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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공개 반성문을 썼던 정동영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은 "무오류의 정치인은 없다"며 "민주당이 2007년 한미 FTA를 추진했던 데 대한 당 차원의 반성문을 써야 한다"고 밝혔다.
 2010년 공개 반성문을 썼던 정동영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은 "무오류의 정치인은 없다"며 "민주당이 2007년 한미 FTA를 추진했던 데 대한 당 차원의 반성문을 써야 한다"고 밝혔다.
ⓒ 정동영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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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의원이 있었다. 시위현장이었다. 어쩌다 한 번 온 줄 알았다. 한진중공업에서도, 제주 강정마을에서도 그와 마주쳤다. 우연이 계속 되면 필연이라고 그는 계속 현장을 지켰다.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 사고현장에서 원고도 없이 쉬지 않고 중계를 하던 MBC 기자, 정동영과도 겹쳤다.

그가 계속 현장을 지키는 이유가 궁금했다. 2010년 8월 그의 블로그에 올라온 '저는 많이 부족한 후보였습니다'란 제목의 '정동영의 반성문'은 그 속내를 내비쳤다.

돌이켜보건대 저는 국민의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커온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대의 아픔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습니다. (줄임)참여정부가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때에도, 저는 문제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을 걸고 대통령 앞에서 방향 전환을 주장하지도 못했습니다. (줄임) 저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철저히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 부작용을 대비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 전망과 비전을 갖고 있지도 못했습니다. 관료 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어떤 실효성 있는 대안도 내놓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무지했습니다.

구구절절 자신의 정치적 과오를 끄집어냈다. 그와의 인터뷰는 "정치인으로서 공개 반성문을 쓰기 쉽지 않았을 텐데…"로 시작했다. 그는 "용산참사의 불행한 죽음과 2008년 8월 월가의 붕괴를 보면서 내가 시대를 잘못 읽었다고 스스로 지탄했다"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나,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려면 과거에 대한 성찰은 필수적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담대한 진보, 역동적 복지국가"를 얘기했다. 지난해 12월 17일 한미FTA 반대 집회에서 만난 그는 10여 명의 청소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학생인권조례 성소수자 공동행동 소속인 그들은 "민주당이 다수를 점한 서울시의회가 서울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안 대로 통과시키지 않으려고 해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인권침해를 당할 위험에 처해있다"며 울먹이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는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전국이 농성장... 그것이 정권교체 해야 할 이유"

현장의 '듣는 귀'가 된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꿈꾸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2008년 미국 금융위기에 대해 "2007년 대선 당시, 9개월 후 낭떠러지도 보지 못했다"는 말을 많이 했다. 당시 미국 사회의 모습은 어땠나?
"월가가 이끌던 미국의 경제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직접 목격한 후에야, 우리나라를 동아시아 금융허브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 신기루였고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통감했다. 당시 나는 미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시에 머물렀다. 이곳은 금융위기의 여파가 그나마 덜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주택단지가 순식간에 흉가로 변해가더라. 주택을 담보로 무리하게 대출받은 사람들이 집을 빼앗기게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지 않았나?

사람이 살지 않은 집들은 금방 티가 나는데 거기에 더해 사람들이 구리배관, 유리, 문짝들을 훔쳐가면서 멀쩡한 집이 흉가로 변해가는 걸 봤다. 그런데도 그 집들이 팔리지 않으니 가격은 자꾸 내려가고 심지어 1달러짜리 매물들도 많았다. 실은 진짜 1달러는 아니고, 그 집에 걸려 있는 공과금, 대출 등을 다 갚아야 1달러에 살 수 있는 집들이다. 미국은 돈 없는 사람들의 지옥이다. 그런 미국의 길을 따라가는 길이기 때문에 한미FTA를 반대한다."

