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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3월부터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신설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현재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과 꿈의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는 선생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서울형 혁신학교 이야기입니다.<기자말>

서울형 혁신학교가 시작한 지 열 달이 되어갑니다. 그 사이 서울형 혁신학교는 초·중·고 모두 23개에서 29개를 넘어, 2012년에는 30개 학교가 추가로 지정이 되어서 모두 59개가 될 예정입니다.

서울형 혁신학교가 1년이 되어 가니 초기의 우려반 기대반을 지나 혁신학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돌아다닙니다. 학부모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는 이미 지난 번 여러 차례에 걸쳐 이야기했고, 이번에는 교사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혁신학교를 두고 교사들 사이에 가장 많이 떠도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혁신학교는 밤 10시까지 회의를 한다며?"
"혁신학교 교사들은 엄청 힘들대."
"혁신학교는 퇴근시간이 따로 없대."

[혁신학교 괴담 ①] "혁신학교는 밤 10시까지 회의를 한다며?"

학교에서 하는 모든 교육활동은 월요일마다 여는 전체 교사가 참여하는 '강명교사회'에서 충분히 논의하여 진행합니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교육활동은 월요일마다 여는 전체 교사가 참여하는 '강명교사회'에서 충분히 논의하여 진행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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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혁신학교는 밤 10시까지 회의를 한다'는 이야기에 대해 말하겠는데, 이 말은 많이 부풀려진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학교에서는 전체 교사 회의를 오후 10시까지 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오후 9시까지 한 적은 있습니다만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것도 학교를 개교하기 전 전체교사들의 의견을 모아서 학교시설, 사무용 집기, 교육과정 모두를 새로 갖출 때 그랬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새 학교에 모든 것을 새로 갖추어야 했는데, 새로 갖추는 모든 것을 한두 사람의 생각이 아닌 교사 전원이 모여 의논해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신설학교가 아니고, 이미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상태였다면, 또 모든 것을 결정할 때 교사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관리자와 몇 사람이 결정해서 진행했다면 그렇게 회의를 오래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모든 것을 구성원들이 모여서 의논해 결정했습니다. 회의를 하면서 처음 같이 모인 사람들끼리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여럿이 같이 모여 의논하면 혼자 생각할 때보다 더 좋은 생각이 나온다는 것과 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의견으로 결정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책에서 보던 '집단지성'이라는 것이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물론 회의가 많아지고 길어지니 힘들기도 했습니다. 초기에는 민주적으로 의논하고 결정하는 것은 좋은데, 회의가 적고 짧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까닭은,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말만 회의였지 우리가 한 번도 민주적인 회의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면서 결정하는 회의가 힘들 수밖에요.

하지만, 회의를 안 하거나 적게 하면서 민주적으로 할 수는 없고, 회의시간을 무조건 짧게 하는 민주적인 회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는 원래 다양성을 인정하고 누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끄럽고, 어렵고, 힘들고, 오래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새로 정해야 하는 신설학교에서는 회의가 많고 잦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회의가 힘들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겪어내야지 별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1학기를 보내고 2학기 중반에 들어서자 회의시간이 빨라졌습니다. 이미 그동안 많은 회의로 서로 교육철학을 공유했기 때문에 의논할 일도 그만큼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아마 2년차인 내년에는 지금보다 더욱 회의 횟수도, 시간도 줄 거라고 봅니다. 그러나 학교운영을 관리자의 지시와 전달로 하지 않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려면 회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회의가 힘들다는 교사들에게 제가 늘 되묻는 말이 있습니다. 회의는 힘들지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서 하는 민주적인 학교를 만들래? 아니면, 그동안의 학교에서처럼 회의하지 않고 관리자의 지시 전달로 끝나는 학교를 만들래? 이 말에 교사들은 힘들어도 민주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관리자의 지시전달로 운영되는 학교로 이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빠르고 쉽고 편하게' 하는 민주주의는 없다는 걸, 어려움 속에서 우리 스스로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진행할 때 행복하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회의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혁신학교 괴담 ②] "혁신학교 교사들은 엄청 힘들대"

혁신학교에 대해 두 번째로 많이 듣는 교사들의 괴담은 "혁신학교는 교사들이 엄청 힘들대"입니다. 교사들이 혁신학교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교사들이 힘들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에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학교는 안 힘드나요? 사실 일반학교라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혁신학교의 힘듦과 일반학교의 힘듦에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학교는 남이 시키는 일을 해대느라고 '괴롭게' 힘들고, 혁신학교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고 '행복하게' 힘들다는 것입니다. 원래 교육은 힘든 것입니다. 문제는 힘들게 해야 할 교육을 힘들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반학교는 진짜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동떨어진 일을, 그것도 관리자가 시켜서 억지로 하느라 날마다 힘듭니다. 왜 하는지도 모르고, 억지로 하는 일은 하면서도 즐겁지 않고, 하고 나서도 보람이 없습니다. 배우는 것도 없습니다. 괴롭기만 합니다.

혁신학교는 쓸데없는 일은 다 없애고, 정말 아이들에게 해야 할 교육을 제대로 하는 데 힘을 쏟습니다. 이런 일은 힘이 들지만, 하면서도 즐겁고 하고 나서도 보람 있고 행복합니다. 힘들게 하고 나서 아이들은 물론 교사도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세상에 유익하고 의미있는 일 중에 힘 안 들이고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힘들다고 모두가 안 할 때, 우리는 기꺼이 합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하며 행복해 하는 사람은 힘들어도 기꺼이 한 사람입니다. 힘들다고 안 한 사람들은 이런 행복을 느낄 수도 없고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힘들다고 꺼리시겠습니까?

[혁신학교 괴담 ③] "혁신학교는 퇴근시간이 따로 없대"

경쟁하면서 공부할 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할 때 더 많이 더 넓게 더 깊이 배우고 성장합니다.
 경쟁하면서 공부할 때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할 때 더 많이 더 넓게 더 깊이 배우고 성장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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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에 대해 세 번째로 많이 듣는 교사들의 괴담은, "혁신학교는 퇴근시간이 없대"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학교 교사들은 퇴근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아니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각자 퇴근하는 시간이 다 다릅니다. 제 시간에 꼭 퇴근하는 분도 있지만 밤 늦도록 교실에 불을 켜 놓고 계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누가 남으라고 해서 남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필요해서 남는 것입니다. 밤 늦도록 불이 켜져 있어서 가 보면, 선생님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거나 교재연구를 하고, 또 개인이 혼자 수업준비를 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필요에 따라 노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학교에 출근하는 분도 계십니다.

우리 학교는 필요하면 퇴근 시간 이후에도 회의를 합니다. 학부모님과의 대화나 부모 상담, 부모 교육 등도 직장에 다니시는 부모님을 위해서 퇴근 시간 이후에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학교는 퇴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에 얽매이는 교사는 없습니다.

저도 지난 열 달 동안 퇴근시간에 맞춰 퇴근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관리자가 시키거나 강요에 의해 늦게 퇴근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할 일이 있어서 늦게 퇴근한 것입니다. 특히 올해 신설학교이자 혁신학교 혁신부장 직책을 맡고보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근무 시간 안에 일을 다 끝낼 수가 없었습니다.

밤 늦게 퇴근하면서 또 일보따리를 집으로 싸들고 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즐겁고 행복합니다. 힘은 들지만, 가끔 체력이 바닥이 나서 기진맥진할 때도 있지만, 제가 지금 들이는 시간과 노력으로 우리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진다면 앞으로도 힘든 일을 기꺼이 하려고 합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혁신학교, #혁신학교괴담,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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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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