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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기업의 가격 담합에 아주 관대한 나라다. 유럽에 비해 기업친화적인 미국에서 조차 기업이 가격 담합을 하다 적발되면 소비자 피해액의 3배를 그 과징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전혀 다르다. 기업이 담합하다가 적발돼도 지불하는 과징금은 소비자 피해액의 최대 10%에 불과하다(관련기사 = 한국 교복, 영국 교복보다 비싼 이유 있었네).

이 말은 한국에서는 100만 원을 훔치다 걸려도 기업은 10만 원 정도의 과징금을 내면 되고, 90만 원은 고스란히 기업의 순이득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기업의 가격담합 근절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민은 기업의 '봉'이나 '호구'가 될 수밖에 없다. 정말 '기업하기 좋은나라'가 우리나라다. 이러니 금융권의 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액만 최근 10년 동안 무려 30조 원 이상에 이른다.

금융소비자연맹(금소연)은 우리나라 최초의 금융전문 소비자단체다. 올해로 출범 10년을 맞는다. 금소연은 공정한 금융제도 구축과 정당한 소비자권익 찾기를 모토로 초창기 보험에 관련된 사회적 이슈를 끊임없이 제기해 그동안 언론과 소비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자동차보험료 인상 반대운동, 일제강점하 민간재산청구위원회 결성, 금융전문 무료법률서비스센터 가동, 교통사고 유발환경신고센터 설립, 서민의 소송지원을 위한 소비자연대은행 설립, 사랑의장기은행 설립 추진, 각종 금융피해자 구제를 위한 공동소송 등을 진행하고 있다.

금소연은 금융 각 분야의 '소비자가 뽑은 믿음직한 금융사'를 매년 선정 발표하는 등 금융소비자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알권리를 확보하는 데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소송' '카드수수료 인하' '금융사 고객정보유출 문제 제기 및 고발'과 '보험사 공시이율 담합소송' '저축은행 후순위채 공동소송' '은행, 증권사의 펀드이자, 예탁금 편취액 반환소송' 등을 제기하고 있다. 금소연은 지금도 금융소비자 권익 확보에 힘쓰고 있다. 지난 17일, 금소연의 조남희 사무총장을 만나 우리나라 금융권의 해결 되지 않는 고질적 문제점들에 대해 들어봤다. 아래는 조남희 총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공정위가 거대 금융사를 두려워하는 건 아닌지..."

조남희 사무총장
 조남희 사무총장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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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소비자연맹이 은행·증권·카드분야 등의 담합행위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는데, 금융권의 담합행위 규모와 그로 인해 받는 서민소비자들의 피해를 어느 정도로 추정하나?
"금융권의 담합으로 서민들에게 최근 10년 동안 최소 30조 원 이상의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금소연은 이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미 6개월 전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금융권 담합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특별히, 증권사들의 고객예탁금이자 지급과 카드사들의 대출이율 담합에 대한 조사 요구는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했다.

그렇지만 공정위는 금소연의 조사의뢰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답장이 없다. 우리는 물론 공정위 조사의뢰 후 공정위 직원과 전화 통화도 하고 직접 만나기도 하면서 의뢰 내용에 대해 문의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정위가 아직까지도 금융권의 담합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아마도 공정위가 금융소비자의 피해규모가 일반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거나, 거대 금융사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비록 금융사 간에 명시적인 담합이나 가격합의 증거가 없었다 하더라도, 금융시장 질서에 악영향을 끼친 부당한 공동행위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사실과 구체적 자료가 있다. 그런데도 그동안 이를 수수방관만 하는 금융 당국은 금융 골리앗의 서민 약탈행위를 방조한 책임이 있다."

- 증권사가 주식 투자고객들이 맡긴 고객예탁금을 증권금융에 예치해 받은 이자를 고객에게 제대로 돌려주지 않는 것은 법적 근거가 있나? 왜 고객에게 돌려주지 않은 것은 잘못됐고 돌려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나?
"증권사들이 주식투자 고객들에 대한 고객예탁금을 받아 증권금융에 예치하면서 받는 이자 가운데 70% 정도를 증권사 자신들의 수익으로 챙긴다. 그리고 이것도 모자라 증권사들은 담합 의혹이 충분할 만큼 고객예탁금의 지급이자율을 거의 동일하게 운영해 왔다.

이에 대해 최소한 일차적으로 자통법(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시행 이후에 해당하는 고객예탁금 이자에 대해, 증권사들은 증권금융으로부터 받은 이자수익의 90%를 해당 고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자통법 시행일인 2009년 2월 4일부터 2010년 말까지 증권사들이 고객들에게 반환하여야 할 금액은 6600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2011년 11월 현재까지 추정할 경우는 최소 1조 원 이상이다."

- 증권사들이 증권금융으로부터 받은 이자수익의 90%를 해당 고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현재 은행들이 펀드일시투자예치금에 대한 이자 반환을 추진하고 있는데, 수익의 95% 정도를 돌려주고 5%는 수수료로 받을 예정인 바, 증권사 역시 고객예탁금에 대한 이자를 이런 기준에서 돌려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이자수익 90%를 해당 고객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근거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법적 미비를 이유로 증권금융으로부터 받아온 이자를 자신들의 수익기반으로 생각하고, 실상은 고객의 이자를 편취해왔다. 그래서 증권사와 금융당국은 그동안 편취해 왔던 고객 이자에 대한 환급 일정을 제시할 의무가 있다. 대부업체가 30억 원 정도의 이자를 더 받는 것을 이유로 영업정지 3개월, 6개월 운운하는 것에 비추어 볼 때, 금융당국은 증권사에 대해 강력한 제재가 있어야 마땅하다."

