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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들이 글을 읽었던 곳이라 전해지는 선들재는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와 곤명면 신흥리 사이에 있는 고개다. 지명 유래로 미루어 볼 때 도교와 불교가 유행했던 고려시대의 역사가 숨어있는 곳이다. '선(禪)들다'는 불교 용어로 선방에 참선하러 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는 선들재 주변에 꽤 많은 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표적인 절은 문달사, 은적암 등이다. 주변 10리가 절터였다는 것이다.

사진 오른편이 단속, 흥사마을이다. 예전엔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 사천매향비 부근 논 사진 오른편이 단속, 흥사마을이다. 예전엔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 윤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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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달사는 사천매향비와 관련이 깊은 절인데 지금은 산기슭 대나무 밭 사이에 무너진 절터만 남아있다. 최근에 발행된 곤양면지에는 "곤양읍지에 문달사는 제방산록에 있다고 하였으나, 건립 및 상존 년한과 규모는 나타나 있지 않다"라고만 되어 있다.

문달사지와 곽가등이 있는 곳이다.
▲ 문달사지와 곽가등 문달사지와 곽가등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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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문달사지(文達寺址)는 명당이라 전해지는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최북단 곽가등 아래 제방에서 뻗어내려 온 산줄기에 흥사리 도로에서 실개천을 따라 1km정도 떨어진 대밭 속에 주춧돌로 추측되는 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기왓장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주변은 완전 대숲으로 덮여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기수역에 향나무를 묻고 세웠던 매향비
▲ 사천매향비 바닷물과 민물이 합쳐지는 기수역에 향나무를 묻고 세웠던 매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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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문달사, 사천매향비, 이순 장군과 관련된 얘기를 풀어보면 소설 같지만 재밌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이순신 장군이 인근 사천만에서 거북선을 처음 출전시켜 왜구와 일전을 벌이던 때로부터 200년 전에 남해안에 출몰하던 왜적을 토벌했던 장군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이 '이순'이다.

부인묘와 합장되어 있다.
▲ 이순 장군의 묘비석 부인묘와 합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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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장군은 고려 말 왕명을 출납하는 자리에 올라 대장군을 지냈으며, 만호의 벼슬에 삼사좌사를 지낸 장수다. 그러나 권부로부터 밀려나 승려 혹은 은퇴한 고관의 직위로 사천 땅 사수현으로 내려왔다. 처음 내려온 곳 지명이 단속 즉 속세로부터 단절된 곳.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단속 마을이다. 그 단속 마을 인근에 문달사가 있고, 문달사가 중심이 되어 4100여 명에 이르는 민중들이 미륵하생을 기원하며 매향제를 지낸 후 향나무를 묻은 갯골 옆에 매향비를 세웠던 것이다.

상전벽해! 절이 있던 자리엔 개별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 선들재 오르는 길 상전벽해! 절이 있던 자리엔 개별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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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선들재 넘는 길은 역사를 돌이켜보는 길이다. 하지만 옛날과 지금을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일제 강점기 때 구강언을 막기 전 까지는 회관이 있는 앞들까지 배들이 들어와서 염전용 화목과 기타 화물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예전에는 바다였던 곳에 지금은 고속도로도 생기고, 골프장도 들어서고, 산업단지도 조성되고 있다.

수령 200년이 넘는 팽나무
▲ 팽나무 수령 200년이 넘는 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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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들재 가는 길가 갑사마을 입구 도로변에는 수령 200년 정도 된 큰 팽나무(포구나무)가 서있다. 이 나무는 범우골 산에 선영을 모신 김씨 문중이 비보 풍수 차원에서 심은 나무로 나무가 점점 커지면서부터는 아래에서 반상회도 하고 마을 모임도 하던 마을 집회소로도 이용했다고 한다. 나무 옆에는 주막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흥사일반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옛날엔 범우골로 불렸다. 범이 자주 나타났다는 곳이다.
▲ 흥사일반산업단지 조성지 옛날엔 범우골로 불렸다. 범이 자주 나타났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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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들재는 낙남정맥이 지나는 곳이다. 낙남정맥은 남해와 내륙을 구획하는 산줄기로 동쪽에는 낙동강, 서쪽에는 섬진강, 남쪽으로는 남해, 북쪽으로는 남강이 흐른다.

신선이 글을 읽었던 곳이었다는 선들재 정상, 넘어서면 경남 사천시 곤명면이다.
▲ 선들재 정상 신선이 글을 읽었던 곳이었다는 선들재 정상, 넘어서면 경남 사천시 곤명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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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진 빗방울의 운명이 남북으로 엇갈린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운명이란게 이런걸까? 순간의 선택에서 운명은 갈라진다. 북쪽으로 떨어진 물은 남강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을 지나 부산 앞바다로 향하고, 남쪽으로 떨어진 물은 곧바로 남해 바다로 흘러드는 것이다. 물론 사천만쪽으로 나 있는 남강댐 방류구가 없었을 때의 일이다.

낙남정맥이 지나는 곳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 낙남정맥 표지판 낙남정맥이 지나는 곳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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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들재 주변엔 남남정맥을 표시한 나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수많은 산악인들이 지나간 흔적도 리본으로 남아있다. 고개를 넘어서면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 만지마을이다. 멀리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곤양면 사람들이 완사장을 보러 넘나들던 길이기도 하다.

멀리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 경남 사천시 곤명면 신흥리 멀리 지리산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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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만 바다에서 잡은 생선이나 파래, 조개 등의 해산물과 모시를 팔러 가던 고개다. 어릴 적에 들었던 증조 할머니 말로는 여우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고갯마루에 올라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지게를 고정시켜 놓으면 여우가 몰래 다가와 지게를 흔들기도 했다는 전설 같은 얘기다.

1천 년 역사가 함께하는 선들재길. 옛날의 운치가 사라지기 전에 한번쯤 걸어볼 만한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선들재, #사천매향비, #이순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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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들로 다니며 사진도 찍고 생물 관찰도 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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