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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검정고시 송년의 밤. 오팔회는 58년생 검정고시 동문을 뜻한다.
 2011년 검정고시 송년의 밤. 오팔회는 58년생 검정고시 동문을 뜻한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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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맥과 인맥도 모자라 교맥까지…. 흡사 조폭처럼 패거리 지어 몰려다니는 구악(舊惡)이 판치는 한국 사회. 이명박 정권은 '고소영'(고려대 출신·소망교회 교인·영남권 출신)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회전문까지 돌려가면서 권력을 독식했다.

4년간의 위세와 패악으로 산천을 초토화시키면서 경제를 말아먹고, 백성들의 피눈물을 쥐어짠 'MB 패거리'들은 마침내 자기편에게조차 돌을 맞으며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듯하다. 마침내 저 패거리가 붕괴하면 또 다른 패거리들이 권력을 먹으려고 달려들 것인데, 이 참혹한 권력투쟁을 누가 막을 것인가?

그래서인지 '구악의 사회'에서 인생 역정을 헤치며 배움의 길을 달려온 검정고시 출신들은 특별하다. 한국 사회에 검정고시 동문들은 160만 명에 이르지만 그들은 패거리 지을 세도 없고, 권력을 쥘 힘도 없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비주류다. 패거리들과 '맞짱' 떠서 이기려면? 그들은 의지와 실력, 도전과 웅전을 가지고 난관을 정면 돌파해야만 한다.

#1. 안희정 충남도지사, 2011 자랑스러운 검정고시인

강운태(광주광역시장) 동문회장이 '2011년 자랑스러운 검정고시 동문'으로 선정된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운태(광주광역시장) 동문회장이 '2011년 자랑스러운 검정고시 동문'으로 선정된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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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나는 검정고시총동문회 송년의 밤에 초대받았다. 4년 전인 2007년 5월에 열린 동문 모임 이야기를 소개한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나는 이날 송년의 밤에서 아름다운 네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번째 주인공은 2011년도 자랑스러운 검정고시 동문으로 선정된 안희정(46) 충남도지사다.

안희정 지사는 자신이 64회 소속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64년도에 검정고시에 합격했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검정고시는 만학도가 많기 때문에 검정고시 합격년도가 아닌 출생년도를 기준으로 동문이 된다. 만약 합격년도를 기준으로 기수를 정하면 애어른이 뒤섞이기 때문에 동년배를 중심으로 기수를 정한다.

남대전고에 입학한 안희정은 교과서 대신 사회과학 서적을 책가방에 가지고 다니는 등 일찍이 사회의식에 눈을 떴다. 독재의 총칼에 광주 양민이 학살되고, 민주주의가 유린되는 것을 본 그는 대학운동권 선배와 어울리다 전두환 계엄사령부에 끌려갔다. 고교 생활 6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둔 그는 1982년 검정고시를 거쳐 이듬해인 1983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해 운동권 학생이 됐다. 그리고 패거리 정치에서 이탈한 독보적인 정치인 노무현을 만났다.

안희정 지사는 "지역과 학연의 고질병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검정고시 동문들은 특별한 인연"이라며 "좌절과 일어섬, 실력과 도전, 꿈과 희망을 향해 달려온 검정고시 동문에게 주어지는 상을 받게 돼 부끄러우면서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노무현의 유업을 이은 그는 "학맥과 지역타파에 앞장서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깃발 없는 기수처럼 외롭지만, 구악의 패거리들보다 앞서 달려가 희망의 정치를 피워내겠다는 것이다. 아름답고 당당한 검정고시인인 그를 보는데 문득 가수 조용필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다"는 노랫말이 떠올랐다.

#2. 장애1급·남편사망·장애인 딸... 그래도 희망은 있다

강운태 회장이 장학금 수혜자인 강은옥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운태 회장이 장학금 수혜자인 강은옥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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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주인공은 장학금 수혜자인 강은옥(48)씨다. 이름만큼 예쁜 눈빛을 가진 그녀는 구루병(비타민D 결핍증)을 앓은 1급 장애인이다.

그녀는 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다. 친구들처럼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난과 장애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녀는 마흔 살에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무료 야학인 전주 주부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그녀는 눈길과 비바람에 휠체어와 목발이 미끄러져 옷이 엉망이 되면 옷을 갈아입고서라도 야학에 갔다.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9년째 이어지면서 초등·중등·고등 검정고시를 차례로 통과했다. 내년 3월엔 야학 졸업장을 손에 쥐게 된다. 그는 "세상이 힘들어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며 "졸업장을 받아들게 된다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간난신고(艱難辛苦) 인생. 그녀는 펜팔을 통해 전파사인 남편을 만났는데, 딸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딸은 자신과 같은 병을 앓았다. 아홉 번의 대수술을 받아야 했던 딸은 병마 때문에 고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딸도 검정고시를 거쳐서 대학에 진학했다. 사회복지학과 3학년인 딸(26)은 대학병원에서 사회복지 실습 중이다.