- 카드사들이 대기업에는 지나치게 약하다는 비판이 많다. 반면 카드수수료를 내리라고 하면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를 축소한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서 한국의 카드사들이 개선해야 될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지난 달 음식점 업주들이 2.7%인 카드 수수료율을 대형업체 수준인 1.5%로 낮춰 달라며 집단행동을 시작했다. 이후 학원, 주유소 등 중소자영업자들 역시 잇따라 인하를 요구했다. 그러자 대기업인 자동차 제조사도 이에 가세했다. 카드사는 대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요구에 대해 신속하게 반응했다.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1.75%에서 1.7%(체크카드는 1.5%에서 1.0%)로 낮췄다.

올해 상반기 카드사들의 가맹점수익은 4조957억 원(금융감독원 신용카드사 공시자료 참조)으로 전체 수익의 절반을 차지한다. 카드사들은 영세상인들에 대한 카드수수료 일부 인하를 발표함과 동시에 카드사용자들에 대한 포인트적립과 할인서비스 축소시키겠다며 수수료율 인하 부담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카드사 입장에서 현대자동차 등의 대기업은 '슈퍼 갑(甲)'의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997년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 이후 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현재의 신용카드 사회정착에 기여한 금융소비자와 중소영세업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카드사들은 가뜩이나 소액결제 확산에 따른 카드수수료를 부담으로 체감하고 있는 중소영세업자들에게 과감한 수수료율 인하 조처를 해야 한다. 또한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카드론 사기가 요즘 급증하는데, 정부의 대응이 치밀하지 못하고 허점이 많다는 불만이 많다. 정부가 급증하는 카드론 사기에 대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라고 보나? 아울러, 요즘 전화금융 사기가 급증하고 있는데, 예방법에 대한 조언과 소비자들의 피해대책 현황을 설명해 달라.
"얼마 전 금융감독원과 통계청 등 주요 국가기관을 비롯해 서울과 인천의 경찰청이 각각 '보이스 피싱 주의보'를 발령했다. 얼마나 다급하고 위험한 상황인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전화가 대중에 보급되기 시작한 1970년대 말부터 '군대 간 아들이 어쩌고'라며 전화 금융사기가 시작됐다. 이 전화 금융사기의 수법이 날로 대담해지고 교묘해지면서 지난 5년간 피해규모는 연평균 6천여 건, 6백여억 원에 이르고 있다.

특히, 피해자 중에는 카드론 거래를 처음 하면서 보이스 피싱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 경우, 전적으로 피해를 당한 카드 사용 고객들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비대면 대출영업을 하는 만큼, 최초거래에 대해서는 카드사들이 본인확인을 철저히 하고, 단계별로 강화하는 조처를 했더라면 몇 번의 전화조작으로 수천만 원이 인출되는 피해를 줄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카드사들이 수수료인하로 인한 수익보전을 위해 카드론 마케팅 일환으로 카드한도를 높여 줬는데, 이 과정에서 피해자 중에는 대출한도를 올린 상태에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발생하는 등 카드사들의 무분별한 한도인상이 피해 규모를 키운 측면도 있다.

또한 최근 네이트, 삼성카드 등의 수백만 명 고객정보 유출사고 등 고객정보 관리소홀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딸 아이의 핸드폰 번호가 찍힌 발신자 표시를 보고 어떻게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절대로 당할 것 같지 않지만 막상 당해보니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는 피해자의 호소도 많았다. 현재의 피해자들은 과거와 달리, 개별적인 대응을 넘어서 이제는 집단적으로 대응하려 하고 있다.

이제 금융사들은 영업 우선의 자세를 버리고, 금융사고에 대해서는 금융사 자신들도 끝까지 책임진다는 각오로 보안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나날이 지능화해가는 범죄에 맞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2차, 3차 피해가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른다."

- MB 정권 4년 동안 서민 살림이 더욱 어려워 졌다는 비판이 많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진단하나?
"경제의 양극화, 경제의 저성장, 승자독식(獨食), 대기업 위주와 수출 위주가 심화하고 있다. 이로 인한 세대간, 계층간, 산업간 소득불균형, 경제침체 등과 함께 재분배 구조개선 미흡이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더욱 어렵게 했다고 본다.

서민들이 막연한 희망을'복권에서 찾으려 하면서 복권 판매액은 역대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말뿐인 서민 경제가 아닌 실질적 효과가 있는, 과감하고도 광범위한 대책과 대안이 담긴 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 : 중앙대학교 대학원(국제경제 전공), 신한종합연구소, 신한은행 재직, 보험소비자연맹 이사 역임, 금융연수원 감사. 주요저서(공저) <간접투자상품판매>(한국금융연수원), <자산운용>(금융상품).



태그:#담합, #조남희, #김성수, #금융소비자연맹, #금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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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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