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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번 주엔 어디 갈까?"

월요일 아침. 아빠는 늘 우리에게 묻는다. 2011년 봄, 전국일주를 시작하면서부터다. 2박 3일 혹은 3박 4일. 해남 땅끝마을부터 강원도 철원까지. 아빠는 매주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KBS 2TV <1박 2일>에 나온 장소 중 백두산 빼고 전부 들러보는 게 목표라고 한다. 아빠의 여행 목적은 노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동해에 노을이 지는 장면이다. 아빠가 강원도에 일하러 갔을 때 찍어 온 사진이다.
 동해에 노을이 지는 장면이다. 아빠가 강원도에 일하러 갔을 때 찍어 온 사진이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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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으로 일 다니기로 했어"

아빠의 직업은 카드상담사다. 고객들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해주는 일이다. 보통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지역만 돌아다닌다. 원래 아빠도 그랬다. 아빠 영업소에서 가까운 서울·수도권 지역에서 일했다. 그래도 4인 가족 평균 생활비는 충분히 벌 수 있었으니. 2010년부터는 여윳돈이 생겨 노후자금도 모았다. 내가 졸업 후 일을 시작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원인은 나였다. 봄 무렵 나는 가족에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언론사 입사준비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빠에게 1년만 '백조'로 살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학원비와 생활비를 보태 달라는 소리였다.

내게 드는 비용은 한 달에 50만 원 정도. 학원까지 다니게 되면 드는 돈이 더 늘게 된다. 게다가 부모님은 매달 100만 원씩 노후 대비 적금을 붓고 있었다. 월 150만~200만 원씩 지출이 늘게 되는 셈.

"쯧쯧. 안 돼. 돈 대주지 마. 사주 보니 당신 딸 철이 안 들게 생겼구먼. 공부하면서 돈 벌라고 그려!"

딸의 장래가 걱정 된 엄마는 사주 종이를 아빠에게 들이 밀었다. 신들린 조언이 신경 쓰였던 걸까. 아빠는 안방 벽 한 쪽에 그 종이를 붙여 놨다. 내 퇴사를 말린 건 점집 선녀님만이 아니었다. 한동안 아빠는 아침 밥상에서 회사 동료들의 충고를 내게 전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꿈 타령이냐면서.    

어느 날 아침이었다. 안방 벽에 붙어 있던 사주 종이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밥상에서 아빠는 내게 말했다. 회사 그만 두고 언론사 입사 준비하라고. 엄마는 돈이 어디 있냐며 아빠를 다그쳤다. 아빠는 김치찌개를 한 술 뜨며 말했다.  

"다음 주부터 지방으로 일 다니기로 했어."

아빠는 매주 수요일 밤 또는 목요일 새벽에 지방으로 떠난다. 출발 전 준비하는 모습.
 아빠는 매주 수요일 밤 또는 목요일 새벽에 지방으로 떠난다. 출발 전 준비하는 모습.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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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번 넣으려면 멀었어, 계속해"

꽃피는 4월, 아빠는 지방을 돌며 일을 했다. 신용카드 발급 비율이 낮은 동네를 찾아다녔다. 불교 신자인 아빠는 종교의 벽도 극복했다. 달리는 차 안에선 불경을 외웠고, 카드 신청을 하겠다는 시골 교회에서는 할렐루야를 외쳤다. 집에 돌아와서도 쉬지 않고 고객 정리를 했다. 전국 일주 시작 후, 아빠의 급여는 1.5배 늘었다.

덕분에 난 회사를 그만 두고 언론사 입사 준비를 시작했다. 80만 원 하는 신문사 아카데미 수업을 들었고, 언론사 인턴 활동도 했다. 매주 두 번 서울로 올라가 스터디를 했고, 영어 점수를 올리려 매달 3만~4만 원을 내고 토익 시험을 봤다.

그러나 내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언론사 문턱에서 낙방하기 일쑤였다. 때마침 아빠 친구 자녀들의 소식이 집 문 틈새로 흘러들어왔다. 다들 하반기 공채에서 최종 합격해 대기업 또는 금융업계의 사원이 됐다고 한다. 엄마는 그 소식을 내게 육성으로 반복재생했다. 아빠는 내 손을 잡으며 엄마 말의 뒤를 이었다.

"걔들 다 20군데 중 한 곳 붙은 거래. 넌 20번 넣으려면 한참 남았으니 괜찮아. 계속해."

현실의 벽 너머를 볼 수 있게 해준 아빠의 목마

아빠가 지방으로 떠나기 전, 나는 물었다. 일을 더 하면서까지 내 꿈을 밀어주려는 이유가 뭐냐고. 아빠는 말했다. 20살 때 재수해서 겨우 대학에 붙었지만 돈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30살 때 아빠는 결심했단다. 현실 앞에서 꿈을 포기하게 되는 좌절을 자식에겐 물려주기 않겠다고.

2011년. 아빠의 전국일주 덕분에 난 마음껏 꿈을 향해 바동거렸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러나 내 꿈을 지지해 준 아빠가 있어 좌절하지 않았다. 내게 아빠의 여행은, 현실의 벽 너머를 볼 수 있게 해준 목마 같았다.

"이 세상의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딸이 잘 되라고 행복하라고/ 마음으로 빌어준 박영감인데"

가수 오기택씨는 '아빠의 청춘'이란 노래에서 읊었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 생각에 잠겨 있다고. 하지만 그의 말은 어딘가 부족하다. 과연 생각뿐일까. 아들딸을 위해 마음의 갑절로 몸을 쓰는 게 부모인 듯하다. 어른이 된 딸의 꿈을 위해 매주 떠나는 나의 아빠처럼.

덧붙이는 글 | '내가 뽑은 올해의 인물' 응모글입니다.



태그:#아빠, #올해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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