그녀는 누굴 도울 형편이 못 된다. 그럼 신세만 지면서 살아야 할까? 그녀는 "딸이 대학을 졸업하면 저도 대학에 진학해서 사회복지를 공부할 계획"이라며 "장애인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장애인의 입장에 선 사회복지사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녀의 삶은 마치 진주 같다. 아픔으로 잉태돼 아픔만큼 성장하는 진주처럼 그녀는 아픔의 아픔을 딛고 보석처럼 빛나는 어머니가 됐다. 그녀가 가난과 장애의 벽에 부딪혀 무너졌다면 장애인 딸은 절망의 우리에 갇혔을 것이다. "다음 세상에선 키 큰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강은옥씨, 불혹인 마흔 나이에 검정고시에 뛰어들어 인생 과업을 묵묵히 달성 중인 그녀는 이미 거인이고 영웅이다.

#3. 쉬지 않고 달리는 헌혈의 사나이

헌혈과 이웃봉사에 적극적인 장기양씨.
 헌혈과 이웃봉사에 적극적인 장기양씨.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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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주인공 장기양(55·서대문우체국 우편물류과 근무)씨는 열정과 꿈의 사나이다.

모진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을 끝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황톳길을 걸어 상경 길에 오른 그는 여느 시골 사람들처럼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생존의 처절한 시장통에서 손수레를 끌며 "골라! 골라!"를 외쳤고, "살아보자! 끝내 이기자!"를 다짐하며 살아왔다.

1982년 6월 우체국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가슴 깊숙이 묻어뒀던 배움의 열망을 끄집어 냈다. 1983년 검정고시를 준비해서 1985년 대입검정에 합격한 그는 명지전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면서 짧은 가방끈을 늘였다. 그리고 1989년 예쁜 아내를 만나서 두 딸(대학 3학년·2학년)을 둔 행복한 가장이 됐다.

그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 시장 장사꾼에서 우편배달원으로, 우편배달원에서 가방 끈 긴 우체국 직원으로 달려온 그는 자신만을 위한 인생 대신 이웃과 함께 하는 인생을 선택했다. 그는 1994년 처음으로 헌혈을 시작해 매년 6~7회 헌혈에 참여하면서 2011년 현재 125번의 헌혈에 참여한 다회 헌혈 봉사자다. 그는 "헌혈이 가능한 65세까지 생명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과 피를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헌혈 봉사에 아내와 두 딸도 동참했다. 그는 "헌혈에 대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내와 두 딸이 저 몰래 헌혈 봉사에 나선 것을 뒤늦게 알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 경주에 대해 "가난하고 못 배웠지만 꿋꿋하게 달려왔다"며 "작은 결실로 가족의 행복과 이웃사랑의 나눔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

그는 헌혈 홍보를 위해 세 번이나 하프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건강한 사나이다. 게다가 교통방송 통신원으로 활동하며 불합리한 교통체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역 내 세 군데 신호등을 신설하게끔 했다. 이른바 '참여파 시민'이랄까. 그리고 10년째 독거노인과 장애아동을 돕고 있는 가슴 따듯한 사나이다.

#4. 가방 끈 엄청 긴 '뚝딱이 아빠'

송년의 밤을 즐겁게 해준 '뚝딱이 아빠' 김종석씨는 가방 끈이 긴 검정고시 동문이다.
 송년의 밤을 즐겁게 해준 '뚝딱이 아빠' 김종석씨는 가방 끈이 긴 검정고시 동문이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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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주인공은 '뚝딱이 아빠'로 유명한 개그맨 김종석씨다. 1983년 MBC 개그맨으로 데뷔해 1988년 <딩동댕 유치원> MC로 인기를 얻으면서 어린이들과 20년 넘는 '절친'이 됐다. 그에게 나이를 묻자 "나이를 묻지 마세요!"란다. 어린 친구들이 자신의 감춰진 나이를 알게 되면 친구로서 실망하기 때문이란다.

가난했던 그는 판검사가 되고 싶었단다. 그래서 부기(簿記)를 배워야 하는 상고를 중퇴했다. 어린 고시생이었던 그는 지리산 화엄사에서 2년간 법전에 매달렸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법학을 선택했지만, 생리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그는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서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검정고시 출신 중에서 그는 가방끈이 엄청 긴 학구파다. 중앙대 대학원 신문방송학 석사와 동국대 대학원 유아연극 석사 수료, 성균관대 대학원에서는 아동학 박사까지 취득했다. 9년의 길고 긴 경주로 마침내 박사님이 된 '뚝딱이 아빠'는 현재 서정대학 유아교육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비를 댈 수 없는 가난한 어머니의 눈물, 그 눈물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검정고시로 장벽을 돌파한 뚝딱이 아빠는 이날 송년의 밤에서도 동문들을 즐겁게 해줬다. 뚝딱이 캐릭터 차림을 한 그는 마술지팡이를 휘두르며 송년의 밤의 흥을 돋웠으며, 한해 시름에 겨웠던 동문들은 어린아이처럼 맘껏 놀고 노래 부르면서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는 검정고시 동문들을 사랑했다. 인기를 누리면서 각광을 받고, 배울 만큼 배우면서 사회적 지위도 얻었지만 어려운 시절을 헤쳐 온 동문들을 만나면 동지애를 느낀단다. 그는 검정고시 모임에 대해 "뿌리 없는 사람들의 모임 같지만 자세히 보면 뿌리가 깊다"며 "어려움을 안고 살아온 동문들은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쉬지 않고 도전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정고시 출신으로 자부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강운태 회장을 비롯한 동문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강운태 회장을 비롯한 동문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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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검정고시, #안희정 충남도지사, #패거리역경승리, #송년의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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