― 최근 노동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계기와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는다면.
"지금껏 정치를 하면서 정치개혁, 남북문제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의 문제, 특히 노동문제에 대해 역할을 하지 못했다. 복지국가의 핵심은 노동이다. 노동 없는 복지는 실현불가능하다. 그래서 2011년 초 환경노동위로 상임위를 옮기고 현장 속에 있기 위해 노력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 너무나 많은 아픔을 같이 느끼고, 또 그 속에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배우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 물론 한진중공업이다. 35m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목숨 건 투쟁을 한 김진숙 지도위원, 그리고 정리해고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희망버스의 시민들, 모두가 함께 기적을 만들어냈다.

6월 11일, 1차 희망버스 당시 새벽 3시 30분에 들려온 "살다보니 이런 날이 오긴 왔군요. 이런 해방감들이 얼마 만입니까"라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연설은 절창이었다. '할 수 있다면, 저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과,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 기적을 확대시켜 정리해고 체제 종식까지 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또 다른 현장은 한진중공업이 있는 부산 영도구 고신대였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올해 초 16명의 고신대 청소용역 어머니들을 해고한 적이 있다. 88만 원 받던 노동자들에게 85만 원이란 최저임금도 안 되는 조건을 제시하고, 또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한 거다. 직접 방문도 하고 많은 도움도 구해서 결국 91만 원으로 합의를 보고 다시 일하시게 됐다.

전국이 노동문제 농성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정부의 반노동 정책이 이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민주진보세력이 정권을 교체해야 하는 본질적 이유이다."

― 최근 정 의원의 행보에 대해 '좌클릭'이라고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다. 보수언론들은 '민주노동당 정동영'이라고도 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2년 세계대공황의 위기 속에서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노동3권', '사회보장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가 좌파라고 공격을 많이 받았다. 그때 그는 '나는 여러분의 증오를 환영한다'고 연설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금 대한민국에 제일 필요한 건 '담대한 진보', 복지국가의 비전이다. 99%, 아니 99.9%의 평범한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면 지금 당장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것이 바로 복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행복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지도자 바뀌면 새로운 비전 나타나... "서울시 보라"

"2011년 초 환경노동위로 상임위를 옮기고 현장 속에 있기 위해 노력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 너무나 많은 아픔을 같이 느끼고, 또 그 속에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배우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월 23일 쌍용차 희망텐트에 참가한 정동영 의원.
 "2011년 초 환경노동위로 상임위를 옮기고 현장 속에 있기 위해 노력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 너무나 많은 아픔을 같이 느끼고, 또 그 속에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배우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월 23일 쌍용차 희망텐트에 참가한 정동영 의원.
ⓒ 노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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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11일 전당대회가 반대파들의 불미스러운 행동들로 얼룩졌다. 아직 민주당이 구시대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결국 통합을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모였던 5000여 명의 대의원들은 국민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새롭게 출발하는 민주통합당의 강령과 정책을 주목해달라. 한미FTA 전면 재검토, 원전정책 재검토, 종편 재검토,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 선명한 진보적 노선을 채택하고 있다. 내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의 양 날개로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비전과 지향이 오롯이 담겨 있어 보람을 느낀다. 이러한 가치와 비전 중심의 통합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민참여형 상향식 민주주의를 통한 지도부 선출 시스템은 한 차원 발전된 정치개혁의 모델이 될 것이다."

― 민주통합당 내에는 '선명한 진보' 노선을 달가워하지 않는 당원과 의원들도 있을 텐데 이들을 어떻게 견인할 생각인가.
"당원들은 진보에 우호적이다. 먹고살기가 팍팍하니까. 근본적인 변화를 원한다. 다만 의원들 중에는 중도나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의원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지지자와 당원들에 의해 강제될 것이다. 그래서 새로 선출되는 지도부는 민주통합당의 강령을 충실히 실천할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 이후 과정에서도 여러 난관이 예상된다. 당권파들의 견제를 뚫고 시민들의 자유로운 참여가 보장될 수 있을까?
"당 지도부를 포함한 모든 경선을 대의원 30%, 일반 시민 70%의 비중으로 치르기로 합의했다. 당 안에서 이해관계에 얽매이다 보면 시민들이 마음을 주지 않는다. 지난 서울시장 후보 경선이 있었던 10월 3일 장충체육관에 온 젊은 청년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부들이 바로 이 시대의 상징이자 흐름이다. 더 큰 민주당은 국민들의 염원을 받아 안아갈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대로 당을 변화시켜갈 거다.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어떠한 역할이든 할 생각이다."

