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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박수 소리로 막을 내렸다. 회의 막바지 '한 말씀 해달라'는 의원들의 요구에 연단에 선 박근혜 전 대표에게 쏟아진 박수였다.

 

이틀 전 의원총회에서 박 전 대표의 소통 부재를 비판하며 당의 전면적인 재창당을 요구했던 쇄신파의 목소리는 박 전 대표와 쇄신파의 90분 회동 이후 힘을 잃었다. 박 전 대표의 뜻을 대리했던 친박근혜계 의원들과 쇄신파의 충돌로 정태근·김성식 의원의 탈당 사태가 벌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이날 의총 분위기는 180도 반전된 셈이다.

 

18대 국회 들어 처음으로 의원총회 발언에 나선 박 전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는가"라며 "국민 신뢰 회복을 우리의 목표, 최고의 가치로 삼고 우리 모두 함께 이 방향으로 열심히 노력하자"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짧은 시간 안에 국민에게 다가가고, 국민의 삶을 챙기고 어려움을 해결하느냐에 당의 명운이 달려있다"며 "돋보기도 초점을 하나로 맞췄을 때 종이를 태울 수 있다, 우리도 한 방향으로 노력해 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이 끝나자 의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정치적 수사만 얻은 쇄신파 회동"... 재창당, 여전히 갈등 불씨

 

하지만 이날 의총에서는 재창당 문제가 비대위 출범 후에도 여전히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여지를 남겼다. 일부 쇄신파를 중심으로 전날 박 전 대표와 쇄신파 의원들의 회동에 비판적인 시각이 표출되면서 재창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정두언 의원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김성식·정태근 두 의원의 탈당으로 달라진 것은 박 전 대표의 의총 출석과 '재창당을 뛰어넘는'이라는 정치적 수사뿐"이라며 "국민의 신뢰를 잃은 우리당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 재창당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정 의원은 "신뢰를 중시하는 박 전 대표가 국민들에게 약속한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과 개혁'을 말그대로 실천할 것으로 믿고 싶다"며 "그 실천 여부를 지켜보며 백의종군하겠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의원도 의총 직전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표가 말한)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이 수식어를 빼면 내용상 뭐가 달라졌느냐"며 "어제 회동에 지나친 의미가 부여되고 박 전 대표가 만나준 데 대해 감읍하는 분위기로 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문수 지사의 측근인 차명진 의원은 "비대위는 재창당 준비까지만 역할을 해달라"며 "비대위가 총선까지 책임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여전히 재창당에 부정적 태도를 고수해 논란을 예고했다. 그는 "형식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요즘 인터넷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당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국민이 현미경처럼 들여다 본다"며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그 어떤 형식도 국민에게 무의미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계파 갈등 해소도 숙제... "박근혜 주변 인물 TV에 나오지 말아야"

 

비대위가 출범하더라도 내부의 계파 갈등이 해소될지 의문이다. 비대위 구성 과정에서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한 친박계는 이날 의총에서는 '친박계 2선 후퇴'를 제안하는 등 당의 전면에 나서게 될 박 전 대표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여론몰이에 나섰다. 

 

최경환 의원은 "친박이라고 불리던 사람은 모두 물러나고 나도 당직에 얼쩡거리지 않겠다"며 "지금은 경쟁보다는 통합과 화합할 때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서 대권을 향하고 있는데 무슨 계파, 무슨 계파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친박계가 아닌 의원들로부터 박 전 대표가 계파 해체를 명시적으로 선언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쇄신파 김성태 의원은 "박 전 대표에게 요구할 게 있다"며 "친박이 없다고 선언해 달라, 차등과 불평등이 없다고 선언해 달라"고 했다. 김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주변 인물들이 TV 화면에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놨다.

 

원희룡 의원은 "음모론적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대리정치는 안된다"며 "김문수 경기지사를 왜 못 만나나, 한나라당 깃발 아래 뛰겠다는 사람들을 끌어안는 광폭 정치를 해야 친이·친박 갈등을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차명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국민에 대한 메신저로서 역할을 잃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탈락시킬 수 있을지,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단호하게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요구에 대해 박 전 대표는 모호한 대답으로 즉답을 피했다. 그는 "비대위원장도 아닌데 어쩌고저쩌고 하는 게 어색하지만 모든 절차가 끝나면 답을 드리겠다"며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위해 모두 하나가 돼서 매진하자는 말 속에 친이·친박 문제 등이 다 녹아있다"고 말했다.

 

계파 해체 즉답 피한 박근혜... 비대위 순항할까

 

한나라당은 이날 의총에 이어 열린 상임전국위원회에서 비대위원장에게 당 대표의 권한을 부여하고 대선 출마자의 경우 대통령선거일 1년 6개월 전에 선출직 당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에도 적용 받지 않도록 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했다.

 

비대위원장을 맡는 박 전 대표가 실질적으로 당대표의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대선 후보로 출마할 수 있도록 하는 '박근혜 맞춤형'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 개정안이 오는 19일 전국위원회에서 통과되면 '박근혜 비대위'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쇄신파의 '항복 선언'으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이 본궤도에 오르게 됐지만 재창당 문제를 포함한 당 쇄신 수순과 공천 시스템 마련, 또 비대위원 구성을 둘러싼 계파 간 알력다툼 등 넘어야할 산이 만만치 않다. 특히 90분간의 회동으로 쇄신파의 반란을 수면 아래로 끌어내렸지만 잠복된 갈등은 쇄신안 마련 과정에서 언제든 다시 터져나올 수 있다.

 

쉽게 봉합된 상처는 쉽게 곪는 법이라는 점에서 '박근혜호'의 순항을 장담할 수는 없게 됐다.


태그:#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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