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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뒷자리에서 저와 한참을 놀다가, 잠이 왔는지 칭얼대던 딸아이(15개월)는 엄마가 뒷자리로 오자 바로 잠들었습니다. 저는 운전대를 잡고 모두들 달콤한 낮잠에 빠진 틈을 타서 혼자만의 사색에 빠졌지요.

1월 1일, 지금 저희 가족은 양양을 지나 강릉을 거쳐 동해 '추암'까지 갈 겁니다. 생각해보니 정말 오랜만에 그곳에 가는군요. 2007년 12월 말,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삼척까지 와서 다시 택시를 타고 추암에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당시 저는 '추암은 다 좋은데, 대중교통으로 접근하기는 아직 어렵다'는 생각을 했었죠.

잠시 옛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차는 7번 국도를 타고 강릉을 지나갑니다. 그리고 예전에 동해고속도로로 이용되던 도로에 들어섰지요. 길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80km였던 제한 속도가 60km로 낮아진 것 빼고는 그대로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좀 웃기지요. 그저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이름만 바뀌었는데, 똑같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제한 속도가 바뀌었으니 말이죠. 아! 물론, 현행 도로교통법 상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림 같은 풍경입니다.
 정말 그림 같은 풍경입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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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다와 나란히 철로가 놓여진 구간을 지나갑니다. 때마침, 강릉으로 가고 있는 기차와 마주쳤습니다. 이런 풍경을 보면,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순식간에 지나쳐가는 그림 같은 경치를 저 혼자만 보고 있으니 말이죠. 그렇다고 곤히 잠든 아이들과 아내를 깨웠다가는 난리가 나죠. 바로 그 순간, 차안에 감돌던 고요한 평화는 깨지니까요.

자! 이제 동해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달리면, 동해의 끝자락, 그리고 삼척의 시작에 있는 추암에 닿습니다. 양양에서부터 여기까지 다들 한숨 푹 잤으니, 이제 깨워야겠습니다. 저는 추암으로 들어가는 신호등에 멈춰 서서, 가족의 단잠을 깨웠습니다. 아마도 1월 1일 이곳은 수많은 방문객 때문에 큰 홍역을 치렀을 것입니다. 일출 명소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일출을 보기위해 모였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후에 찾은 추암해수욕장
 일출을 보기위해 모였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후에 찾은 추암해수욕장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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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곳 추암에 왔을 때는 너울성 파도가 일렁이던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 이렇게 잔잔한 파도를 보니 조금은 낯설군요. 잿빛하늘과 너울, 그리고 차가운 바람대신 오늘은 그냥 흐린 하늘과 일반적인 파도, 그리고 견딜만한 바람이 저희를 맞습니다. 다행이죠. 제 어린 딸아이와 함께 해변을 거닐고, 작은 동산에 올라 촛대바위를 바라볼 수 있으니 말이죠.

추암 해수욕장. 잔잔한 파도가 오히려 낯설기만 합니다.
 추암 해수욕장. 잔잔한 파도가 오히려 낯설기만 합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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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바위를 보기위해 해수욕장을 지나, 마을 동산에 올랐습니다. 예전과 달리 동산에는 올라가는 길이 생겼더군요. 제가 올 때마다, 이것저것 조금씩 바뀌던데…. 아마도 이젠 더 이상 바뀌지는 않겠죠. 아름답게 잘 정비했으니, 사실 더 손댈 것은 없을 듯합니다.

딸아이와 마을 동산을 오르는 중입니다.
 딸아이와 마을 동산을 오르는 중입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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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바위 모습이 보이네요. 항상 저 자리에서 변함없이 저희를 맞고 있습니다.
 형제 바위 모습이 보이네요. 항상 저 자리에서 변함없이 저희를 맞고 있습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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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이곳 일출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이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촛대바위 모습을 보니, 살짝 흥분되더군요. 그래서 오늘 이곳에 더 오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추암은 제게 추억이 아주 많은 곳이거든요.

그중에서도 힘들어하던 친구네 가족과 함께 왔던 기억이 제일 가슴에 남습니다. 사는 게 힘들다고 푸념하는 친구와 그 가족을 제 차에 다 태우고 이곳에 와서 오랜만에 바다를 보여준 날이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잘 살고 있다니 한시름 놓고 있습니다.

일출 명소인 촛대바위 모습도 그대로입니다.
 일출 명소인 촛대바위 모습도 그대로입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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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작품은 작품이지요?
 아무리 봐도 작품은 작품이지요?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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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바위에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옛날, 촛대바위 옆에는 2개의 바위가 더 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의 촛대바위는 남편이고 나머지 둘은 그의 본처와 소실을 상징하는 바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바위는 벼락을 맞아 없어졌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자세한 내막은 다음과 같습니다.

옛날 마을에 한 남자가 본처를 놔두고 새로 소실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두 여인 사이에 질투가 극에 달해 나중엔 하늘이 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벼락'이라는 징벌을 내려, 두 여인이 죽고 사내만 덜렁 남았습니다. 그 남자 바위가 바로 '촛대바위'입니다. 이 전설은 남성에게는 조강지처에 대한 사랑을, 여성에게는 현모양처의 됨됨이를 일깨워준다고 합니다.

북평 해암정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에, 볼 것이 많습니다.
 북평 해암정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에, 볼 것이 많습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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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희는 북평 해암정이 있는 곳으로 내려갈 겁니다. 그곳으로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 역시 기가 막히거든요. 가히 동해 남부의 해금강이라고 불릴 만한 경치입니다.

기암괴석이 만들어낸 작품!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기암괴석이 만들어낸 작품!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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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 때, 이곳을 찾은 체찰사 한명회는 <능파대기(凌波臺記)>에서 추암의 절경에 취해 "이곳을 속되게 '추암'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슨 이유인고, 이제나마 자년에 대해 부끄럼이 없게 '능파대'라고 그 이름을 고치노라"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능파는 '물결 위를 가볍게 걸어 다닌다'는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일컫습니다.

'동해 남부의 해금강'이라고도 불립니다.
 '동해 남부의 해금강'이라고도 불립니다.
ⓒ 방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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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 가족은 추암을 쭉 둘러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추암은 겨울에 오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언젠가 여름에 사람들로 북적이던 이곳이 낯설기만 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동해 추암, #기암괴석, #능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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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 이야기, 혹은 여행지의 추억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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