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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를 세워 키우는 김양식.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의 김 생산방법이다.
 지주를 세워 키우는 김양식.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의 김 생산방법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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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70가구 가운데 7가구가 김 양식을 합니다. 나머지는 바다에서 바지락을 캐고 돌미역을 채취해서 생계를 꾸려가죠. 저만 잘 먹고 잘 살자고 산을 사용할 순 없잖아요. 나머지 주민이 받을 고통도 당연히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청학리에서 '햇살김'을 생산하고 있는 윤기제(54)씨의 얘기다. 윤 씨가 생산하는 김은 특별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김 양식이 바다에 부류를 띄워 키우는 반면 그의 김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방식으로 김을 키운다. 선조의 오랜 경험과 전통, 그리고 자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윤씨의 김 생산방식은 다르다. 갯벌에 대나무를 박고 그 위에 김 포자가 붙은 발을 매달아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키운다. 한때 김의 고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완도도 이 방식은 유물이 된 지 오래다. 그가 사는 청학마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 됐다.

지주식 김양식장에 선 윤기제씨. 완도군 고금도에 살고 있다.
 지주식 김양식장에 선 윤기제씨. 완도군 고금도에 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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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식 김양식은 바다에 지주를 세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민들이 양식어장에 지주를 세우고 있다.
 지주식 김양식은 바다에 지주를 세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민들이 양식어장에 지주를 세우고 있다.
ⓒ 윤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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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롭고 힘든 탓이다. 무엇보다 10m가 넘는 지주(대나무) 수천 개를 바다에 세우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한 줄로 정연하게 세우는 일은 몸으로 바다를 알지 못하면 안 된다. 꼬박 한 달여에 걸쳐 세운 지주는 양식이 끝나는 3월이면 다시 빼내야 한다. 그 일도 만만치 않다.

한 해 쓴 지주는 바다 생물이 구멍을 내버려 더는 쓸 수도 없다. 이를 내버려뒀을 경우 바다쓰레기로 변해 바다가 황폐해질 수 있다. 대부분의 김 양식 어가들이 부류식(바다 위에 띄우는 방식)을 택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친환경 소재를 대나무에 코팅을 입힌 지주가 개발돼 7∼8년은 한 시름 놓게 됐다.

이렇게 지주에 매달린 김은 썰물 때면 햇볕을 받아 마른다. 밀물이 들면 다시 바닷물 속으로 잠긴다. 밤이면 얼고 낮이면 다시 녹는다. 그렇게 하루 2번, 8시간씩 40일간 반복한다. 자연스럽게 광합성 작용을 하면서 건강한 김만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김은 점점 거칠어진다. 색깔도 검은색에서 갈색으로 갈색에서 다시 노란색으로 변해간다. 이를 모르는 소비자들은 "왜 똑같은 김을 보내주지 않느냐"고 항의를 한다. 마음이 아플 따름이다.

본격적인 김양식 작업을 하기에 앞서 고금도 주민들이 김양식용 발을 다듬고 있다.
 본격적인 김양식 작업을 하기에 앞서 고금도 주민들이 김양식용 발을 다듬고 있다.
ⓒ 윤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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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 주민들이 전통방식으로 키운 김을 채취하고 있다.
 고금도 주민들이 전통방식으로 키운 김을 채취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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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윤씨는 마지막에 채취한 김은 소비자에게 팔지 않는다. 울며 겨자 먹기로 가공공장에 보낸다. 키우기도 힘이 든다. 손이 많이 가고 수확량도 적다. 생육 기간도 길어 1년에 기껏 3번, 많게는 4번 채취하는 게 고작이다.

그럼에도 윤씨가 이 방식만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방식이 우리 대에서 끊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나중에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환경과 이웃에 대한 애정도 깃들어 있다. 장흥 무산김을 제외한 보통 부류식 김 양식에는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산을 쓴다. 여기에 사용되는 산은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결국에는 바다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렇게 생산한 김은 산을 사용한 김에 비해 윤기가 없어 볼품이 떨어지는 흠이 있다. 하지만 밀도있게 자라 감칠맛과 깔금한 맛이 일품이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더하고 달착지근하면서도 바다 냄새가 솔솔 묻어난다. 맛과 향에서 따라올 김이 없다.

전통방식의 지주식 김양식장. 우리 선조들의 오랜 경험과 전통 그리고 자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김양식 방법이다.
 전통방식의 지주식 김양식장. 우리 선조들의 오랜 경험과 전통 그리고 자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김양식 방법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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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를 세워 옛 방식대로 키운 김. 언뜻 보기에 볼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맛은 일품이다.
 지주를 세워 옛 방식대로 키운 김. 언뜻 보기에 볼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맛은 일품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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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사무소, 해양수산청, 국립수산과학원도 무공해 '웰빙식품'으로 인정했다.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지사. 값은 일반 김의 2배에 달하지만 채취하기가 바쁘게 팔려나간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쉽사리 구할 수 없을 정도다. 전량 직거래로 팔려나간다. 중간 상인은 끼어들 틈도 없다.

올해 작황도 좋다. 김발을 좀 더 높이 달아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을 길게 했다. 성장 속도는 느리지만 품질 만큼은 최고다. 이 김은 바다 건너 일본에까지 소개됐다. 일본 NTV는 '광합성 작용으로 질기고 맛이 풍부해 일본에서는 찾기 어려운 김'이라고 극찬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일본에서 김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김을 잘 먹지 않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바이어들의 현지 실사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온 결과다.

마을 종합개발사업 추진위원장을 맞고 있는 윤씨는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김양식장, 양식방법 등 모든 생산과정을 공개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옆 마을까지 직거래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통방식으로 키운 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바다 내음도 묻어난다.
 전통방식으로 키운 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바다 내음도 묻어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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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 주민들이 지주를 세워 옛 방식대로 키운 김을 채취하고 있다.
 고금도 주민들이 지주를 세워 옛 방식대로 키운 김을 채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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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재래김, #전통김, #지주식김양식, #햇살김, #윤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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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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