―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의 당선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보가 기존 정치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보나.
"서울시장선거 출구조사에서 30대의 76%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다. 깜짝 놀랄 만한 지지율이다. 아마 해방 이후 서울에서 이런 지지율이 나온 적이 거의 없었을 게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30대의 좌절, 상처, 분노가 선거결과로 나타났다는 거다.

30대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라고 하지 않나. 30대가 직장이 불안해 결혼도 못하고, 애를 낳더라도 엄청난 비용이 들고, 노후도 막막해 좌절하고 있는 거다. 경쟁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다. 지금 GDP가 부족해서 불안한 게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웠던 747공약('7% 경제성장, 4만불 소득, 세계 7위 경제 이룩')이 마지막 GDP신화라고 본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새로운 비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그건 바로 '돈, 돈, 돈'이 아닌 '사람, 사람, 사람'의 정치인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후 처음 한 일들이 무상급식 예산처리,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2800여 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이다. 반면 오세훈 시장은 한강르네상스, 세빛둥둥섬, 모피쇼 등에 시민의 혈세를 쏟아부었다. 그렇게 가서는 누가 행복하겠나.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정치인에게 필요한 기본능력이라고 생각한다. 99% 국민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서울시에서 지도자 한 명 바뀌니까 다른 비전의 다른 현실이 나타나지 않나. 그래서 올해 반드시 정권 교체가 돼야 한다."

"2층에 미국법, 1층에 한미FTA, 한국법은 지하에"

― 최근 한미FTA 폐기 운동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미FTA가 '주권 침해'의 문제가 있다고도 했다.
"한미FTA는 단순한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2006년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것은 경제나 무역협정이 아니라 한국의 법과 제도와 관습을 미국식으로 바꾸는 협정이라고 했다. 우리 헌법 119조 2항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재벌과 대기업을 규제하고 취약계층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미FTA 하에서는 한국의 대기업보다도 훨씬 거대한 초국적 자본들이 대한민국의 농민과 자영업자들을 유린하는 것을 정부가 손 놓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이 바로 ISD, 즉 투자자국가소송제도다.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을 위해 시행하는 정책에 대해 다국적 기업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국제분쟁재판소로 제소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자동동의이므로 우리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 제소다. 오죽하면 판사 168명이 문제가 있다며 논의 기구를 구성하자고 했겠나.

이외에도 숱한 독소조항이 있을 뿐 아니라 불평등조약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한미FTA는 행정조치 정도의 수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법위의 법이다. 2층에 미국법이 있고, 1층에 한미FTA가 있으며, 한국법은 지하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나. 그래서 이를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부른다. 명백한 주권침탈이며 매국행위이다. 반드시 무효화할 것이다." 

― 당내 '날치기 FTA 무효화 투쟁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민주당 내에도 다양한 온도차가 있어서 4월 총선에서 야당이 다수를 점하더라도 쉽지 않을 거라는 예견도 있다. 가능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발효절차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미 이 정부가 계획했던 1월 1일 발효는 불가능한 상태다. 한미FTA 발효를 위해서는 양국이 관련 법과 제도를 개정하고 상호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으로도 미국은 4개 이상의 법률을 개정하지 않았다. 한미FTA 협상을 책임진 통상교섭본부는 이런 기초적인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종훈 본부장을 직무유기로 고발한 것이다. 발효절차를 당장 중단하고 검토작업에 들어가야 하고,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를 다시 제기해야 한다.

