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 개봉 당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한 신하균

<고지전> 개봉 당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한 신하균 ⓒ 이정민


압도적이다. <브레인> 제작진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하균앓이'는 기본이요, '110 표정'이란 '짤방'까지 돌아다닐 정도다. 작가주의와 블록버스터를 고루 넘나들었던 '영화배우' 신하균 신드롬 말이다.

26일 방송된 <브레인> 13회는 신하균의 연기력을 최대치로 활용한 '옳은 예'였다. 병세가 악화된 어머니의 사망 직후, '물방울 원피스'를 읊조리며 황망함과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강훈. 그의 눈물 섞인 고해는 신하균의 오열에 집중하며 4분여 동안 지속됐을 정도다. 영화였다면 길게 찍기로 소화했을 이 쉽지 않은 장면은 신하균의 연기에 신뢰를 나타내는, 일종의 '인증샷'과도 같았다.

초반 의학 드라마를 표방했던 <브레인>은 이후 이강훈 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성장 드라마로 변질됐지만. <브레인> 이강훈에 대한 상찬은 여기까지다. 영화보다 대중적인 TV에서의 반응을 바탕으로 신하균의 예전 작품들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에서 신하균은 대부분 군복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다. 2000년 600만 관객을 돌파한 <공동경비구역 JSA>를 필두로 2005년 <웰컴투 동막골>은 물론 올해 <고지전>까지 그는 10여 년에 걸쳐 남북의 군복을 번갈아 소화해냈다.

장진, 박찬욱, 정성일 감독까지 작가주의 감독이 사랑한, 아니 작가주의를 사랑한 배우 신하균 작품 중 아쉽지만 빛을 발하지 못한, 그러나 결정적 장면을 포함한 작품들을 꼽아봤다.

 <지구를 지켜라>의 강력한 캐릭터 병구

<지구를 지켜라>의 강력한 캐릭터 병구 ⓒ 싸이더스


작가주의가 사랑한 비전형적인 배우 신하균의 20대

서울예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하고, 선배 장진 감독의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1998)로 화려하게(?) 데뷔했을 때만 해도 신하균은 정재영, 임원희 등과 함께 연기집단 '수다'의 멤버 중 하나였다. <간첩 리철진>의 불량학생을 거친 신하균은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인간미 넘치는 북한병사 정우진을 연기하며 단숨에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장진 감독 다음은 박찬욱 감독이었다. <올드보이>(2003) 직전, 송강호와 <복수는 나의 것>(2002)에 합류한 신하균은 누나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 유괴를 감행하는 청각장애인 류를 연기했다. 녹색 머리로 등장한 신하균의 멍한 듯 애잔한 눈빛은 박찬욱 감독의 차디찬 유머를 머금은 유괴 복수극에서 유난히 반짝였다.

물론 <지구를 지켜라>를 잊으면 안 된다. 한국영화 역사에 길이 빛나는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는 한국 영화에서 SF를 발명한 전무후무한 작품이었다. 외계인에게 어머니를 잃었다고 여기는 피해망상환자 병구는 단연 독보적인 캐릭터. 그 그림자가 워낙 강력해서인지 신하균 본인조차 군용 우의를 입은 <고지전>의 강은표를 팬들이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로 헷갈려한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하지만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2편이 모두 흥행에 실패하고 이후 드라마 <좋은 사람>까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신하균은 굴하지 않고 <킬러들의 수다> 후 원빈과 다시 만난 <우리 형>(2004)과 <웰컴 투 동막골>, '절친' 장진 감독의 부름을 받은 <박수칠 때 떠나라> 등을 통해 꾸준히 관객과의 교감을 이어갔다. 여기까지는 일반론. 홀로 선 신하균의 결정적 장면은 서른이 넘긴 2006년 이후부터다.  

 신하균이 순정마초가 아닌 진짜 마초로 분한 <페스티발>

신하균이 순정마초가 아닌 진짜 마초로 분한 <페스티발> ⓒ 시너지


킬러에서 변태, 유체이탈 까지, 평범한 게 없잖아?  

엉뚱한 살인청부업자 킬라를 연기한 <예의없는 것들>은 뒤늦게 도착한 왕가위 영화의 감수성을 보인 흥행 실패작이었다. 그러나 종잡을 수 없는 내러티브와 캐릭터, 인물의 희로애락을 표현해내는 신하균의 범상치 않은 취향만큼은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2007년 설 연휴 개봉해 100만을 넘긴 <더 게임>은 백만장자 노인과 몸이 뒤바뀐 청년이란 독특한 소재에 함몰된 범작이다. 그럼에도 신하균은 '짝패' 변희봉과 맞붙어 가난뱅이 화가 청년과 그의 몸에 들어간 탐욕스런 노인, 두 상반된 성격을 표현해냈다.

평론가 출신 정성일 감독의 <카페 느와르> (2010) 속 영수의 고뇌, 박찬욱 감독의 화제작 <박쥐>(2009) 속 장애인 강우의 광기 어린 눈빛으로 기억됐던 신하균은 급기야 자신의 물건 크기에 집착하는 '마초' 경찰 장배까지 도달한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억압된 '변태'(?)들이 총집합한 영화 <페스티발>(2010)에서다. 뻔뻔하고 속물다워서 현실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 마초를 시침 뚝 떼고 연기할 수 이가 몇이나 될까.

<브레인>이 TV 복귀작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신하균을 먼저 브라운관에서 만날 수 있던 작품은 <위기일발 풍년빌라>다. 공중파 3사에서 편성을 받지 못해 tvN을 통해 전파를 탄 이 코믹 스릴러는 <싸인>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은 장항준 감독을 더욱 절치부심하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숨겨진 유산 덕분에 살인과 음모에 연루되는 엑스트라 배우 오복규는 신하균의 멜로 연기와 자연스러운 코믹함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상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2012년에 데뷔 15년을 맞는 배우 신하균. <브레인>의 이강훈 선생이 짓는 '110가지 표정'의 내공은 이런 결정적인 장면 속에서 잉태되고 숙성됐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지금껏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없는 개성파 신하균에게 KBS 연기대상이 어떤 상을 안겨줄지 말이다. 그리고 그의 수상소감까지도.

신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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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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