼저 그 이들을 배려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교가 전체 교사회에서 학년담임 배정을 하면서 가장 크게 믿은 것은 점수와 숫자로 적어 놓은 인사원칙이 아니라, 교사들이 갖고 있는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하면 못할 일이 없고, 못 풀 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배웠습니다.   

학년담임을 결정한 다음 같은 학년 선생님들이 모여서 의논해서 학년부장을 뽑았습니다. 학년부장을 교장이 배정할 때는 학년부장이 교사들 편보다는 교장의 편을 많이 들게 됩니다. 교장이 지시하는 일을 교사들에게 지시전달하는 일에 급급하게 됩니다.

그러나 서로 마음을 합쳐서 같은 학년교사들이 학년부장을 뽑으면, 교장의 눈치보다 교사들의 마음을 읽어내면서 부장의 역할을 잘 하게 됩니다. 또 교사들은 자신들이 뽑은 부장과 협조를 잘 해서 학년을 함께 협력해서 이끌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전체 교사가 모여서 의논해서 부장과 학년담임을 선출하는 우리 학교에서는 인사원칙은 있지만 인사원칙을 굳이 꺼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전체 교사가 모임 자리에서 서로에게 공평한 기준과 방법을 의논해서 정하고, 스스로 결정한 내용은 우리들 스스로가 또 책임집니다.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에 우리 학교 교사들은 교장이 전권으로 학년담임을 배정할 때보다 더 열심히 합니다.

우리나라 모든 초등학교에서도 우리 학교처럼 부장 선출은 물론이고, 학년담임 배정도 전체 교사가 협의해서 결정하는 것을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침체된 학교와 교육과 교사의 분위기가 이전보다 많이 변할 것이라고 봅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서울강명초등학교, #학교민주주의, #학년담임배정, #혁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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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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