둘째,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권이 발효절차를 멈추지 않는다면 한미FTA 협정문에 명시된 공동위원회를 통해 재개정 및 부분 폐기를 요구해야 한다. 또한 내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 한미FTA가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를 훼손하는 데 대한 효력정지특별법을 추진하는 거다. 동시에 4월 국회에서 바로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통해 나라를 팔아먹는 한미FTA의 실상에 대해 국민들께 낱낱이 보고하겠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민변과 함께 한미FTA의 위헌심판청구도 준비하고 있다. 한미FTA는 헌법 119조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경제력의 집중과 시장지배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가 규제와 조정을 하라는 건데 한미FTA는 그것을 무력화하지 않나? 우리 헌법을 무력화한다는 이야기다. 충분히 다퉈볼 수 있다.

셋째, 이 또한 관철되지 않는다면 결국 한미FTA 24.5조에 따라 서면으로 파기를 통보하여 180일 이내에 자동폐기되도록 할 수밖에 없다. 한미FTA의 비준은 양국의 국회 의결과 법 개정 등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지만, 한미FTA 협정문상의 폐기 절차는 아주 간단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미FTA 종료를 희망하는 내용을 담은 서면 한 장만 미국 정부에 보내면 그날로부터 180일 후에 자동 종료된다. 폐기에는 국회 동의 절차도 필요 없다.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폐기 절차를 그렇게 간편하게 만든 것인데,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활용할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한미FTA 폐기는 정치세력의 의지의 문제다. 총선, 대선의 승리가 이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국민들이 제2의 을사늑약, 즉 신묘늑약인 한미FTA 폐기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쫄지 말고 무효화 운동에 적극 나서면 얼마든지 폐기가 가능하다.

최근 한미 FTA 문제점을 판사 중 가장 먼저 제기한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12월 2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때론 침묵하는 것이 가장 정치적이고, 불의의 편에 서게 될 때도 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한미FTA에 대한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매국 행위에 대한 방조자로 후손들에게 기억될 수도 있다."

― 내년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집권당이 되기 위해서는 참여정부 시절의 어떤 과오를 넘어야 한다고 보나.
"노무현 정부가 지향했던 남북평화관계, 포용적 사회 등은 계속 이어받아야 할 것이다. 다만 집권 과정에서 빚어졌던 오류와 한계는 극복해야 한다. 대표적인 게 바로 한미FTA다. 민주당이 지금도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를 구별해 설명하려고 하는데 나는 그보다는 '아예 한미FTA 협상에 착수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당 차원의 반성문을 써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무오류의 지도자는 없다. 잘못됐다고 판단할 때, 깨달으면 그때라도 고치는 게 맞다. 과거에 발목 잡혀 있는 당이 공식적으로 반성문을 써야 한다.

이번 대선에 민주진보세력의 누가 나가든 우리는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2013년 체제를 열어가기 위한 국가운영시스템의 대전환을 약속해야 한다. 이는 백낙청 교수께서 처음 사용한 용어인데, 간단히 말하면 밖으로 '평화체제', 안으로 '복지국가'를 의미한다. 이명박 정부 동안 완전히 무너져버린 남과 북의 신뢰관계,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주성을 회복해야 한다. 또한 복지국가는 앞서 강조했듯이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의 양 날개로 재벌개혁을 전면에 세워야 한다. 노동 민주화 역시 핵심 가치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공약의 내용과 함께 실제 집권 시 그 공약을 실행할 수 있는 인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가치 중심의 야권통합과 그에 맞는 '사람'의 발굴이 중요하다."

"정동영을 만든 사람은 아버지,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정치인에게 필요한 기본능력이라고 생각한다. 99% 국민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어야 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정치인에게 필요한 기본능력이라고 생각한다. 99% 국민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어야 한다."
ⓒ 정동영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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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개혁'을 강조했는데, 한국에서 재벌개혁이 필요한 이유와 그를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는 뭘까.
"재벌 대기업이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생활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힘의 과도한 집중은 부패와 비효율을 불러왔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도, 그리고 재벌 대기업 자신에게도 좋지 않다.

재벌 대기업들은 집중된 경제력을 무기로 중소기업, 하청기업을 착취하고 있다. 또한 골목상가에까지 진출해 슈퍼, 빵집 등 동네상권도 망가뜨리고 있다. 재벌 대기업이 만든 상품과 서비스를 구입해줄 사람들의 경제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의 이러한 횡포는 구매력을 잃은 사람들의 복수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재벌 대기업은 산업화 초기 시대의 대출, 독점허용, 세금감면 등의 특혜가 없었다면 지금의 규모와 위상을 가질 수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국민의 세금이었다. 그런데 덩치가 지금처럼 커진 지금, 그것을 개인, 가족의 소유로 하기 위해 편법상속, 소유구조 왜곡을 서슴지 않고 있다.

고작 4%의 지분을 가진 한 집안이 국가 GDP의 22%에 해당하는 매출을 내는 재벌 대기업을 좌지우지 하고, 그 기업에서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모른 체하고 있다. 4%만으로 경영권을 소유한 채 편법상속을 자행하며 '기업의 자유' 운운하는 것은 다른 96%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위 10대 재벌에 한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켜 소유구조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다. 지주회사 규제 강화, 일감 몰아주기 근절, 종업원 대표 이사추천권 보장, 법인-소득세 최고소득 구간 신설 등을 통해 헌법 119조에서 보장하는 경제 민주화를 이뤄내야 한다. 헌법 119조는 경제민주화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를 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 재벌개혁은 헌법 정신이다." 

― 마지막으로 '정치인 정동영'을 만든 세 사람을 꼽는다면.
"중학교 때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 '정진철'이라고 썼다. 아버지다. 지역에서 정치를 하셨던 분인데 어릴 때 여의었지만,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생각의 자유, 행동의 자유를 허락하셨고 늘 나를 자랑스러워해주셨다. 내가 정치를 하는 기본적 심성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아내는 내가 단 세 마디로 두 아들을 키웠다고 한다. '아들 사랑한다, 아들을 믿는다, 아들이 내 아들인게 자랑스럽다.' 기자 생활하면서 아이들하고 같이 있을 시간이 늘 부족했는데, 같이 있을 때면 이 말을 했다. 사실은 아버지가 나한테 들려줬던 얘기들이다. 아버지를 통해 커오면서 자부심을 많이 키웠던 것 같다.

두 번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시다. 40여 명이 모여 MBC 노조를 만들었는데 6개월 뒤 조합원이 1500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진정한 언론의 자유는 노조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하루하루였다. 게다가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대한민국 자체의 붕괴였다. 구조적 변화 없이는 또 다른 삼풍백화점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제안을 하셨다. 내 정치관, 대중관, 통일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빚진 것이다.

마지막은, 사실 부족한 나를 마음 깊이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이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치하는 동안 빛도 있었지만 그림자도 많았다. 시련의 시간에 저의 손을 잡아주신 분들은 제가 정치를 계속 할 수 있게 해주는 힘임과 동시에, 제가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에 대한 민원이 몰려서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정 의원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기쁘다"고 답했다. 지난 12월 17일 보았던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눈물도 잊지 않았다. 서울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했다.

"민주통합당이 진보적 강령을 채택했다. 강령엔 소수자에 대한 인권 보호가 주요하게 들어가 있다. 그 약속의 첫 번째 시험대가 바로 서울학생인권조례다. 강령 따로, 당 따로 있으면 국민이 어떻게 당을 신뢰하겠나?"

그리고 지난해 12월 19일 서울시의회에서 서울학생인권조례안이 통과됐다. 정 의원은 솔직했다.

"사실 서울학생인권조례에 깊이 몰랐다. 하지만 그날 학생들의 아우성을 들었다."

그는 이제 국민이 "아프다"고 하면 그 아픔의 소리를 금방 알아듣는 감수성의 정치를 하고 있었다. 국민이 신음하는 바로 그 현장에서.

덧붙이는 글 | 월간 <노동세상> 1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노동세상이 만난 사람, #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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